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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22. 2020

[단편] 선미의 생각 - 1

계약직과 정규직에 대한 단상

 
 김 차장이 다른 부서로 발령 났다.

 Y팀장은 다음 날 회사 근처 식당에서 직원들과 송별식을 곁들인 부서 회식을 했다.

 그는 식사 도중 오랫동안 부서에서 근무한 김 차장이 나가면 누가 ‘왕 고참’ 이냐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면서 바로 옆자리 유 대리에게 몇 년 차인지 묻는다.

 그는 “3년 차입니다.”라고 대답하고는, 슬쩍 선미 주임 쪽을 가리킨다.

 팀장 눈이 그녀에게 향한다.

 모두 그녀를 주시한다.

 선미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면서 수줍어 어쩔 줄 모르며 손사래를 친다.

 누군가 팀장에게

 “선미 주임이 우리 부서 귀신입니다. 귀신!”

 이라고 고자질하듯 말하며 웃는다.   

 제휴사업부 귀신!

 그렇다.

 선미가 이 부서로 온 지도 벌써 5년이 넘는다.

 그녀는 대학에서 국문과를 졸업했다.

 원래 회사에 입사할 때에는 홍보부 사보社報 담당 계약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사보 업무는 그녀가 원래부터 원하던 것이었고, 본인 적성이나 전공을 고려해도 어울려 보였다.

 단지, 걸리는 것은 2년 계약직이었다.

 그녀가 계약직이라는 낯선 조건 앞에 주춤하자, 회사 측에서는 정규직 전환 프로그램도 곧 신설될 예정이라며,

본인 하기 나름이니 참조해서 판단하라고 알려주었다.

 ‘계약직’ - 당시 그녀는 너무 순진했고 그래서 너무 쉽게 판단했다.

 그저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선이라고 여겼다.

 세상이 세워 놓은 계약직과 정규직 간의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심지어 그 제도를 만든 누군가도 예측하지 못했을 정도로 철옹성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정규직 전환은 운명의 신에게 맡기고 입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입사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회사가 사보 운영을 중단했다.

 당시, 사보는 페이퍼에서 온라인으로, 모바일로 그리고 점차 폐지 수순을 밟아가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그녀 업무가 사라져 버렸다.

 홍보부장은 부서에서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땅한 업무가 없었다. 난감해진 그는 인사부와 협의를 하더니 현재 부서인 제휴 사업부 이전을 권하였다.  

 “부장님, 저는 국문과 출신이라 딱히 마케팅 부서에서 적응이...”

 선미는 자신 없는 투로 말끝을 흐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아냐, 그렇게 생각할 거 없어. 회사일 하는데 전공이 뭐 필요 해. 작년에 퇴임하신 사장님도 철학과 출신이었어.”

 하더니 그녀의 꼼꼼한 일처리는 어디 가도 환영받을 거라며, 전혀 걱정하지 말라며, 등 떠밀 듯이 이 부서로 보냈다.

 그녀는 그렇게 떠 밀려와 자타공인 ‘부서 귀신’이 되었다.

  회사 규정상, 계약직은 2년 임기로 되어 있다.

 그동안, 임기 연장 계약서를 두 번이나 썼고, 올 연말에 다시 쓰게 되면 세 번째가 된다.

 그녀가 ‘귀신’이라고 불리는 동안 부서장만 네 명이 거쳐 갔다.

 수많은 팀원들이 부서를 들어오고 나가고, 누구는 승진하고 누구는 승진 누락의 아픔을 겪는 것을 보아 온 산 증인이 되었다.

 그녀는 계약직에 부여되는 ‘주임’이라는 호칭에 따라 내내 ‘선미 주임’이라고 불렸다.     
 


 
 선미는 둥근 얼굴형에 약간 펑퍼짐하다 할 수 있는 몸매를 지니고 있다.

 술자리 회식에서 가끔 짓궂은 남자 직원들은 그녀에게 ‘맏며느리 감’이라 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유부녀’ 같기도 하다며, 거리감 없이 그녀를 대하곤 했다.

 대학 시절에도 그녀는 또래 남학생들 보다는, 교수님이나 친구 부모님으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복덩이 같다’는 둥,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비슷한 반응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선미가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 우식의 부모님도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며 복이 굴러들어 올 상이라고 그녀를 반기곤 하였다.

 그런데 정작 남자 친구는 그런 말들이 못마땅한지 선미에게 얼굴은 어쩔 수 없으니 몸매 관리라도 좀 하라며 눈을 흘기고 있다.

 우식은 대기업 계열 건설회사 전산부에서 근무한다. 둔하지도, 속물근성에 물든 약삭빠른 유형도 아닌, 그저 무덤덤하고 평범한 직장인이다.

  경상도 남자라서 그런지,
 IT분야에서 일해서인지,
 원래 성격이 그런지,
 둘이 만나면 주로 무뚝뚝한 표정으로 도대체 다정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별수 없이, ‘맏며느리 감’이 대화를 이끌어 가고, 그가 따라서 맞춰 주는 관계가 굳어져 버렸다.

 선미는 그런 성향의 남친이 어떤 때는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가끔 민감할 때는 나에게 관심은 있는 건가?

 또는 혹시 다른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보곤 하였다.

 그렇게 둘이 만난 지도 5년이 되어 간다.



 회사에서 선미 평판은 좋은 편이다.

 그녀의 가장 큰 무기는 아무래도 착한 심성과 성실함이다.

 늘 긍정적이고 회사 일에 부정적인 말이나 표현을 남에게 함부로 내 보인 적이 거의 없다.

 부서의 궂은일이나 야근을 마다한 적도 없고, 계약직 여직원끼리 화장실, 휴게실에 모여 팀장, 정규직 직원들에 대해 뒷담화를 늘어놓을 때에도 그녀는 자리를 피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몇 년 전에, 계약직원끼리 모여 불안한 계약기간을 없애고자 집단으로 회사 측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자는 논의가 있었을 때,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했지만, 겉으로 동의를 나타내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전투적인 성향보다는 거의 순종적, 운명론적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미래와 회사를 바라보는 스타일, 그것이 그녀의 본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렇게 온순하게만 굴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어느 날, 부서 직원 대부분이 외부 행사에 나가고 사무실에는 몇 명만이 남아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옆자리에 있던 Q대리가 모니터 화면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더니, 회사에 대해 투덜거리면서 신경질적으로 얼마 전에 입사한 신입사원을 데리고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팀장이 외근 나가기 전 지시해 놓은 자료 출력을 위해 복사기 근처를 분주히 오고 가다가 우연히 Q대리 컴퓨터 화면을 보게 되었다.

 원래 무심하기도 하고 주인이 없는 남의 컴퓨터를 보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지만,

 화면이 그녀 시선을 잡았다.

 연말 인센티브 지급 내역서!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남의 급여명세서를...‘ 주위를 한 번 둘러본 그녀는 대리의 부재를 확인하자,

가까이 다가가 금액을 확인하게 된다.   

 그야말로 ’eye-popping!'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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