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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3. 2020

도쿄 한 달 살기를 시작하다

고쿠분지? 거기가 어디야?

취미로 시작한 일본어가 밥을 먹여 줬습니다.

일본에서 취업하고 싶어 혼자서 두 시즌 동안 고군분투했더니, 6개 회사로부터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그 속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처음 들어본 동네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하다

일본 회사는 일제히 6월 1일부터 면접 전형을 시작한다. 대부분이 도쿄에서 대면 면접으로 이루어진다. 수 십 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했기 때문에, 면접 참여를 위해 약 한 달 동안 도쿄에 체류하기로 결정했다. 도쿄행이 정해지고 나자 가장 먼저 걱정이 되었던 것은 숙박 문제였다. 다음과 같은 숙소가 필요했다.


면접 정장을 다림질할 수 있는 곳

거울 앞에서 면접 연습을 할 수 있는 곳

가끔 온라인 화상 면접을 볼 수 있도록 조용한 곳

식자재를 사 와 요리를 할 수 있는 곳


호텔은 너무 비쌌고, 호스텔은 장기 체류에 적합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로 눈을 돌려 홈스테이나 셰어 하우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깔끔한 인테리어의 셰어 하우스도 있었지만, 방 한 칸만 내어 줄 뿐 세입자 간의 교류는 전혀 없는 분위기였다. 한 달 동안 이런 공간에서 혼자 산다면 답답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도쿄에서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호스트와 같은 건물에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이 숙소였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고쿠분지'라는 지역에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괜찮을까? 걱정도 잠시, 우수 호스트라는 마크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숙소를 고를 때 후기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무려 일 년 간 이 숙소에서 생활했다는 한 게스트의 후기가 단연 눈에 띄었다. 호스트와 가족처럼 지내면서 평범한 일본 가정집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내가 찾던 숙소였다. 그렇게 이 곳에서 나의 도쿄 한 달 살기가 시작되었다.



호스트 요코 아주머니와의 첫 만남

어머니 요코, 딸 아야. 두 모녀가 이 곳의 호스트이다. 숙소는 이층짜리 단독 주택이다. 방 네 개에 게스트를 받고, 두 호스트는 나머지 한 방에서 일주일 씩 번갈아가면서 머물고 있었다. 집은 제일 가까운 역인 고쿠분지 역에서도 도보 20분이 걸린다. 요코 아주머니로부터 짐이 많을 것 같으니 택시로 역에 마중 나가겠다며 도착 시간을 알려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지낼 방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역에서 만난 요코 아주머니는 후기 그대로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호스트였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저렴한 식자재 마트, 역까지 가는 마을 버스정류장,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 가 보라며 한식을 파는 식당까지 알려주었다. 그녀의 세심함에 도쿄까지 날아오는 동안 쌓였던 피로가  녹듯이 사라졌다. 다음 날 오후에 첫 면접이 있다고 하니 지하철 지도를 펴고 면접 장소까지 가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따뜻한 웰컴 티와 함께.



일본에서 첫 면접을 보다

하필이면 일본에 와서 보는 첫 면접이 제일가고 싶은 여행 회사의 면접이다. 시간은 오후 5시. 면접 노트에 적어 둔 예상 답안을 외우다 집을 나섰다. 같은 곳에서 산 것처럼 똑같은 검은 정장을 입고 네모난 검은 가방을 든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일본의 취업 준비생은 모두 똑같은 복장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외국인은 나뿐인  같아 긴장이 배가 된다.


역으로 가려면 집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면접 대기실에 들어가니, 역시나 똑같은 정장을 입은 지원자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한국 박람회에서 면접을 봤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가슴이 두근거린다.


호명하는 순서대로 하나 둘 면접장에 입장하고, 마지막 순서로 이름이 불렸다. 면접관은 긴장하지 말라며 오늘 기분이 어떤지 묻는다. “어제 일본에 왔고, 오늘 처음 면접을 봅니다. 일본어로 해야 해서 더 떨리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이 면접을 위해 일본까지 온 거냐며 놀라는 표정이다. 예상과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긴장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30분 간의 면접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준비한 이야기를 다 하지도 못했다. 긴장이 풀려 터덜터덜 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옆자리에서 면접을 봤던 지원자가 따라와 말을 건다. “한국에서 왔어? 일본에서 취업하는 거야? 대단하다!” 그녀도 나처럼 관광 전공자였고, 지원한 회사가 겹쳤다. 2차 면접에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고쿠분지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합격입니다

‘띵동’ 메일 알림이 울린다. ‘마이페이지에 접속해서 면접 결과를 확인하세요.’ 면접이 끝난 지 한 시간 만에 결과가 나왔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합격이다. 요코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고 자기 일인 양 뛸 듯이 기뻐한다. "닷쨩, 오늘 저녁은 축하 파티를 하자!" 고쿠분지에 오길 잘했다. 낯선 도쿄 땅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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