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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19. 2020

[단편] 대쪽 같은 박 전무 - 6 (마지막 회)

직장인 이야기

 
조용한 시골 전원을 연상시키는 한정식집이다.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사장과 박 전무가 마주하고 있다.

 사장은 오늘은 웬일인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식사를 하며 다정하게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저 양반이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전무는 속으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사장이 먼저 운을 뗀다.  

 “내가 이 회사에 온 지 3년이 되어 가네. 박 전무,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닙니다. 사장님. 그래도 사장님이 보살펴주신 덕분에 부족한 제가 이나마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그래! 진심으로 그리 생각해? 그럼, 박 전무와 나 사이에, 복잡하게 이야기할 것 없고.”

 사장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잇는다.

“내가 연임에 도전해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

 전무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 질끈 눈을 감았다.

 어쩐지 지난달부터 조짐이 이상하다 생각했다.

 “왜 말이 없어? 내가 연임하는데 문제가 있나?”

 “아닙니다. 다만, 아직 전례가 없어서...”

  “전례는 만들면 되는 거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가라고 하지 않던가? 조용히 팀을 만들어 도와줘. 내가 잘되면 잊지 않을게.”

 사장 연임!

 회사 설립 이래 전례가 없는 일이다.

 벌써부터 사장 자리를 노리고 여기저기서 작업하는 누군가가 한둘이 아닐 텐데...

 만약, 연임에 성공하면, 박 전무는 1등 공신이다.

 최소한 3년은 사장과 함께 공동운명체로 회사에서 2인자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그동안 여기까지 오느라 피눈물을 흘린 보상을 한 방에 다 받을 수 있다.

  만약, 실패하면, 그 날로 역적이 되는 것이다.

 혁명에 실패한 자에게 기다리는 건 오직 하나.

 옛날에는 부관참시, 현대 직장인에겐 집으로 가는 것이다.  

 고민 끝에,

 결국, 박 전무의 선택은 양다리 작전이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현 사장 힘이 죽었는지, 아직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에서는 사장을 열심히 도와주며 연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확히는 다하는 척한다.

 그리고 뒤로는 누가 차기 사장으로 유력한 지, 그에게 줄은 댈 수 있는지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평소에도 촉이 빠르고 업계에 안테나를 곳곳에 세워놓았던 그는 은밀하고도 치밀하게 움직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장이 연임에 도전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져 나갔다.

 간부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들에게도 사장 연임은 양날의 칼이다.

 모두 공식적으로 입장을 보류한 채, 물 밑에서는 박 전무를 비롯한 비선 그룹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움직이는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장이 연임이 될지 아닐 지에 대한 결정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그 결과를 궁금해하던 어느 날, 박 전무는 회의실에서 부장들과 전월 매출실적 분석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걸려 온 사내 전화를 받는다.

 “네, 박 전무입니다.”

 그리고는 잠시 통화 후에 전화를 끊는다.  

 “누구였습니까?” 기획부장이 묻는다.

 “누구? 응, 사장님.”

 “사장님? 왜요?”

  “점심식사 함께 하자고.”

 “그래서요?”

 “뭘, 그래서야, 이 양반아.

 선약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지.

 여태 뭐 하고 있다가... 도대체, 지금이 몇 시야?...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가네.

이 시간에 갑자기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 아무튼 그 양반은 끝까지 자기밖에 모른다니까...”

 라면서 혀를 끌끌 차며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는 식당에서 부장들을 모아 놓고 대쪽 같았던 자신의 직장생활 여정을 한참이나 펼쳐 보이더니,

 종국에는 자신을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에 비유하였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회사를 위해 할 말은 해야겠다며 사장 연임은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옆에 있던 부장들은 속으로 경악했다.

 평소, 손가락 지문이 닿아 없어지도록 비비고 살아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운명이라고 늘 강조하던 박 전무.

 그의 입에서 ‘대쪽 같은’,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라는 낯선 단어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고,

 흥분한 나머지 함께 배출된 침  방울들이 식탁 위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장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사장 연임이 물 건너갔구나!’    

   

 그날 오후부터,  총무부는 사라진 사가를 다시 원상 복귀시킬 준비에 착수했다. 

 연수팀장은 내년도 사업계획에서 해병대 극기 훈련 프로그램을 전면 폐지하고 원래 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사장의 편파적인 총애 아래 6sigma팀을 운영했던 유 부장은 기획팀에 요청하여 새로운 사장이 오기 전에 팀 이름에서 6sigma를 빼고 다른 이름으로 변경해 달라고 생떼를 썼다. 

 그러면서 본인은 원래 마케팅 전문가인데, 사장 강요로 억지로 되지도 않을 사업에 3년씩이나 끌려 다녔다면서 조직에서 진짜 피해자는 본인이라고 여기저기에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나는 지금 박 전무님의 짐을 박스에 옮기고 있다.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직장운運은 오늘 멈추게 되었다.

 지난 달, 새로 사장이 부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취한 인사 조치 결과였다.

 나는 그분이 본인 주장대로 결코 휘어지지 않는 대쪽 같은 직장생활을 하셨는지 아닌지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A사장의 등산시절부터 시작하여 D사장의 해병대 극기 훈련 시절까지 고비고비마다 본인 생존과 가장으로서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 장렬히 집으로 간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마치 그 끝을 알면서도 정해진 숙명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든 직장인과 같이.
     

 신입사원이었던 나 또한 어느새 부서장이 되어 있다. 

 나도 이제 새로운 사장님의 지역, 출신학교, 성격 그리고 취미활동까지 신경을 써야 할 위치가 된 것이다. 

 나는 과연 이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눈앞이 막막하다.  

 과연, 그분이 나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 답이 될 수 있을까? 


박 전무는 후배들 앞에서 마지막까지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회사 정문 앞에서 배웅을 나온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후배들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차량 앞으로 다가갔다.

 차 뒷문을 열어주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나에게 그는 마지막까지 짐을 챙겨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갑자기 생각 난 듯, 귓속말로 한 마디 남기시고 떠났다.

 “신임 사장님은 등산 마니아mania야, 이번 주말에 아웃도어 매장에서 미리 신상으로 준비해 둬.”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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