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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23. 2020

[단편] 선미의 생각 - 2

계약직과 정규직에 대한 단상

 그야말로 ’eye-popping!'

 Q대리 전년도 성과급은 그녀보다 무려 다섯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그녀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마우스를 위아래로 이동하며 금액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다시 본들,
 인센티브 금액이 바뀔 일은 없다.

 자리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차츰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네!

 그 대리는 회사에서 무능한 직원으로 단단히 낙인이 찍혀 있다.

 나이도 부서에서 제일 많아 입사 후배인 팀장조차도 그를 대할 때에는 눈을 맞추질 못하고 어렵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관계였다.

 물론, 그렇게 내려진 업무 대부분은 고스란히 선미에게로 왔다.

 팀장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단지 모른 척할 뿐이다. 들추어 본들, 답도 없고 서로 피곤해질 뿐이니까!

 정규직인 Q대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착하고 유순하기만 한 계약직 그녀에게 마치 욱여넣듯 떠넘기기 일쑤였다.

 그런 대리님께서 회사에서 받은 그 어마어마한 인센티브가 적다며 불만을 이기지 못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Q대리 인센티브를 두 눈으로 목격한 그날 이후 그녀의 직장생활은 우울하기만 했다.

 ‘세상이 뭐 이렇게 돌아가나?’

 단순히 금액이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일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오늘 아침 출근하다 보니, 지금껏 무심히 지나쳐버린 직원들 목에 착용하는 출입증 띠의 색깔이 새삼 다르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부서에서 그녀를 제외하고 모든 직원들은 정규직용 파란색이었고, 그녀만 회색이었다.

 ‘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렇게 타인과 구분이 되고 있었구나!’  
    

 또, 팀장이 주간 회의를 개최하면 팀원 모두 참여한다.

 그녀만 제외하고.

 아무리 무능한 Q대리도, 3개월 전에 입사한 햇병아리 오 계장도 참석하는 회의에 소위 ‘제휴사업부 귀신’은 참석 대상이 아니다.

 오직, 회의에 참석한 대리를 통해 내려오는 업무 지시사항이 있을 뿐이다.

 그 대리는 이 부서에 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정확히 업무 파악조차 안 되어 있다.

 팀장 지시사항은 중간에 Q대리를 거치며 전혀 다른 내용으로 뒤엉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오류가 야기시키는 모든 뒤처리는 선미 주임 몫이다.

 휴화산 밑에서 오랜 기간 잠들어 있던 용암이 갑자기 움틀 거리기 시작한다.

 지금,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그녀를 몹시 화나게 만들고 있다.



 “선미 언니! 나 오늘까지만 나와요. 그동안 고마웠어, 언니. 언니만큼은 회사에서 정말 오래오래 다니셔야 해요”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회계부 유라가 퇴사한다며 메일 인사를 보내왔다.

 선미가 회사에서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해 온 동생 같은 유라. 그녀는 6월이 계약 만료기한이었다.

 년 초부터 그녀는 계약직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최소한 인간으로서 안정적인 근무환경 하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유라가 앞장서서 이러한 의사를 회사 여러 모임이나 단체에 타진해 왔으나 모두 거절당했다고 지난번 모임에서도 얼굴을 붉히며 흥분해서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이번에 재계약이 안 된 이유 중에는 그녀의 그런 행동이 크게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했다.

 우리 권리를 찾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해야 한다고 한참을 역설하던 유라 얼굴이 떠올랐다.

 원래 나서길 주저하고, 소심했던 선미.

 그때 선미는 그녀 주장을 그저 남의 일처럼 무심히 듣고 흘려보냈다.

 갑자기 자신이 무책임한 방관자는 아니었는지, 유라가 도와줄 것으로 믿었던 자기에게 얼마나 서운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괜스레 죄인 심정이 되었다.

 요즘 들어, 가뜩이나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선미 마음에 아끼는 후배의 퇴사 소식은 다시 한번 그녀를 심란하게 할 뿐이다.      


 
 사실, 그런 자신도 몇 개월 후에는 재계약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늘 갱신 기한이 다가오면 움츠러지고 비굴해지는 자기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올해는 어떻게 되려나? 가만히 혼자 계산해 본다.

