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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Apr 16. 2023

뛰는 이유는 솔직하고 싶어서

(하) <이준우 참가자: DNF(Did Not Finish)>

나의 첫 마라톤 레이스가 있고 한 달이 지났다. 그날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그날까지의 기억과 기록의 힘을 빌린 회고록이다.




내가 첫 마라톤을 어떻게 준비했는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공유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착실하게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선수들조차 매 경기를 진심으로 준비하는데, 난 42.195 KM를 완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신체와 정신을 무장해야 할지 생각이 없었다.


엘리트 러너들도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판단하면 과감히 레이스를 중단할 정도로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 경기를 난 진지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2월부터 본격적인 결혼 준비와 함께 청첩장 모임을 하나 둘 잡으면서, 아무거나 먹고 마시며 숙취 속에 살았다. 마음 한편엔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뛰겠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여러 번 마라톤을 뛰었던 분이 진심 어린 조언과 훈련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난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러너들은 알겠지만, 특정 거리만 뛰다 보면 정신적으로 나의 한계 거리가 생긴 느낌이다. 5K에 익숙했던 내가 10K를 선뜻 뛰기 어렵고, 10K를 뛰어도 두 배의 길이인 하프 마라톤을 뛴다는 것은 다른 수준의 도전을 한다는 의미이다. 더군다나 2월 18일 하프 마라톤 훈련 후 무릎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긴 러닝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3월이 되었을 때 내 마음은 방어 기제를 만들었다. 괜히 결혼 전에 무리해서 부상당하지 말고 하프 마라톤이라 생각하고 뛰자고 마음을 잡았다. 그때의 충격이 쉽게 극복되지 않았고, 21킬로 이후의 미지의 세계의 공포감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D-1, 토요일

토요일 아침에 소연이를 수서역에 데려다준 후 오후까지 글을 썼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다듬고 비워 단조로운 하루를 보내는 데에 도움을 준다. 저녁은 집에서 소연이와 가볍게 먹었고,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기에 미리 입을 옷, 신발을 꺼내두었다. 아미노 바이탈은 5킬로마다 먹기 위해 8개를 챙겼고, 휴마젤은 출발 전 하나, 10킬로마다 먹기 위해 4개를 챙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웃긴 건 처음부터 풀코스를 뛸 양을 챙겼다는 것이다.


준비물:

나이키 드라이핏 반팔, 아디다스 서울 마라톤 반팔, 나이키 러닝 윈드 브레이커, 나이키 러닝 반바지, 귀여운 나이키 드라이핏 양말, 호카 땀수건, 나이키 러닝 캡, 나이키 러닝 장갑, 통풍 잘 되는 마스크, 유선 이어폰, 애플 워치, 수헌님이 선물해 주신 허리춤 가방, 나이키 줌 X 베이퍼플라이 NEXT% 2, G조 번호판


D-Day,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내가 좋아하는 러닝 인플루언서인 Matt Choi의 마라톤 경기 날 아침 루틴을 따라 했다. 먼저 옷을 입고 블랙커피를 진하게 내렸다. 그리고 피넛버터, 배(pear) 잼, 그리고 초코 브라우니, 그리고 꿀을 넣은 토스트 2개와 바나나를 함께 먹었다. 높은 칼로리를 섭취하는 동시에 아랫배에 신호가 와, 집을 나서기 전에 화장실에서 모든 근심을 비워낼 수 있었다.


풀코스는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해 잠실 운동장에 있는 결승선에 도착하는 루트이기 때문에 출발 1시간 전인 7시까지 출발지에 집결하여 출발 그룹에 맞는 트럭에 자기 짐을 실어야 한다. 나는 소연이와 함께 차로 이동했기 때문에 7시까지 갈 필요는 없었지만, 미리 가서 몸을 풀기 위해 6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다.

늠름한 포즈
레이스 시작 1시간 전, 스타트 라인

그날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는 전국의 러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많은 러닝 팀들과 깃발들이 대화를 나누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긴장의 전운이 광화문 광장에 돌 것으로 지레 생각했는데, 긴장감보다는 다들 뛰고 싶어 설레해하는 눈빛들이었다. 하나의 축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온은 약 3~4도로, 꽤나 쌀쌀한 날씨였기 때문에 일회용 비닐 우의를 입고 조금씩 몸을 풀었다. 내가 속한 조는 가장 뒤에서 마지막에 출발하는 G조. 초청 엘리트 그룹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싶어 앞쪽에 나가서 구경했다. 생각보다 4,50대 이상의 러너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출발 ~ 5K 구간

엘리트 그룹부터 F조까지 출발하였고 마지막으로 우리 G조가 준비한다. 출발선에 선 그때의 기분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비닐 우의를 벗었지만 러너들 사이에 있으니 춥지 않았다. 안전한 레이스를 펼칠 것을 선언하고 출발, 수많은 러너들 사이에서 내 첫 마라톤의 시작을 알렸다! 줌엑스 베이퍼 플라이는 반발력이 매우 좋고 가벼워 쾌적했다. 첫 코스는 광화문 광장부터 숭례문까지 일직선 거리, 이 거리는 내가 정말 많이 왔다 갔다 한 거리다. 미끄러지듯 몸의 끼어있는 긴장을 깨워주며 편하게 뛰는 것에 집중했다. 숭례문에서 좌회전하여 을지로가를 뛰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5K 지점에 도착했다. 페이스는 5분 50초대.


5~10K 구간

이 구간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을지로 1가 역에서 우회전해 청계천로를 뛰는 코스로 이어진다. 몸이 풀리며 평균 페이스가 5분 20초대로 단축된다. 오버 페이스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한데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시계를 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뛰고 있다고 놀란다. 조금씩 러너들 사이의 간격이 벌어진다. 그래도 아직  추월하기 편하지 않다. 부모님 연배 러너들이 많이 뛰는 것을 보고 감탄하며 뛴다. 장년층 러닝 동호회가 많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뛰는 자세도 안정적이다.


