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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Dec 18. 2022

남자의 외로움 (part. 5)

바이블 스터디로 경험한 형제애

옛날에 미국에서 살 때 호스트 가족이 크리스천이었는데, 수요일 저녁마다 바이블 스터디를 했다. 바이블 스터디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내 호스트 가족 형제의 또래 친구들이었고, 아빠(난 아직도 호스트 가족 부모님을 mom, dad로 부른다)가 특정 구절을 정해주시면 우리는 다음 주 모임까지 그것을 각자 읽고 모이는 식이었다.


바이블 스터디는 성경 공부 모임 그 이상이었다. 남자 어른의 초대 아래(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청년들이 모여 우정을 나누는 놀이에 더 가까웠다. 저녁 먹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도착하는데, 반갑게 맞이하면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는다. 참석자 중 한 명이 구절 전체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빠가 그 내용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는데, 그리 길지 않다. 메인은 참석자들이 그 구절을 읽고 느낀 바를 나누는 시간이다. 지난 바이블 스터디 이후 한 주를 살면서 겪은 일들과 그로 인한 감정, 생각들이 성경 구절과 버무려져 각자만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모임 이후에는 간식 등을 먹으며 카드, 보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읽어야 할 분량 자체도 많지 않았다. 읽을 분량이 있다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작은 과제였고, 이를 책임감 있게 읽고 오는 것이 작은 훈련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읽지 않고 참석해도 되었고, 참석을 제한하는 것들도 없다. 안 읽는 것도 내 결정, 읽지 않았음에도 바이블 스터디에 참석하겠다는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나는 호스트의 집에서 살았음에도 참석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아빠나 내 형제들은 날 질책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바이블 스터디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나는 건 없다. 하지만 그 자리를 함께 한 형제들 친구들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속내를 오픈하여 공유하던 그 따뜻한 경험은 내 마음에 남아있다.


2022년도 2주 남았다. 12월은 축제의 느낌이 물씬 나면서도 세월이 흘렀음을 자각하는 씁쓸한 맛도 있다. 날씨는 엄청 추워졌지만 여러 송년회를 참석하니 마음이 계속 덥혀진다. 자주 연락 하지 못 했음에도 이렇게 모일 수 있고 추억을 안주 삼아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이 해가 갈수록 더 소중해진다.


먼저, 친구들이 건강해서 감사하다. 통풍을 앓았던 친구도 이제 음주량을 조절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웨이트 열심히 한 친구들은 바프도 찍고 그러던데 그 근성에 감탄하고 부럽고 멋지다. 건강 관련해서는 역시 무소식만큼 희소식은 없나 보다.


힘든 일을 겪은 친구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묵묵히 버티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외로운 날들엔 고독히 내려야 했던 결심들이 있을 것이라 존경의 마음도 든다. 내가 그 친구를 응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 감사하고, 옆에서 든든히 남아있기 위한 책임감도 든다.


또, 가시적인 성취를 이루었거나 목표를 달성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멋진 스토리를 가졌음에 부럽다. 세속적인 마음 한 구석에선 질투심이 조용히 커지지만, 동시에 친구로서 남의 기쁨을 나누고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도 싶다.


보통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그중 특종 뉴스가 있고, 그리고 자잘한 소식 나눔으로 이어진다. 나 같은 경우 결혼 소식이 그것이다. 내 결혼 소식에 유부남 친구들은 마치 바로 밑 신병이 들어온 것처럼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고, 아직 미혼인 친구들은 다양한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 내가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으니까ㅋㅋ


송년회 자리에서는 유독 말 수가 적고 대화 지분을 거의 갖지 않는 친구가 꼭 한 두 명 있다. 우리가 일부러 소식 공유를 강요해도 소식이 없거나 별 것 없이 넘어간다. 그럼 대화는 다시 원래 주도하던 친구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우리 남자 친구들 대부분은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진다. 그래야 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커피를 마시러 가면 몇 마디 나누다가 핸드폰 보고 몇 마디 나누다 다시 폰을 본다. 근데 취기를 빌리니 낯 간지러운 말도 할 수 있게 되니 좋다. 옛다, 속 얘기도 몇 개 오픈하기도 하면 모임의 열기가 더해진다.


역시 사람은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 알 수 있다. 온기를 나눠야 살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옆 사람들과 부대끼며 얼굴을 가까이 대고 욕지거리 나누고, 농담에 킬킬거리고, 이야기에 공감하고, 결심에 동조하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 일은 잘 풀렸냐?”. “왜 그때 말하지 않았어?”


술자리가 파하고 가게를 나서면서 친구들 하나씩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담백하게 안전한 귀가를 기원하고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짧은 인사와 몸짓에 서로에 대한 우정과 응원과 감사함이 섞여있다. 이런 소속감, 형제애는 올해 그래도 잘 살았다는 마음과 함께 새로운 해를 맞이할 힘이 되어준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서울은 더 복작복작해졌지만 젊은이들은 외로워지고 관계 맺기가 쉬워지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작은 버블들에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 안전하다고 믿지 않았으면 한다. 삼삼오오 모이는 일 자체가 사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보고 싶고 궁금하니 만나자는 말을 더 쉽게 할 수 있고, 멋진 제스처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추가 노력과 책임감 없이는 새로운 관계든 기존의 관례든 가질 기회 자체가 늘지 않기 때문이다.



essay by 이준우

photo by Papaioannou Ko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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