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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연 Feb 27. 2020

교토에 바치는 세레나데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했다. 제목을 쓰고 글을 쓰다가도, 내가 이 곳에서 느꼈던 감정이 잘 표현되지 않는 것 같아서 매번 중간에 멈춰버렸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여행한 공간이자, 세상 그 어떤 곳보다 사랑하는 곳. 그리고 내가 가장 행복했던 곳. 교토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다.



교토를 처음 간 것은 10년쯤 전, 수학여행을 갔을 때였다.

일본에 온 것은 처음이었고, 일본어도 할 줄 몰랐었다. 지금은 어딜 갔는지조차 잘 기억도 안 나지만,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교토와 나라를 잇는 거리에 반해 한참을 내다본 기억만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일본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정말로 나는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일본에 와서 내가 살게 된 곳은 도쿄였고, 나는 도쿄에서의 생활에도 퍽 만족했었다. 그러다 2015년 여름, 처음으로 친구와 교토로 여행을 갔다. 처음 타보는 신칸센과, 에키벤에 설렌 기억이 그때 찍은 사진으로 남아있다.



밤에는 물집이 다 잡힌 발바닥 때문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우리는 하루 종일 걸었고, 하루 종일 여행했다. 너무 힘들어서 택시를 탔을 때도, 우리는 밖을 보며 너무 아름답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그때의 기억이 내가 그 뒤로 여행을 하는 힘이 되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고 여행을 하는 것은 이렇게 행복한 것임을 깨닫게 해 준 여행이었다.



나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교토에 갔다. 여러 핑계를 대며 나는 늘 그곳을 향했다.

졸업 기념 여행으로, 검전시를 보러, 보고 싶은 공연이 교토에서 열려서, 엄마한테 이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심지어 나고야에 갈 일이 있는데 나고야에서 가까우니까, 같은 이유로도 교토에 갔다.

교토는 유독 혼자 갈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현지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와 한참을 떠들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부부와 밤새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누고, 소개받아서 들어간 술집의 마스터와 몇 시간을 떠들며 친구가 되고. 내가 살았던 그 어떤 공간보다 더 집 같으면서도, 갈 때마다 새로운 곳을 발견해서 신기하며, 일본어식 표현인 '일기일회一期一会'의 만남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내가 '만났던' 교토를 얘기하고 싶다. 내가 경험한 운명 같은 만남을 조금씩 얘기하고 싶다.







교토를 갈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있다면, 바로 켄쿤신사(健勲神社)다.

오다 노부나가를 모신 신사로, 산속에 있기 때문에 올라갈 때마다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게 되지만,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내가 교토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난다.


셋 다 다른 날에 찍은 사진이다.


이곳에 처음 오게 된 건, 일본도 때문이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검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이 신사는 요시모토 사몬지(혹은 소우자 사몬지 라고 불리는 검)을 소유하고 있다. 그것이 도검 관련 게임이 유명해지며, 이곳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오가게 되었는데 나 또한 그런 이유였었다.


이 신사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여러 가지 기획을 했었는데, 바로 이런 식으로 오미쿠지를 꾸며둔다던가.


게임 캐릭터가 "유난히 흉이 많이 나오는 오미쿠지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유난히 흉이 많이 나오는 오미쿠지라고 쓰여있는 문구를 보고 웃으면서 뽑았더니 정말로 흉이 나와서 놀랐었다. 내가 놀라서 잠시 멈춰있으니, 신사를 지키는 분께서 "앞으로 잘 될 점괘가 나왔나 봐요" 하고 좋게 말씀하셔서 웃으면서 묶어두고 왔었다. 참 신기한 것이, 이때 오미쿠지는 정말로 잘 맞아떨어졌어서, 당시 상반기는 정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이 여행 바로 뒤에 들어간 회사가 블랙 회사여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는데, 다행히 금방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그해 가을 교토로 다시 한번 여행을 올 수 있었다. 그때 이곳에 들러서, 힘든 시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었다. 이렇게 몇 번이고 오다 보니, 당연하게도 교토를 올 때마다 이 신사를 들르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 신사에 대한 기억을 하나 더 말하자면, 이곳은 야겐 토시로(오다 노부나가의 검이며, 현재는 소실되었다)의 복원도를 전시하곤 한다. 야겐 토시로를 복원하도록 주문한 사람은 게임을 좋아해서 일본도를 좋아하게 된 일반인인데, 이 검은 이 신사에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위탁을 했다고 한다.


야겐 토시로 복원도


이 검을 보러 온 날, 하필 복원도를 제작한 도공 분이 와계셔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것도 행운이었다. "계기가 무엇이든 여러분이 지금 제가 만든 검에게 느끼시는 감정은 진실된 겁니다."라고 말하던 도공 분의 얘기를 들으며 이곳에 와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느꼈다.






이 신사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전통방식으로 제작하는 천과 리본 전문점이 있다.



제대로 된 간판도 없는 이곳에 들어가면 니시진오리(西陣織)라고 하는 천과 미즈히키(水引)라고 하는 전통 매듭을 사용해서 리본을 만들 수 있도록 되어있다. 내가 원하는 천과 매듭을 고르면 알아서 만들어주는 형식.


바탕이 될 천과, 매듭, 그리고 그 이음새 천을 고르면 10분 만에 뚝딱 만들어주신다.


리본 하나에 500엔부터 시작하는데, 우연히 이곳을 발견해서 다니기 시작한 뒤로, 친구들에게 하나씩 만들어서 선물해주는 취미가 생겼다.


