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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Aug 07. 2020

[단편] 원래부터 아이히만 - 5

직장인과 출세에 관한 단상

 Y과장은 변태혁 동기 중 가장 절친이다.

 변 과장이 입사 전 2년간 중견기업 근무로, Y는 1년간 영국 어학연수로, 서로 동기이긴 하지만 나이 차이는 Y가 한 살 아래였다. 

 그는 회사는 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소위 사내 정치, 패거리 문화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낼 정도로 순수한 업무 지향적 직원이었다.

  Y는 수도권 영업점 1년 근무를 제외하면 내내 본사에서 상품 개발이나 국내 시장개척 파트에서 경력을 쌓아 갔다.      

 변태혁도 동기 Y와는 캐미가 맞았는지 그나마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동료로 그를 대했다.

 어느 여름날 저녁, 변은 Y에게 한강변에서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강물 위 저녁놀을 바라보며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담담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 정도면 평소 변의 성격이나 행태로 보아 파격적인 모습이다. 사실 Y만큼 사내에서 변 과장을 속속들이 잘 아는 직원은 없었다.

 그는 입사 이후 동기 변태혁이 점점 변하기 시작하더니 아주 다른 인간형으로 변모하는 전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유일한 동료이기도 하였다.

 그렇듯 모든 것을 품어 주었던 Y도 이제는 더 이상 그를 가까이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둘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Y는 변 과장으로부터 카톡을 받는다.

  “Y, 이번 주 금요일 7시에 저녁 가능?”

  “가능. 왜?”

 “동호회 하나 만들려고 해. 너 등산 좋아하잖아.”

  “나는 오키. 누가 더 참석하나”

  “와 보면 알아. 그리고 동호회 이름은 소나무 등산반”

 “소나무 등산반? 무슨 의미지?” “참석하면 알켜 주지. 꼭 필참.”
하면서 금요일 오전에 확인 메일까지 챙기며 참석을 독려했다.

 Y는 등산을 좋아하기도 했고, 정기적으로 사내에 그런 모임도 필요하다 싶어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일곱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아는 얼굴들. 특이한 점은 각 본부별로 한 명씩 참석했다. 그리고 면면이 자기 분야에서 S급 또는 최소 A급이라고 인정받는 에이스 직원으로만 구성되었다.      

 변태혁은 등산을 좋아하는 선후배끼리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인근 산으로 등산도 가고 친목도 다지고자 모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모임 실무를 맡아 총무역할을 하겠다고 자임했다.

 이어, 동호회 이름을 ‘소나무 등산반’으로 소개하면서,

 우리는 줄도 없고 빽도 없다며, 물고기로 따지면 잡어이고 나무로 치면 잡목이라며, 그저 굽은 소나무가 묵묵히 선산을 지키듯이 회사를 지키는 소나무가 되자며,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모임이 한동안 활성화되었다.

 변 총무는 자신이 주도한 등산반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손이 많이 가고 세세히 신경 써야 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 소나무 회원들로부터 많은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1년이 경과되면서 모임 성격이 이상하게 변질되고 회원 간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인사이동을 통해 변두리 부서로 밀려난 경우, 퇴사하여 다른 회사로 옮긴 경우, 영업점으로 발령 난 경우에는 예외 없이 단톡방에서 어느 순간 퇴출되었다.

 아무런 사전 통지도 없이 퇴출당한 몇몇 직원들이 배신감을 토로하거나, 거세게 항의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또, 그 빈자리는 새로 승진하거나 영전해 오는 직원들로 채워졌다.

 소나무 등산반의 전입과 퇴출이 변 총무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결정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등산반은 변태혁이 자신의 직장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들, 서로에게 밀어주고 끌어주며 회사 정보를 교환할 수준이 될 만한 직원들을 모으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몇 차례 개선을 요구해 보았지만 변은 요지부동.

 원래 모임 취지가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몇몇 직원들이 불순한 모임 운영 취지에 불만을 토로하며 탈퇴를 하였다.      

 그즈음에,
 동기 Y는 변 과장이 더 이상 윗 상사들을 맞춰가며 생존하는 존재에서 진화하여 본인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악의 화신으로 - 굳이 비유를 들자면,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에서 아돌프 히틀러로 - 변모하는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Y는 짤막한 메일을 동기 변에게 남기고 소나무에서 내려왔다. 


 “사랑하는 동기야, 네가 자꾸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 서글프고도 무섭다!”     




 Y는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장 발굴 사업부로 발령을 받았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기존 사업 이외 새로운 사업영역을 발굴하여 키우는 일이다.

 그가 새로운 시장을 찾아 여기저기 정신없이 헤매며 다니던 어느 날, 사무실 같은 층에서 동남아 사람으로 보이는 외국인 두 명의 여자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부서에서 3년째 있는 옆 자리 최 과장에게, 

 “저분들은 누군가요?”

 “아, 쟤들이요? 동남아 어딘가에서 파견 온 친구들이라고 하는데요..”

 “우리 회사에서 어느 부서 소속인가요?”

 “소속이요? 소속은... 우리 부서가 맞는데요....” 최 과장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아주 심드렁하게 답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Y가 그들에게 접근한다.

 두세 평 남짓 옹색한 공간에 책상 두 개, 의자 두 개가 전부다.

