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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24. 2020

[단편] 선미의 생각 - 3

계약직과 정규직에 대한 단상


 선미의 우려와는 달리 재계약은 무난히 갱신되었다.

 이번에도 2년 더 연장된 것이다.

 같은 부서나 업무 하면서 알고 지내던 정규직 직원들은 의례적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계약직이라는 한계를 전혀 겪어보지 못한,

 그 심정을 한 번도 헤아려 보지 못한,

 그들이 얼마나 진심 어린 인사를 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마도, 같은 입장에 있는 계약직들의 축하 인사가 진심이라면 진심일 것이다.

 “언니, 축하드려요. 정말 기쁘시겠어요.”

 “부러워요, 언니!”

 “고마 워. 다 네 덕분이지 뭐.”

 하는 식의 메시지들이 오고 갔다.

 선미는 K팀장 자리로 가서 감사 말씀을 드렸다.

 그는 부서 직원들 의견을 따랐을 뿐이라고 자기한테 고마워할 것 없다며 겸손해했다.

 하지만, 차 안에서 있었던 사건을 의식해서 인지, 팀장은 그녀 얼굴은 보지 않고 모니터만 응시한 채 말했다.

그날 저녁, 한 턱을 쏘라는 후배들을 뒤로하고 선미는 업무가 끝나자마자, 퇴직한 단짝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유라는 의외로 밝은 얼굴이다.

 퇴직한 이후, 지금은 9급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학원을 다니고 있다.

 어쩐지 만나는 장소를 뜬금없이 노량진으로 정해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만나보니 이런저런 그간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언니, 9급이라도 합격하면 정_규_직 공무원이야.”

 그녀는 정규직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한 음절씩 끊어 발음하고는 웃는다.

 “시험은 어렵지 않니?”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해야지. 요새는 서울대 나와도 9급 시험본데... ”

 그녀는 강사가 강의 도중에 우스갯소리로 요즘은 ‘서울대 나와도’가 아니라

  ‘서울대는 나와야’
볼 수 있는 시험이라고 하면서 9급이 얼마나 합격하기 어려운지를 특히 강조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사이, 유라가 알고 있던 몇 명이 계약 만료로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에 그녀는 담담했다.

 그냥 피식 쓴웃음을 지으며 이제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애써 잊으려 노력하는 것이 얼굴 표정에 그대로 써져 있다.

 퇴직한 회사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기같이 못난 사람을 오랜 기간 월급 주며 보살펴 주었는데, 돌아서서 우물에 침 뱉고 싶지는 않다며....

 단지, 이제는 계약직 같이 무언가에 항상 쪼이고, 불안한 미래에 떨며 살고 싶지는 않아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유라와 헤어지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쓸쓸했다.

 오늘, 메일로 재계약을 통보받았을 때, 선미는 기쁘기보다는 자신의 신체 한 구석이 뻥 뚫린 듯 허무했다.

 통보받기 전까지 며칠 동안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오만 가지 생각이 그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심지어는,

 차 안에서 자신의 은밀한 신체부위로 접근하는 팀장 손을 뿌리 친 것이 재계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거부 표시를 한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

 아니면 더 진행되었더라도 재계약을 위해 꾹 참았어야 했는지에 대한 단계에 이르자 한없이 나약해진 자신의 밑바닥을 본 것 같았다.

 만약,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할까?

 회사 성폭력 신고센터에 고발할까?

 하고 나면 재계약은 어떻게 될까?

 자문자답을 해 보았다.

 그러나 답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수많은 계약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선미는 정치를 잘 모른다. 큰 관심도 없다.

 누군가, 비정규직이 늘어난 원인이 신新자유주의 확산 때문이라며 거대담론 같은 이론을 설파할 때에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그녀는 너무 많은 계약직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일하고 있다는 현실만 알고 있다.

 회사는 낙타 바늘구멍과도 같이 좁디좁은 정규직 전환 프로그램을 만들어 희망고문을 계속하고 있다.

 대부분은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중간에 계약 만료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더욱 우울한 것은, 그 낙타 바늘을 뚫기 위해서 동료들끼리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동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쟁자이기도, 심지어 적이기도 했다.

 터무니없이 적고, 절대 늘어나지 않는 정규직 전환 T/O 때문에 누군가는 회사 밖으로 나가야 하고,

 남이 나가지 않으면 내가 절대로 정규직이 될 수 없는 구조.

 본부 내에서 계약직 누군가가 퇴사하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지만,

 뒤돌아서면 그나마 경쟁자가 줄었다는 안도감이 몰래 자신들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구조.

 회사일은 모두 털어 버렸다는 유라도 그 이야기를 할 때는, 아주 잔인하기 짝이 없는,

 너무 비인간적인 구조였다고 회상하면서 눈 아래 살결을 파르르 떨었다.

