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DS Dec 08. 2023

이혼은 대단한 일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스트 파이브 미닛.

예전에는 사랑과 이혼이라는 인기 많았던 프로가 있었고, 그 채널을 꼭 시간 맞춰 보지 않아도 직접 몸소 체험까지 할 수 있었던 가장 가까운 레퍼런스인 아빠를 보며, 나도 누군가가 이혼을 한다고 하면 엄청난 일이 있어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티비 속에 비치는 이야기의 주인공까지가 아니더라도, 평생을 약속한 관계는 쉽게 물러질 수 있다는 것에 왜 나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아니 않을 것이라고 저 마음속 깊은 곳은 굳게 믿고 있었을까.


냉랭한 공기가 감돌기 불과 5분여 전까지, 일상과 같은 따스함을 주고받았더랬다. 

1시간 전에는 다음 날 받게 될 첫 대장내시경을 걱정하며, 먼저 받아봤던 그에게 엄살을 잔뜩 넣어 징징대었고, 그날 낮에는 곧 돌아올 그의 생일 선물을 함께 고르며 어느 매장을 갈지, 간 김에 이것도 하자, 저것도 하자를 조잘댔었다. 


전 날 저녁에는 늘 같은 그곳들을 강아지와 함께 걸으며, 쌀쌀해진 날씨에 주머니에 가득 든 강아지 배변봉투 위로 함께 손을 넣어 잡고, 마주치는 같은 모습의 강아지들과 사람들에게 짧지만 온기 있는 인사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말, 결혼기념일을 위해 예약한 숙소 얘기를 하며, 사실은 내심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하루가 꽉 차도록 모든 정보들을 미리 검색해서 이곳저곳 알차게 보고 쉬는 건 집에 돌아와 쉬자며 다짐을 했더랬다. 


불과 5분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5분도 어디서 들은, 글을 쓰기 위한 비유적인 단어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더 짧았다.


무엇이 트리거가 되었을까?

나는 사실 한 달 동안이나 여러 번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었더랬다.

대화를 복기하고 모든 문장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mbti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물어보기도 하고, 대학시절부터 우리를 알고 있던 지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과연 답은 무엇이었을까.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더욱더 궁금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슨 일을, 무슨 대화를 했길래 3년간의 결혼생활이 찰나로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이 되었는지.


... 근데 정말 특별난 대화도 아니었어요.


"다음 주 주말에, 00이네 집들이 가서 애기 볼래?"

"음~ 싫은데?"

"왜 싫어? 너 싫다고 대답한 거 맞아?"

"응. 나 그날 차라리 다른 거 하면서 쉬고 싶어."


이 짧은 대화를 난 몇 번이나 곱씹었는지 모른다.

내가 싫은데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 수십 번을 후회하기도 하고, 돌려보고도 싶다가도

종국엔 허무함이 임계점 이상으로 차올라 다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후- 하고 떠내려 보낸다.


그의 친구네와는 우리가 아무런 문제가 없던 신혼 초기 때에 부부모임으로 자주 보던 사이였는데, 우리 둘의 사이가 소원해지며 오고 가는 발걸음이 뚝 끊겼었던 사이다. 그 사이에 친구네 부부는 아이를 갖게 되고, 우리 사이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을 때, 남편을 통해 초대를 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혼자 가면 뭐가 돼? 이제 겨우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러면 나 너무 스트레스받는데 지금."


최근에서야 되돌이켜보니,

주변에서 남편을 두고 말하던 말이 저 말을 복기함으로 이해가 되었더랬다.

정말로 남편은 생각보다 남의 시선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내시경을 위해 비워둔 속이 대화를 나누는 3-4시간 내내 더욱 쓰렸다.

돌이켜보건대 마침 빈 속이라 에너지가 없어, 더 차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 몇 년 간, 내가 어느 부분 대신 남편을 채워 넣으면서도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에 정말로 불필요한 에너지는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대화를 하는 내내 가장 큰 비중으로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


그래도 마침내, 그의 감정이 그래도 좀 내려가는 듯했고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네 입장을 좀 더 생각해보지 않고, 곤란할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툭 얘기해 버려서 미안해."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우리가 아직도 서로를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아마 이렇게 자꾸 싸우는 것 같아. 안 그러면 제일 좋겠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라 다음에 혹시나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부부로 같이 초대받았다는 정보를 미리 알려주거나, 혹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이러하니 같이 가줄 수 있냐고 좀 더 상황 설명을 해주면 나도 잘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많이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내가 짐작할 수 없던 것이었다.

"왜 네가 잘 못을 해놓고, 나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해?"




나는 어떻게 그에게 나의 생각을 말해야 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눈물은 눈치가 보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