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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마 Jun 29. 2022

지금은 짜증 최대 시즌 (feat. 남편의 이해)

요즘 나는 심각할 정도로 짜증이 많다. 짜증의 원인이 무엇일까?


1. 업무 스트레스. Project leader 자리를 맡고 나서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이 엄청 난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생각해보니 팀장이 그 스트레스의 불씨를 지폈던 것 같다.


2. 나의 따님들이 무엇 때문인지 모를 스트레스를 짜증으로 마구 쏟아내고 있다.

예전의 나였으면 어떻게든 사랑으로 보듬어 주려고 노력했을 텐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의 폭발 스위치가 눌리는 시간이 exponentioal 함수로(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뇌는 반복되는 스트레스에 대해 더 민감하고 증폭되어 반응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지금은 0.01초도 되지 않아 폭발 스위치가 눌린다. 작고 약한 아이들 앞에 거대한 어른이 무서운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협박한다. 


최악이다. 지금 난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누가 날 여기서 좀 꺼내 줘.


아무튼 난 현재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행복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루 종일 생각이 가득하고 그 끝없는 생각은 나를 멍한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아이들의 질문에 반응하는 게 어렵고, 특히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난 짜증만 낸다. 정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단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같이 있으면 좋지 않은 영향만 주고, 나 역시 짜증만 나니 침대에 누워 나오지 않았다. 잠이 쏟아지기도 했다. 어쩌면 스트레스의 상황에서 나의 도피는 잠이 아니었을까. 스트레스를 잠으로 풀었던 지난날의 나를 생각하면 그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안인 것 같다.


누워있는 나에게 조용히 남편이 방문을 닫아 주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나의 공간을 분리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큰 아이가 소리 지르며 짜증을 뱉어내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아빠의 짜증 소리도 들려온다. 아주 잠시간의 대치 상황 그 이후로 나는 조용한 상황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정말 12시간 정도 잔 것 같다. 너무 긴 시간이라 숙면이라기보다 얕은 수면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자는 중에도 계속 생각을 한다. 나의 사랑스러운 큰 아이가 짜증을 내는 원인이 무엇일까. 혹시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아이도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는 걸까. 내가 아이를 너무 통제의 틀에 가두어 두었나.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아봐야 할까? 오은영 선생님이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같은 시간.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밥도 먹고, 놀이도 하고, 티비도 보여줬을 거다. 두 아이가 싸우지 않고 긴 시간을 같이 보낸다. 잠에서 깨어난 내가 아이들 앞에 섰을 때, 두 아이의 표정이 밝다. 아빠의 얼굴도 밝다. 행복이 충만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나도 자고 일어나니 조금 정신이 맑아진다. 아주 잠시 우리의 현재가 행복함을 느꼈다.


가끔 육아를 하다 보면 이래서 부모가 있어야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엄마와 아빠의 존재가 한 아이의 생명을 만들까? 혼자서는 절대 아이를 태어나게 할 수 없다. 신이 그렇게 만들었을 때는 그 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균형을 맞출 수 없다. 둘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고 다툼으로 이어질 때도 많지만, 내가 흔들릴 때 절망에 빠져있어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을 때 균형을 맞춰주는 남편이 있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힘든 시기가 온다. 혼자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없지만 나는 그러기에는 너무 나약한 인간이다. 서로에게 기대어 살라고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를 두신 게 아닐까. 그래야 내가 쓰러졌을 때 상대방이 아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나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남편에게 고마웠다. 말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문을 닫아주는 그 모습에 나의 힘듦을 이해해줌을 느꼈다. 정말 단순한 그 행동 하나에 힐링을 느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이해였던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이해. 내가 그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해 받음으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해심이 없었는지 깨달았다. 불평등함을 느끼고 그에 대한 불만이 생기다 보니 이해에 대한 배려가 없어졌나 보다. 어쩌면 그동안 남편도 이해를 바랐던 것 아닐까. 이렇게 나는 또 이랬다 저랬다 요동을 친다. 우리는 출렁 거리며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남편, 당신이 있어 다행이야. 당신의 이해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일어날게.



보태기 : 요즘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인정한다. 아이를 양육하는데 '꼭' 부모가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역할을 조부모/삼촌/이모/제2의 성인이 될 수 있음을 모두가 이해하실 거라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부모를 언급한 이유는, 원론적으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남과 여, 두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과 여가 행동과 사고방식이 다른 만큼, 서로가 다른 성향이 균형을 이루어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역할은 아빠와 엄마뿐 아니라, 다른 그 누구로 대체되어도 된다. 물론 홀로 양육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주변에서 대모/대부로서 도와주시면 주양육자도 훨씬 만족감 높은 삶을 살 수 있고, 아이들도 다양함을 인정하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해가 있을까 하여 보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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