     



 “나, 계약 연장되었어.”
 선미는 남친 우식에게 담담히 말한다. 


 “잘 되었네. 걱정 많이 했잖아.”


 그의 답변은 도통 영혼이 담겨 있지 않다.   


 “그냥, 뭐 마음이 좀 허전하네.”


 “왜? 잘 된 일 아냐?”

 “(잠시 후)....... 우식 씨! 우리 언제쯤 결혼할까?”

 “결혼? 갑자기 또 결혼 이야기?”

 “갑자기가 아니라, 우리 이제 할 때 되지 않았나?”

 “야! 지금 어떻게 결혼을 해? 너도 나도 직장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으려면 시간도 걸리고, 요새 전세 값이 얼마인지 잘 알잖아!”

 “그럼 그때가 언제 오는데... 기다리면, 전세 값이 내려가?”

선미가 결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녀는 자존심을 무릅쓰고 작년에 이어 지금도 결혼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물론, 남친 이야기도 일리는 있다.

 쥐꼬리 만 한 월급만으로 천정 모르고 오르는 전세 값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양가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 처지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쯤 그 물질적, 금전적인 조건이 충족될까?

 이제는 함께 부족하나마 만들어 가자고 우식을 설득한다.

 그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자기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너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고 싶지는 않다며, 작년과 똑같은 투로 말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치 그녀가 결혼에 집착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선미는 왜 자꾸 결혼을 생각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직장생활에 그만큼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가정이라는 안식처를 찾아 그 텅 빈 공허감을 메우고 싶기도 하고,

 결혼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도피처로 삼아 현실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는 게 솔직한, 간절한 그녀 심정이었다.


 결국, 이번에도 결혼 이야기는 선미 자존심만 잔뜩 구겨놓은 채 공기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우식은 결혼 이야기에서 화제를 돌리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는 결혼이 마치 회사의 무슨 장기 프로젝트나 되는 양, 천천히 검토해 보자고 그녀를 설득했다.

그러더니, 대낮에, 그것도 태양이 한창 힘깨나 쓰고 있는 한낮에, 토라진 선미를 등 떠밀 듯이 데리고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선미 주임이 관리하는 제휴업체는 100여가 넘는다.

 업종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가 다양했다.

 그녀가 처음 이 부서에 올 때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시간이 흐르면서 놀이공원이 유행을 타기도 했고,

 영화관, 온라인 오픈 마켓, 커피 전문점을 거쳐, 현재 핫 플레이스는 새벽 배송업체이다.

 선미가 처음 맡은 업무는 지원(back-office) 업무였다.

 예를 들면, 제휴 계약서 관리, 전산 관리, 업체 문의 응대 등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휴업체 대면 접촉을 시작했고, 지금은 Q대리와 한 파트로 온라인 오픈 마켓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팀장은 업무가 엉성한 대리를 보완하고자 꼼꼼한 선미 주임을 관리업무에서 빼내 영업 쪽으로 배치했다.

 예상대로, 대리님은 곳곳에서 사고를 치기 바빴고, 선미는 수습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미는 한 제휴업체 회계 직원과 정산 오류에 대해 전화로 옥신각신 하다가 종국에는 말다툼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화가 난 상대편 직원은 선미에게,  

 “
그러시다면정규직 직원을 바꿔주세요그분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라는 어마어마한 멘트를 날렸다.

 쉽게 말하면, 담당자인 계약직 선미를 배제하고 어리바리하더라도 정규직인 Q대리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

이에, 화가 난 그녀는 직접 통화하라면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자, 회사 옥상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파라솔과 벤치, 키가 작은 소나무들이 태양이 내리비치는 햇빛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잠깐 휴식을 취하러 나와 있는 직원들이 군데군데 보이기도 했다.

 선미는 들고 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벤치에 내려놓고 그날따라 유난히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나는 결국 Q대리만도 못한 사람이었구나, 그걸 지금에서야 확인 한 거구나!’

 이만한 모욕과 설움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닌데, 오늘은 왠지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나가서 커피숍이라도, 꽃집이라도 해볼까?

 아니면 유라처럼 공무원 시험이라도....’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다시 돌아온 사무실,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늘 같은 자리에서 선미 주임이라고 불리며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왜 자꾸 낯설게 느껴질까?  

 책상, 의자, 컴퓨터, 마우스, 책상 달력, 자그마하고 예쁜 꽃이 피어 있는 화분 하나,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업체 연락처, 포스트잇 메모지들

 그리고 파티션 너머 직원들 모두...............

 아무래도 내 자리가 아니다. 낯설다.....

 일찍 집으로 귀가한 후, 컴퓨터를 켰다.  

 지금부터라도 어딘가 있을 자기 자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이 순간 온통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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