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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Aug 08. 2020

[단편] 원래부터 아이히만 - 6(끝)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

그 인물은 바로 변태혁 팀장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으나, 결국 세상에는 비밀이라는 것이 없는 법이다.

변태혁이 디지털 사업 부서에서 남다른 ‘쪼임’으로 대학 선배를 집으로 보낸 ‘솜씨’를 눈여겨본 사장은, 그를 발탁하여 인사부서에 보낸다.

 본인 캐릭터를 살짝만 비추었는데도 ‘솜씨’를 인정받은 그는 슬슬 간이 붓기 시작하더니 더 큰 먹잇감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큰 것 한 방으로 다음 자리는 실장으로 승진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동기들이 차장이나 팀장 포지션에 서 헤맬 때, 그는 본부장 겸 실장으로 승진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회사 내 부서 전체를 훑으며 자리를 찾던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베트남 사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매출 증가세가 그의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독점적으로 계약이 체결되어 있다는 점이 그의 결심을 확고하게 해 주었다.

 한 가지, 동기 Y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걸렸다.

 하지만, 변태혁에게 이런 상황에서 입사 동기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단지, 그는 사업 기반을 조성하고 독점 계약을 체결한 성과가 있는 Y를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내치면 회사 내 여론이 좋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낼 명분이 필요했다.

 이럴 때, 변 팀장의 남다른 ‘솜씨’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변은 Y가 베트남 출장 중에 현지 제휴처 직원들과 식사 도중 자신이 곧 회사 실세가 될 거라며 과도한 접대를 요구했다거나, 베트남에 파견되어 있는 회사 직원들한테는 자신에게만 충성하도록 강요했다는 허위 보고서를 만들어 사장에게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받은 사장은 크게 분노하였으나, 그간 성과를 무시하기도 어려워 결국 인사이동을 통해 겉보기에는 승진, 실질적으로는 좌천이라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 이후, 변태혁은 Y를 대신할 직원으로 고객 소비성향 분석을 담당하던 M팀장을 지목했다.

 일종의 완충지대로 쿠션을 한 번 치는 의미에서 어벙한 팀장을 그 자리에 잠시 몇 개월 있게 하고, 업무 미숙을 이유로 교체하면서 자신이 최종 들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계획은 주저 없이 실행에 옮겨졌다.

 일단 원하는 부서 입성에 성공한 변태혁은 한동안 기존 Y의 팀원들을 유지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교체를 통해 2년 차가 되자 자기가 원하는 직원으로 자기 컬러를 가지고 부서를 운영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 이후는 탄탄대로. 독점계약에 한류 열풍은 매출에 양 날개를 달고 저 멀리 하늘까지 날아올랐다.

 변태혁이 베트남 사업 부서에 발령받은 지 3년.

 그 부서는 이제 회사 내에서도 핵심으로 성장하여 사장이 직접 챙기는 사장 직속이 되었다.

 많은 직원들은 Y가 다 닦아놓은 자리를 변이 숟가락만 들고 와 성과를 가로챈 거라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3. 
고급 과정


 4월 두 번째 수요일. 회사 30주년 창립기념일. 

 변태혁 팀장 아니 이제 변태혁 실장으로 승진한 그는, 신사업 부문에서 회사 30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는 이유로 전 직원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제 실장에 걸맞은 제법 무게감 있는 자세와 침착한 어조로 참석한 사장님을 비롯한 내외빈 인사 앞에서 베트남 사업 초창기를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 사업이 시작될 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황무지였습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었죠.

 모두들 비아냥거릴 뿐, 그런 무모한 사업에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 사업이야말로 우리 회사의 미래 먹거리가 분명하다고.

 그런 확고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베트남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지, 베트남인 거주지, 한류 열풍의 진원지를 찾아다니며, 온갖 무시와 모욕을 참아가며 가맹점을 설득하고, 모집하면서 이날을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황무지에 눈물로 버무려진 씨앗이 어느새 싹이 트고 잎이 돋아나고 마침내 열매의 결실을 맺기까지는 참으로 지난至難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더니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훔치기까지 하였다.   
   

 모두 침묵.


 “하지만, 그 쓰디쓴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이제 매출이라는 과실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산출물은 여기 계신 전 직원들의 합심으로 이루어 낸 것입니다.

 사장님 이하 모든 직원들의 도움이 없었던들,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시장 발굴 사업부는 단지 그 밑거름이 되어 조그마한 흙 한 삽을 떠 얹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성과 앞에서, 저는 우리 모든 직원 분들께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 자신을 더욱 빛낸 그의 연설은 변태혁이라는 인물을 다시 한번 레벨-업 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모두 일어서서 지난 시절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 자리에는 정 대리도 일어나 박수를 쳤다.

 베트남 사업 원년 멤버들은 지난 3년 사이에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리더였던 Y팀장은 변태혁의 집요한 견제 속에서 영업점을 돌다 결국 퇴사했다.

 박 차장, 한 과장, 유 대리 모두는 중간에 다른 본부로 전출됐다.

 그 당시 계장이었던 정 대리만 너무 어려서, 또 어리다는 이유로 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늘 변태혁 자신이 베트남 사업 초창기에 피 눈물로 얼룩진 씨앗을 직접 뿌리고 다녔다는 그 감동적인 연설을 들었다.  

 한 여름 뙤약볕에서 함께 땀을 줄줄 흘려가며 가맹점을 모집하러 다녔던 팀 선배들,

 김밥과 떡볶이로 때우며 사업 전망을 가지고 밤늦도록 말싸움까지 벌여가며 토론했던 순간들,

 예산 부서의 견제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Y팀장님

 - 이 모든 베트남 사업 역사를 몸으로 직접 겪은 유일한 증인 정 대리.

 그는 변의 연설이 끝나자, 건성건성으로 박수를 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대체 인간의 양심과 이중성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라는 질문과 ‘악의 보편성’이라는 다소 심오하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는, 그 대답을 이제 괴물이 되어버린 변태혁과 함께 하는 직장생활 속에서 찾아보기로 하였다.                   “끝”

주 1) 제목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차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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