처음으로 만들었던 리본
정말 갈 때마다 들르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갔을 때는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내 가방에 달린 리본을 보고는 "아.. 이미 자주 오시는 분이시군요!" 하시면서 설명 대신 천을 쥐어주셔서 웃었었다. 내가 나만을 위해, 그리고 다른 누군가만을 생각하며 예쁜 천을 고르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할 필요도 없다. 500엔으로 산 행복과 기억이 지금도 내 많은 가방과 머리끈에서 남아있다.





이곳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마미야 신사다.



이 웅장한 신사는 정말 아름답지만 역시 가장 좋은 건 사람이 적다는 점 같다. 꽤 유명한 곳인데도, 갈 때마다 늘 사람이 적었다. 하지만 처음 갔을 때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정말 아름다워서 나도 언젠가 저런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기억이 난다.


이 아름다운 신사 얘기보다 사실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 신사 옆에 있는 아부리모찌(炙り餅)집이다.



あぶり餅かざりや라고 하는 모찌집인데, 이곳에 가게 된 것에 대해서도 얘기할 게 한참 있다.


그날은 별생각 없이 다이토쿠지(大徳寺)를 돌고 있었는데, 어느 커플이 다가와서는 "여기 유명한 아부리모찌 집이 있다고 하던데 어딘지 아세요?"하고 물어왔다. 나는 사전 정보 없이 움직이고 있던 터라 모른다고 대답했다. 내가 교토에서 사는 사람으로 보인 건가 싶어서 조금 기분이 좋아서 또 걷다가, 이마미야 신사를 들어갔는데, 그 옆에서 굉장히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게 아니던가. 바로 이 모찌집이었다.


운명 같은 이 만남이 기뻐, 바로 가게로 들어갔더니 메뉴는 오직 모찌 뿐이었다. 차와 함께 모찌를 하나씩 집어먹으며 이 가게의 아름다운 정원을 내다보니 정말로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모찌도 정말로 맛있었으니까. 편의점에서 사 먹는 거랑 차원이 다르니, 교토에 간다면 꼭 한번 들르길 바란다. 차와 함께 마시는 이 모찌는 단돈 500엔. 500엔으로 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곳을 나와 다이토쿠지를 향해서 걷는 이 길 또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언제 가도 유난히 조용한 이 길은 바람소리,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 새소리 만이 울려 퍼진다. 이 고요한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교토에 올 때는 이 길을 걷게 된다.



다이토쿠지는 여러 운명 같은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인데, 이곳은 진주암(真珠庵) 앞의 모습이다. 당시 특별 공개 중이었는데,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 앞을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완벽해서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냈다.



다이토쿠지에서 또 정말로 아름다운 곳을 말하자면, 바로 코토인.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 전국시대 인물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가라샤라는 여성이다. 이 곳은 가라샤와 인연이 깊은 절로, 오랫동안 호소카와 집안(가라샤의 남편 집안이다)의 절로 쓰인 곳이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니 꼭 들어가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나 또한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이 곳은 최근 2년 넘게 보수를 진행했는데, 원래 예정된 보수뿐만이 아니라, 2018년 교토에 태풍으로 인해 큰 피해가 생긴 탓에 그것을 복구하느라 더 연기되었다고 한다.


매번 실패한 흔적들. 재개장이 점점 연기된 탓인지 매번 표지판이 다르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2018년 봄부터 나는 교토를 들를 때마다 이곳을 갔는데, 2019년 여름에 갔을 때는 (당시 3월에 보수가 완료될 예정이었다) 길에서 만난 분이 "아직도!?" 하고 외쳐서 둘이서 여긴 대체 언제 재개장을 하냐며 한참을 투정했었다.


2019년 11월에 드디어 재개장을 했다고 하니, 다음 여행에서는 꼭 들러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안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매번 꿈꾸고 꿈꾸던 곳이니까.





다이토쿠지에서 버스를 타고 약 20분 정도만 가면 나오는 곳이 바로 키타노텐만구(北野天満宮)다.



웅장한 문이 맞아주는 이 커다란 신사는 학문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 유명하다. 얼마나 유명하냐면, 교토로 수학여행을 오는 모든 고등학교들은 여길 들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고, 매년 입시원서 제출 시기가 되면 이곳에서 원서를 쓰는 학생들이 가득하며, 이곳의 부적과 연필은 모두가 사가는 선물이다.



하지만 내겐 입시는 이미 오래전 얘기니, 나는 이 아름다운 신사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얀 자갈밭의 신사는 언제나 사람이 많지만 딱히 나쁘진 않다. 모두 신에게 인사를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뭘 찍냐면 바로 이 아름다운 꽃이다.


   

키타노텐마구의 매화는 정말로 유명해서, 매화가 필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특히 따로 마련된 매화 정원은 많은 노부부들이 데이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또한 이 시기에 온 것을 감격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이곳은 올 때마다 늘 날이 이렇게 좋았는데, 누군가에게 받는 선물과도 같았다.



이곳의 또 다른 볼거리는 바로 일본도인데, 이곳은 정말 수많은 일본도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왼쪽이 이 신사가 보유한 검 중 가장 유명한 오니기리마루이며, 오른쪽 두 자루는 마에다 집안에서 봉납한 일본도다. 모두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있는데, 이런 문화재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카메라로 찍어가며 볼 수 있는 곳은 정말 드물다. (많은 박물관의 경우 문화재는 사진 촬영 금지다) 누군가가 이 신사를 들른다면 꼭 전시도 보길 바란다.



봄에 가면 운이 좋게, 이런 딸기를 맛볼 수 있다. 설탕 옷을 입힌 사과인 아메링고는, 많은 외국인들이 일본의 축제에서 먹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엄청 딱딱해서 먹기 힘들다. 대신 이런 딸기처럼 부드러운 과일도 같이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건 정말 맛있고 달콤하니 한 번쯤 시도해보길. 당신의 하루가 달콤해질 거다.



교토 여행기는 시리즈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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