10~15K 구간

청계천로가 끊임없이 이어지다 보니 생각보다 지루하다. 사방이 조용해진다, 들리는 소리는 주변 러너들의 호흡 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 그렇다 보니 내 러닝 자세와 신체가 말하는 소리가 더 잘 들리는데, 호흡이 무너지면 더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부지런하게 5킬로 급수대마다 아미노 바이탈을 잘 챙겨 먹는다. 슬슬 내 몸이 자기가 힘들다는 의견서를 제출한다.


15~하프 포인트

용두역 쪽 고산자교에서 U턴한다. 내가 뛰던 청계천로 반대편을 뛰는 구간이다. 너무너무 지루하다, 힘드니까 지루했던 게 분명하다. 이전 구간까지는 나름 5분 40 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이 구간에 페이스가 망가졌다. 매 LAP별로 적게는 2초, 많게는 22초까지 느려지며 속도가 6분 30초대로 떨어졌다. 청계천로 구간을 드디어 벗어난다. 종각역 사거리를 통과해 종로가를 뛴다. 뻥 뚫린 3차선 도로를 달린다. 하지만 꽤나 힘들다. 내 주변에서 뛰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다.


하프 포인트인 신설동 사거리에는 소연이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경기에선 하프 마라톤까지만 뛰겠다 했기 때문이다. 야속하게도 신설동 사거리까지 살짝 오르막길인데, 올라왔더니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소연이가 보인다. 잠깐의 고민,, 그리고 소연이에게 말한다. “나, 조금만 더 뛰어볼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때까지의 내 기록은 2시간 17분이다.


하프 포인트~30K, breakdown

하프 포인트부터 30K 지점까지는 띄엄띄엄 기억이 난다. 신답 지하차도까지 가는 길은 걷다 뛰다 하며 뛰던 기억이 있다. 이미 내 몸은 그만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왜 나는 여기서부터 힘들까. 답십리역부터 군자역 구간에서 오른쪽 허벅지 햄스트링 쪽에 쥐가 났다. 주도 옆에서 응원해 주시는 시민분이 에어 파스를 빌려주셔서 뿌렸다. 그리고 군자역에서 어린이대공원역까지는 거의 걸었다. 조금 오래 걸었더니, 문제는 다시 뛸 수 없었다. 몸이 안 움직여주었다.


마침 광진 광장에 도착하니 릴레이코스 3번째 출발지였다. 여기에 러너들을 위한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난 주저하지 않고 한 봉지를 달라고 하여 그 자리에서 빵 2개, 바나나, 천연 사이다를 단숨에 해치워버렸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처럼 벤치에 앉아 게걸스럽게 먹어버렸다. 그리고 화양 사거리까지 비틀거리듯 통과하였고, 이제는 오른쪽 허벅지 전체가 욱신거렸다. 난 이제 이 레이스를 놓아주어야 했다.


레이스 종료, 잠실 운동장

난 대기하던 의료진 앰뷸을 탔고 리타이어 러너들이 타 있는 버스에 옮겨 탔다. 그 버스는 나처럼 경기를 중단한 다른 러너들을 태우며 도착지인 잠실 운동장으로 향했다. 난 차창에서 어떻게든 도착지로 가고 있는 러너들을 쳐다봤다. 그때의 기분은 부러움과 창피함 딱 둘이었다.


1시 반쯤 버스가 잠실 운동장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피니시라인을 보고 싶었다. 내 다리로 못 갔던 그곳을 눈에라도 담고 싶었다, 레이스 끝의 모습을. 운동장 안 저기에 피니시라인이 보이는데 눈물이 계속 난다. 난 그곳을 천천히 지나가 본다. 이곳을 자기 힘으로 넘어간 모든 러너들을 향한 무한한 부러움과 그들의 정신력에 존경스러움을 느끼기 위해. 동시에 내가 이 메달을 얻지 못한 이유를 내 안에서 찾아보기 위해.


레이스 종료, 집

나는 내 첫 마라톤 완주에 실패했다. 지금은 이 레이스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물을 시점이고, 여기서 내 진실함에 호소한다. 러닝에서 쉽게 뛰는 것이 가장 어려운 만큼,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는 것이 어렵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어야 비로소 나를 믿어줄 힘이 생길 것 같다.


나는 절반만 뛸 각오로 풀코스 마라톤 스타팅 라인을 넘었다. 무의식 깊숙히 끝까지 뛰지 않을 것이라고, 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 피니시 라인을 밟지 못했음을 한탄하는 게 맞는 걸까?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은 스스로에게 떳떳한 감정일까? 이 또한 나 자신을 속이는 행동은 아닐까?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것을 보니 감정적 미결 사건이 있나 보다. 자책과 아쉬움이 절반, 다른 절반은 부끄러움이다. 이 부끄러움은 내 가능성을 스스로 믿어주지 않은 내 책임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나는 미결로 끝난 이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스스로 속죄하고 한 발 더 진실하고 싶어서 계속 뛴다. 큰 물에서 많은 러너들을 만났더니 용기를 얻었다. 첫 출사표를 던진 마라톤 레이스가 동아 서울 마라톤인 점이 개인적으로 뜻깊다. 서울 마라톤은 보스턴과 뉴욕 마라톤과 함께 국제 인증을 받은 명성 높은 시티 런 마라톤이다.


러닝은 내게 좋은 것을 많이 주고 있다. 내가 러닝에게 작게 보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솔직한 러너가 되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 마라톤은 이게 끝이 아니니까. Marathon continues!


essay by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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