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인도 Incredible India
연차가 다가왔다. 연차가 다가오면 다들 한국으로 가는 분위기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한국으로 휴가를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 가면 밀렸던 숙제를 하는 것 처럼, 마치 일을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해야할 리스트는 병원 가기부터 한국 화장품 사기, 찜했던 맛집 가기, 친구 만나기, 할머니 집 방문까지 등등.
하루가 지나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어 들어오니, 그렇게 휴가를 보내고 인도에 돌아오면 더 피곤했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인도 중부 바라나시로 가기로 했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인도의 바라나시로
혼자 하는 여행은 조금 신경 쓰인다. 회사에 묶인 몸이라 괜히 여행 갔다 사고 나서 'XX회사 여직원, 인도 혼자 여행 하다가 참변 ' 이런 류의 기사로 회사에 타격을 입히지 않으려면, 또 나의 신변을 위해서라도 '인도여행을 그리며'라는 여행 커뮤니티에서 동행을 구했다.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카카오톡으로 연락한 동행들을 만나고 함께 숙소를 잡았다.
숙소는 3층으로 된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에어컨도 없이 천장에 달린 낡은 선풍기만이 있지만, 그래도 정감이 간다. 입구에 들어가면 주인 할아버지가 상반신을 탈의한 채로 TV를 항상 보고 계시고, 그의 아들들인 잘생기고 키 큰 두 명의 형제들이 반겨준다. 또 2살짜리 손녀가 아장아장 바닥을 기어 다닌다. 조금만 걸어가면 가트 (강가)가 보이고 바라나시의 명물인 라씨샵도 군데군데 보인다. 라씨샵의 청결은 모르겠지만 정말 상큼하고 달콤한 게 끝내주는 맛이다. 델리와는 또 다른 생경한 풍경에 '내가 드디어 바라나시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말캉말캉해진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우리 일행 외에도, 어떻게 알고 왔는지 한국인 여행객이 몇 분 보인다. 한 명은 24살 남자(곱슬머리에 한 달째 넘게 인도 전역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란다)와 또 다른 분은 30대 후반의 남자(본인만의 마이웨이 여행 스타일이 있는 이분은 알고 보니 '1만 시간의 남미'의 저자 여행작가 박민우 씨였다. 역시 인도 바라나시는 특별한 곳이야 이렇게 유명한 책의 저자도 만나다니! 라며 기뻤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 5명과 옆 숙소에 묵는 한국인들까지 열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여행의 첫날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술파티가 벌어졌다. 사실은 바라나시에서는 술이 금지되어 있지만 인도 친구가 몰래몰래 먹는 방법이 있다면서 단골 술집에서 인도의 대표 맥주 '킹피셔'를 배달해주었다. 옥상에서 탄두리 치킨과 감자칩을 펼쳐놓고 각자 어떻게 인도 왔는지 소개를 하면서 조금은 어색하지만 설레는 옥상에서의 수다가 이어졌다. 밤이 깊어 하나둘 내일 일정을 준비하며 방으로 내려갔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아침을 먹으러 동행하던 언니와 숙소를 나가려는데, 그 곱슬머리 24살 청년이 얼빠진 표정으로
" 혹시 어제 제 휴대폰 봤어요?" 하고 물어본다.
동행하던 언니가
"어? 어제 배에 얹어두고 자는 거 봤는데?" 한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지자 그는 휴대폰을 배에다 두고 옥상에서 잠이 든 것이다. 일어나 보니 주변의 일행들은 없었고 핸드폰은 사라져 있었다. 정신없이 1층과 옥상을 오가던 그는 휴대폰 커버가 옥상 구석에서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체크인할 때 숙소 주인의 말이 떠올랐다.
" 숙소 창문을 절대 열어놓고 다니지 마, 원숭이가 다 가져갈 수 있어"
그리고 그는 여행하면서 들은 일화가 생각났다. 실제로 한 여행객이 창문을 열고 외출했다가 원숭이가 여권 가방을 가져가 낭패를 봤단다. 원숭이가 가져간 가방은 결국 찾지 못했고, 결국 영사관에서 임시여권을 만들었다는 스토리가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옥상 주변을 둘라보던 그는 게스트하우스 옆 건물 급수탱크에 원숭이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서로의 이를 떼어내며 정답게 있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단다.
'저 놈들이 범인이다'
정신이 돌아온 그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친절한 주인이 주변 상인들에게 "아이폰을 주우면 연락하라"라고 전화까지 돌려줬다. 하지만 반 포기상태였다. 아이폰은 인도에서도 고가의 제품이고, 인도 절도범들 사이에서 아이폰이 주요 표적이 되니 찾을 리 만무했다.
숙소 주인이 전화를 돌리고 난 뒤 몇 시간이 지나고, 운명적으로 "아이폰을 주었다"라는 연락이 왔다. 이 소식을 들은 이 친구는 불이 나게 달려가 봤더니 그가 머물렀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아이폰이 있었다.
액정이 부서져 있었지만, 그의 것이었고 다행히 작동도 잘 되었다고 한다. 너무 감사하고 감동한 그는 그 자리에서 숙소 주인과 아이폰을 찾아준 인도인에게 사례로 10000루피(16만 원)를 주었다. 그의 일주일 숙소 값보다 비싼 돈이 었지만, 인도에서 이런 양심적인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 이야기는 나의 남자 친구가 실제로 겪은 일화다. 휴대폰을 잃어버려 난리 친 남자는 며칠 뒤 나의 연인이 되었고, 벌써 6년째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그때 내 남자 친구가 될 줄 알았더라면 휴대폰 찾는 걸 좀 열심히 같이 도와줄걸 후회가 되기도 한다.
"저는 휴대폰 못 봤는데요?" 하고는 매몰차게 아침 먹으러 떠난 나를 되돌아보면, 사람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인도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장점들이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단점들을 커버 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동의한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단점들이 존재하는 인도에서 만났고,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로 연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