 누가 나의 계약 갱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당연히 K팀장이다.


 문제는 그와의 관계가 과거 팀장들처럼 아주 매끄럽지 않았다.

 현 팀장은 회사에서 손버릇이 지저분하기로 유명한 인사다.

 그는 작년에 영업점장을 하던 때, 지점 여직원들과 술자리에서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을 하다 신고가 접수되어 감사부 조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때도 계약직 여직원들은 신고조차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그가 선미 부서로 오게 되자, 많은 계약직 여직원들로부터 특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자연히 여직원이 하나밖에 없는 부서에서 손버릇이 나쁜 팀장을 상대해야 하는 선미로서는, 유연한 관계 설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가을, 그녀의 계약 만료 기한이 약 2개월 정도 남아 있을 때쯤이었다.

 2차 까지 부서 회식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팀장은 취하지 않은 멀쩡한 얼굴 표정과 말투로 선미에게 대리기사를 불렀다며 중간에 내려 주겠다고 제안했다.

 선미는 팀장 얼굴을 보고는 아무 생각 없이 감사하다며 함께 차량 뒷자리에 동승했다.  

 “선미 주임, 일 잘한다고 여기저기서 칭찬이 자자해!”

  “.....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녀가 어색해한다.

 “무슨 소리. 내가 봐도 야무지게 일하더라고... 그런데 선미 주임 계약갱신이 언제더라...”

  “...........?”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지금껏 그런 걸 물어본 팀장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차는 계속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어색한 침묵이 그들 사이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둘이 함께 뒷좌석에 앉은 것이 어딘지 불편하게 느낄 즈음, 팀장 손이 그녀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모르고 눈을 감는다.

 초로初老의 대리 운전기사는 가끔씩 룸미러room mirror를 통해 뒤를 힐끔힐끔 보며 운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그녀 어깨에 있던 팀장 손은 어느덧 허리를 거쳐, 그녀 엉덩이에 머무르고 있다.

 그녀가 움찔한다.

 그러나 그다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지 모른 채, 가슴만 쿵덕쿵덕 뛰고 있다.

 잠시 후에, 그의 손이 그녀 사타구니 근처에 오자,  

 “저... 팀장님.... 저... 내리고... 싶어요.”

 그녀는 턱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니 왜? 집까지는 거리가 남아 있지 않나?”

  그때 팀장은 앞을 응시하는 척하면서, 손은 계속 꼼지락 거리며 선미의 몸 은밀한 부분까지 근접해 오고 있다.

  “저, 토할 것 같아서요. 술을 너무 마신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내려야겠어요..”

 대리 운전기사는 상황 파악을 벌써부터 하고 있었던 듯 팀장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길가 인도 근처에 차를 세웠다.

 팀장은 불쾌한 듯,

 “여기서 기다릴까?”

  “아닙니다. 먼저 가 주세요. 속이 너무 안 좋아서요.”

  하고 선미는 급히 차에서 내렸다.

  무서웠다. 일단 인도 쪽으로 뛰었다.

 차는 비상등을 켜며 잠시 서 있다가 어느새 훌쩍 떠나 버렸다.

 그녀가 말로만 듣던 성추행을 처음 겪은 순간이다.

 눈에서 눈물이 그녀 뺨을 타고 펑펑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길가 벤치에 앉아서 눈물을 쏟는 중에 남친이 먼저 떠올랐다.

 우식에게 급히 전화를 건다.

 신호는 가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녀는 재 버튼을 힘껏 누른다.

 신호가 간다.

 그녀는 목이 메인 듯,

 “제발! 제발!” 하면서 기다린다.

 드디어, 그가 전화를 받았다.

 장소가 노래방인지 시끄러운 음악소리, 건배하는 소리, 뒤에서 환하게 깔깔거리며 웃는 여직원들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이미 혀가 반쯤 구부러진 우식.

 그는 이유는 묻지 말고 지금 당장 와 달라는,

선미의 울음이 섞인 간청을 흘려들으며,

 내일 다시 연락하겠다면서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다시 거는 그녀 전화를 받지 않고 휴대폰을 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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