 의자 뒤쪽에는 쓰다 남은 마케팅 용품들이 박스에 욱여넣어진 채 산더미 같이 높게 싸여 있다. 보기만 해도 무너질까 위태위태해 보였다.

 좁은 공간에는 회의용 테이블조차 들여놓을 여유가 없다.

 그 광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Y는 그들에게 접근한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시장 발굴 사업부로 발령받은 Y팀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당황한 듯 황급히 일어나며 인사한다. 그러더니,

 “저의 한국 이름은 여름입니다.”,

 “저는 수미입니다.”라며 역시 동남아 엑센트가 묻어나는 한국말로 제법 유창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그들은 베트남 국영 카드사 직원들이며, 베트남 국립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전공하고, 한국에서 사업하기 위해 2년 전부터 파견 나와 있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후 헤어질 즈음에,   

“이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까지요?” 아니, 같은 층에서 채 2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를 이곳까지 라니!

 “네. 여기에 와 주신 분은 팀장님이 처음입니다. 감사합니다.” Y는 여러 가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소속은 우리 부서인데, 2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고 관심조차 없었다니. 또 아무리 그래도 다른 나라 회사에서 파견 오신 분들에게 그토록 비좁고 누추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Y는 다음날 즉시 그들 사무공간을 두 배로 늘려 주었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박스를 지하 창고로 옮겨 주었으며, 사무실 입구에 한국어로 ‘베트남 국영 카드사 한국 사무소’라는 명패를 큼지막하게 만들어 걸어 주었다.

 베트남에서는 최고 엘리트라고 선발되어 한국에 파견 나왔던 두 직원은 그동안 못 받아본 환대에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트남 직원들이 외부로 출장을 분주히 다녀오는 것을 목격한 Y가,  

 “어디 다녀오세요?”

 “네, 명동에 다녀왔습니다.”

  “명동? 명동에는 왜?”

  “우리 베트남 관광객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려고 합니다.”

 그때 문득 Y는 얼마 전, 새해 예산 편성과 관련하여 경영기획본부장이 주재한 회의가 떠올랐다.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다소 흥분해서 말했다.

 “우리 회사 예산 낭비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 예를 들면, 작년에 베트남 사업비용으로 글쎄 무려 1억 5천만 원이나 예산이 올라왔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여러분은 그 사업이 진짜 될 만한 사업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자기 돈, 자기 회사 아니래도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제발 그런 식으로 사업계획이나 예산 올리지 마세요...”  



   

 Y는 사업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팀원들과 여름 팀장, 수미 과장과 함께 베트남 관광객이 몰리는 명동, 동대문, 주요 대학가, 제주도 일대를 샅샅이 훑으면서 시장 가능성을 조사했다.

 초창기라 그런지 사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애를 먹었다.

 가맹점으로부터는 시니컬한 반응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어느 가맹점에서는 설명하는 도중 관심 없다며 쫓겨 나오기까지 했다.

 수모를 당한 팀원들은 서서히 지쳐가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예산관리 부서에서는 엉뚱한 회사 돈을 쓴다며 못마땅하게 여기더니 견제가 들어왔다.

  Y는 팀원들을 다독이며 이 모든 난관을 하나씩 헤쳐 나갔다.      

 마침내, 시장조사 완료 후 전체회의 결과,

 ‘시장 가능성은 긍정적이다. 아직은 초창기이지만 집중적으로 투자를 한다면, 향후에는 뜨거운 시장으로 커나갈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Y팀장은 그동안 미지근하게 반응하는 회사를 설득했다.

 그리고 Y 주도로 마침내 회사는 베트남 국영 카드사와 상호 배타적 독점계약을 체결하고,

 베트남 카드가 한국 가맹점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대폭 확대하고,

 가맹점 마케팅도 적극 전개하여,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미래시장에 선도적으로 진출하였다.

 또한, 역으로 다낭, 나트랑, 호치민 등 베트남 관광지에서 Y회사 카드 회원이 사용하는 거래는 모두 한국으로 전송되어 Y회사에서 직접 처리하는 프로세스가 개발되었다.

 이 또한 독점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상당한 매출효과를 기대하게 되었다.

 때마침 베트남 경제가 급속히 뜨거워지고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베트남 관련 매출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회사 수익도 비례하여 크게 늘어났다.       

 매출이 정상 궤도에 올라서자, 드디어 양사 고위 임원들이 왕래를 시작했다.

 각종 계약과 조인식이 계속 이어지면서 베트남은 이제 회사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지난 몇 년 동안 견제구나 날리며 시니컬한 태도로 일관하던 부서들은, 사업이 구체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마치 썩은 생선에 파리 떼 달려 들 듯 각자 손에 숟가락을 하나씩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불길한 징조는 인사이동 발표로 확인되었다.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사업 초창기부터 고생한 Y는 지방 소도시 B급 지점장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자리에는 의외의 인물이 - 본인도 왜 그 자리에 발령이 났는지 모른다며 황당해하는 M팀장 - 대신하였다.

 본부장은 물론이고 Y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사 조치에, 회사 측은 그동안 노고를 고려해서 지점장 발령을 냈다며 오히려 영전이라는 이해 할 수 없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Y는 하는 수 없이 지점으로 내려갔고, Y후임자는 업무장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6개월을 간신히 채우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다시 빈자리에는 더 의외의 인물이 자리를 채웠다.  


 그 인물은 바로 변태혁 팀장이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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