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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Sep 05. 2020

[단편] 그녀의 봄 나들이 - 3

결혼, 권태 그리고 다시 두근거림에 대하여...

 아침부터 한 차례 전쟁을 치른 진아 팀장.  

 스트레스가 위험 수치를 한참이나 넘었다.

 답답해진 그녀는 오후에 영업을 핑계로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향했다.

 도착지는 대학 동기 혜원이 운영하는 카페다.

 혜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함께 다닌 절친이다.

 그녀는 심리학과 출신답게 사람에 대한 감성과 심리를 잘 분석하고 파고드는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런 재능 덕분에 4학년 때 광고회사 공모전에 합격하고 졸업과 동시에 광고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주니어 때부터, 여러 개의 히트 카피가 그녀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그렇듯, 직장에서도 꽤 인정받고 잘 나가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미래는 현재보다 더 자유롭게 되길 원한다면서, 또 그렇게 살고 싶다면서,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잠수를 탔다.

 심지어 단짝인 진아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혜원은 그동안 제대로 된 커피 문화를 배우고 오겠다며 떠난 후, 정확히 1년 반 만에 다시 돌아왔다.

 본인이 직접 터득한 커피 고유의 맛과 향기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을 연상시키는 원목가구가 곳곳에 배치된 독특한 매장 분위기가 주목을 받으면서, 완전 레드오션인 커피시장에서 차별화에 확실히 성공했다.

 피크 타임이 지나고 손님들도 뜸한 시간, 혜원과 진아는 모처럼 둘만이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진한 에스프레소 더블 샷과 통통 튀는 사 분의 삼박자 재즈가 그들 곁에 있다.

 처음에 진아는 직장 고민, 남편과의 갈등, 육아 문제를 한 다발 들고 가 친구에게 늘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점점 가볍고 우스워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 스트레스 또한 미혼인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것이 적절한지 회의가 들었다.

 이후, 그녀는 커피, 대학 시절, 친구 근황을 중심으로 화제를 바꾸어 공통분모를 만들어 갔다.

 아무튼 지금, 업무시간에 땡땡이치면서 직장인으로서 일탈된 행동을 하는 지금, 진아에게는 꽤나 스릴 있고 짜릿한 순간이다.

 “참, 진아야. 너 종식 선배 이야기 들었어?”

 “종식 선배?”

 “응, 학교 다닐 때, 너를 죽자 살자 쫓아다니던 그 선배. 얼마 전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어. 네 안부를 묻더라고. 뭐라 대답할까 하다가 현모양처로 잘살고 있으니 그만 신경 끄셔도 된다고 질러 버렸다. 잘했지?”

 혜원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후회 안 해? 너만 바라보고 살겠다는 선배를 걷어차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와 결혼한 거?“

 혜원은 슬쩍 그녀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한다.

 진아는 혜원이 왜 그렇게 물어보는지 잘 알고 있다.

 친구가 걱정해 줄 만큼 그녀와 남편은 무기력하고 의미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다를 떨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고자 왔는데 덤으로 얹어서 나가는 느낌이다.

 요즘 남편과 관계를 생각해 보니 더욱 우울하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두 남자 사이에서, 그때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었지?‘




 집으로 퇴근한다.

 아들 우석이 자기 방에서 뛰어나와 안긴다.

 그는 자기 엄마에게 오늘 태권도장에서 배운 동작을 보여 주겠다며 하늘을 향해 손과 발을 어설프게 내지른다.

 한참을 그러더니 두 주먹을 쥐고 허리에 찬 채 ’태권‘하며 마지막 기합과 동작으로 마무리 인사를 한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냉장고에 필요한 밑반찬 사다 놓았다. 늦었다, 쉬거라. 나는 이제 가 볼 란다.”

 시어머니는 거실에서 그녀가 퇴근하는 걸 바라보며 일어선다.

 그리고 잊었다는 듯 한마디 덧붙인다.  

 “아무리 직장일이 힘들어도 주말에는 집 청소 좀 하고 냉장고 정리해라.“

 맞벌이 부부라도 가사는 당연히 당신 며느리 몫이다.

 당신 아들에게는 단 한마디도 못한다.

 그 아들은 지금 케이블 채널에서 사골국물 우려먹듯 재방송 해주는 PGA 프로골퍼들의 환상적인 샷에 반해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요즘, 남편은 골프에 푹 빠져 있다.

 골프 채널을 반복해서 시청하거나 주말 골프 라운딩에 정신이 없다.

 가끔씩 케이블 TV나 종편에서 유치하기 그지없는 드라마를 볼 때에는 입을 헤 벌리며 소파에서 살기도 한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책이나 문화생활과는 동떨어진, 평범한 아주 평범한 직장인으로, 소시민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남편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것이 그토록 기대했던 결혼 후에 내 남편 모습이었나?‘ 

 친구 혜원에게서 대학 시절 자기를 따라다닌 종식 선배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그런 남편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대학시절 학내 동아리에서 선후배로 만났다.

 그때, 진아는 서구적인 마스크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제법 따라다니던 학과 선배도 있었고, 그중  한 명이 종식 선배였다.

 동아리에서도 그녀 인기는 여전했다.

 현재 남편은 집적거리며 접근하는 남자 선후배와는 달리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진아는 자기에게 목숨이라도 걸 듯한 종식 선배를 버리고, 자기에게 무심한 현재 남편을 선택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진아가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시 남편은 경영학과를 다니며 주식투자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했지만,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인문학적 소양도 상당했고 관심도 높았다.

 소설책과 역사 관련 책들이 늘 그의 주변에 붙어 다녔다.

 가끔, 괜찮은 예술 영화라도 상영되면 후배들을 데려가 단체관람을 시켜 주기도 하는 ’멋진 선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는 진아에게 ’신의 아그네스‘라는 연극 티켓을 보여 주며 함께 가자고 했다.

 뜻밖이었다.

 호기심에 찬 그녀가 선배를 따라갔다.

 그녀는 연극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눈을 감으며 무대가 남겨놓은 감동을 곱씹고 있는 선배의 진중한 모습에 반했다. 

 그리고 둘은 저녁을 먹으면서 주인공 아그네스, 신, 종교에 대해 감성이 섞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선배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진아는 자기 앞에 있는 그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빠져들 것만 같았다.

 저 정도 남자라면 자기를 멋지고 우아한 그 어딘가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헤어질 때 진아가 먼저 선배에게 말했다.

 ”선배! 나 선배에 대해 알고 싶어요. 우리 사귀어 볼래요?“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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