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아주 단순하다. 그녀의 삶은 이제 모든 것이 뻔했다. 젊음이 가고 나면 그다음엔 내리막길이다. 어김없이 찾아와서는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노쇠와 질병들, 그리고 사라져 가는 친구들. 이 이상 산다고 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고통의 위험만 커질 뿐이었다.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한다.
베로니카는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함으로써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일주일 만에 깨어나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정신병원이었고, 의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의 심장이 크게 훼손되어 앞으로 오륙일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자살은 아직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베로니카는 이제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면 된다. 그것도 날짜가 정해진 죽음을. 파올로 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정신병원에서 날짜가 정해진 죽음을 기다리는 주인공 베로니카의 이야기입니다.
베로니카는 이곳 정신병원에서 세 사람의 환자와 한 의사를 만납니다. 제드카, 실패한 첫사랑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충격요법이라는 치료과정에서 유체이탈의 경험을 한 여성. 마리아, 공황장애로 스스로 입원을 결정한 전직 변호사로, 이제 본인은 정상이라고 판단되었으나 병원 밖으로 나가 생활하길 원치 않는 중년 여성. 외교관의 아들로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다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20대의 젊은 청년 에뒤아르. 그리고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할 논문을 준비 중인 의사 이고르 박사.
“미쳤다는 게 뭐죠.” 베로니카가 제드카에게 물었다. “미쳤다는 게 뭔지 몰라? 미쳤다는 건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우린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 “당신은 미친 것 같지 않아요” “아냐, 난 미쳤어, 난 미친 여자로 남고 싶거든.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고 싶어.”
베로니카는 결코 상상해 본 적 없는 모든 것을 상상했다. 가장 천박한 것에, 가장 고결한 것에 자신을 내던졌다. 그녀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비밀스러운 욕망들을 자기 자신에게 감추고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어떤 대답도 필요치 않았다. 자기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베로니카가 마리아에게 말했다. “왜 전에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요? 내가 자유롭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왜 항상 금지된 상황들을 상상하지 못했을 까요?” “금지되었다고? 잘 들어, 금지된 것은 단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는 인간의 법이, 다른 하나는 하늘의 법이 금지하는 거야. 절대 누군가에게 성관계를 강요하지 말 것, 강간으로 간주되니까. 그리고 절대 어린아이와 관계를 갖지 말 것, 가장 큰 죄악이니까. 이 두 가지만 빼고 너는 자유로워.” 마리아는 생각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내부에 있는 광기를 인식하고 그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은 더 나빠질까? 아니, 사람들은 보다 올바르고 보다 행복해질 것이다.’
베로니카가 에뒤아르에게 말했다. “내가 널 안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어. 네게 ‘사랑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아니, 내가 이 밤을 넘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 말을 하기엔 너무 늦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미친 짓은 바로 사랑이야.” “사랑받는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 널 사랑할 수 있게, 내게 그럴 힘이 있다면 하룻밤이라도 더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난 네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녀는 좋고 나쁨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그 감정이 솟아오르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이제 자기 절제, 가면, 얘의 바른 태도라면 지긋지긋했다. 자신에게 남은 이삼일 동안, 베로니카는 철저히 무례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나는 좀 더 미친 짓을 했어야만 했어.
마침내, 베로니카는 입을 열었다. “네가 여기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내가 널 데려갈게.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에뒤아르. 너도 알잖아.” 에뒤아르가 말했다 “우린 영원히 버틸 거야, 베로니카. 내가 천국의 환영들을 잊느라 이곳에서 보낸 똑같은 낮과 밤보다는 훨씬 오래. 난 그것들을 거의 잊고 지냈어. 하지만 지금 천국의 환영들이 돌아온 것 같아.” “떠나자, 미친 사람들은 미친 짓을 하니까.”
이고르 박사의 진료실로 들어온 남자 간호사가 어물거리며 말했다. “안 좋은 소식입니다. 환자 둘이, 대사 아들하고 심장에 문제가 있던 아가씨하고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뭣들하고 있었던 거요, 여기서 당장 나가요!” 간호사가 겁에 질려 나간 후 박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가고 있는 길에 본의 아니게 뛰어든 한 젊은 아가씨 덕분에 그가 과학적으로 실험해 볼 기회를 얻게 된 치료법을 논문에서 다루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아주 심각한 상태로, 수면제 중독에 의한 초기 혼수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 그녀는 거의 일주일 동안 삶과 죽음 사이를 헤맸다. 그가 그 기발한 실험을 구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단 한 가지,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 거기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의 실험은 성공했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논문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가 될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제목에 대한 호기심과 저자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정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오래전부터 죽음이란 소재는, 죽음을 배우는 것이 삶을 배우는 것이란 말과 함께 언제나 나에게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작가는, 죽음에 대한 자각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옛 성인들의 말이 타당하다는 것을 책 속 인물 이고르 박사의 실험을 빌려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삶이 일주일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베로니카는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욕구와 감정에 충실합니다. 그럼으로써 자유와 평안을 느낍니다. 마치 죽음이 그녀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기라도 하듯이. 우리 모두도 베로니카처럼 시한부 인생입니다. 단지 그 시한이 언제일지 모를 뿐입니다.
그럼 시한부 인생인 우리는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회는 우리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미쳐야 하나 봅니다. 적어도 정신병원에 끌려가지 않을 정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