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일하는 5년차 직장인입니다. 지난 글에는 제가 일본에 처음 발을 디뎌, 유학생을 거쳐 직장인이 된 5년 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왕 저의 옛 발자취를 전해드린 김에, 추후 쓰려고 했던 ‘그래서 일본에서 어떤 회사에 다녔는지’도 풀어내보려고 해요.
코로나로 취업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8개월이나 기다린 끝에 드디어 도착한 일본. 그리고 공항에서 처음 만난 동기들, 남자 셋, 여자 넷. 같은 입장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효고현 아와지시마라는 작은 섬에서 ‘지방 창생’을 목표로 하는 회사에서의 첫 직장이 우리를 연결해 주었어요.
입사 후 첫 한 달 동안은 회사의 다양한 부서를 체험하는 연수가 진행되었습니다. 아와지시마는 일본 내에서 양파의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에요. 직접 양파를 심으며 농업을 배우고, 일본 전통 북인 ‘타이코’를 연주하고, 회사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직접 서빙도 해봤죠. 동기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든 게 새로웠어요. 아직 일본에 있는 것이 여행인지 삶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나날이었습니다.
연수 후 배속된 곳은 관광 영업 부서였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수학여행을 기획하는 여행사 부서를 타깃으로, 회사가 운영하는 관광 시설을 투어 프로그램에 포함해달라고 설득하는 일이었어요. 처음 받은 미션은 아와지사마가 있는 간사이 지역의 학교들을 리스트업하고, 우편 전단지를 보내며, 콜드 콜을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비즈니스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긴장감이 항상 가득했습니다. 회사의 대표 번호와 연결되는 전화기는 항상 제 책상 위에 놓여 있었지요.
몇 주의 시간이 지나 전화가 익숙해질 무렵, 이것보다 더 큰 시련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방문 영업이었습니다. 코로나로 단체 여행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여행사를 직접 찾아가 설득해야 했어요. 한 달 동안 40여 곳을 방문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쩔쩔맸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든든한 동기들과 호랑이 팀장님의 피드백이 있었어요.
계속 시도하다 보니 저만의 세일즈 철학도 생겼습니다. 바로 제 계약은 제 손으로 끝까지 책임진다는 거예요. 제가 계약한 단체 여행객이 시설에 오는 날에는 찾아가서 투어 시작부터 끝까지 현장을 지원했습니다. 이런 책임감은 저희 팀장님에게서 배웠어요. 저희 팀장님은 고등학생 아들을 홀로 키우며 매일 왕복 4시간을 운전해 출근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비즈니스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늘 냉철하고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모습에 저는 처음엔 무섭다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팀장님의 따뜻한 면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입사원 온보딩을 준비하며 명함 발주를 알아서 챙겨서 미리 끝냈을 때, 아무 말 없이 기특하다는 눈빛을 보내셨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저희 동기들은 회사 기숙사에 함께 살았어요. 시트콤 ‘논스톱’ 기억하시는 분 계실까요? 그것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우당탕 매일 시끌벅적했죠. 아와지시마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다녀 차가 없으면 불편한 곳이에요. 그래서 항상 방문 영업으로 차를 끌고 다니던 제가 퇴근 후 슈퍼에 들러 장을 봐 오면 손이 큰 친구가 맛있게 만들어 맥주와 함께 다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었어요. 회사 일로 스트레스받은 날에는 아마존에서 산 블루투스 마이크를 티비에 연결하고 불을 끄고 우리만의 노래방을 열었습니다.
주말에 함께 차를 몰고 아와지시마에서 제일 맛있는 젤라또 맛집에 다녀온 것도 기억에 남아요. 아와지시마는 우유가 맛있기로 유명한 곳인데, 이 섬에서 갓 짜낸 우유로 만들어 정말 부드럽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어요. 이 친구들이 있었기에 시골에서의 생활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우리 동기들, 일본에 온 지 5년이 되었는데 아직 한 명도 귀국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제 일본 생활의 처음을 함께 해 주었기에 지금도 이 친구들을 생각하면 든든해요. 우리 모두의 첫 일본 생활은 서로의 존재 덕분에 조금 덜 외로웠고, 훨씬 더 특별했어요.
돌아보면 아와지시마에서 첫 시작을 한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콜드 콜이 두려웠던 제가 이제는 회사 내에서 세일즈 실적 1위를 따 내기도 하고, 호랑이 팀장님께 배운 책임감은 이후 이직한 직장에서도 중요한 저만의 원칙이 되었죠. 동기들과 지낸 시간 역시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배움과 성장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아와지시마에서 배웠습니다. 여러분의 도전에도 제가 배운 것들이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