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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an 02. 2021

비움으로 채워간다.

얼마 전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글을 왜 쓰냐고.

그런데 이번에는 좋아서, 라는 말이 단박에 나오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저 자연스레 좋아서, 뭐든 끄적거리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글을 쓰는 것은 즐거움보다 고통일 때가 많았다. 딸아이 역시 기말고사가 코 앞인 자신보다 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내가 궁금해서 물은 것이었다.


내가 새하얀 화면 속에 쏟아낸 것들은 모두 오래된 감정의 찌꺼기였다. 오랜 시간 뒤엉킨 채 외면당한 내 삶의 실타래를 푸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천천히 눈 앞의 것만 바라봤다.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꼬여있는 실타래를 푸는 것은 나 자신을 아프게 하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을 치유했다. 결국 누군가를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일은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내 삶을 무겁게 짓누르던 것을 꺼내 놓자 그 자리는 부끄러움이 대신했다. 그래서 때론 읽히지 않아 아쉬우면서도 때론 읽히지 않아 다행이었다. 더구나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에 대한 비판의 글을 읽을 때면 절로 뜨끔했다. 하지만 스쳐가는 누군가는 그런 나를 응원했다. 좋아요 하나 누르는 것에도 낯을 가리는 내게 그들은 내 삶에 따뜻한 말을 건넸다. 고마웠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기쁨 같은 것이 솟아났다. 나 자신도 삶을 응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얼룩진 감정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조금 더 용기 있는 삶을 채운다. 나의 용기도 누군가에겐 응원이 되길 바라며 흰 화면을 채워간다.

혼자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Image thanks to unsplash @craftedby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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