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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균 May 21. 2022

환자를 위해 의사가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일

바람직한 환자-의사 관계를 위한 제언

환자-의사 관계가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그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죠. 어떻게 해야 환자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특히 오늘날의 의료현장에서는 제한된 진료 시간, 기술의 발전, 차트 기록, 보험사의 요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환자와 의사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곤 합니다[1, 2]. 그렇다면 환자와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의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스탠포드 대학교의 연구진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체계적 문헌 고찰, 대인관계 기술이 좋다는 평을 듣는 의사들의 진료 현장 분석, 의료가 아닌 분야의 종사자들의 업무 현장 분석, 전문가 패널 토의 등을 거쳐 바람직한 환자-의사 관계 형성을 위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 다섯 가지를 제안했습니다[3]. 의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미국의사협회지(JAMA, 2018 IF: 51.273)에 지난달에 게재된 이 논문,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함께 보실까요?


It is all about "Presence"

- 이 논문의 키워드는 'Presence'입니다. 우리말로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는 이 단어는 이해와 연결을 목적으로 환자를 인식하고,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의사의 행동 전반을 의미합니다[4].

- 이어서 연구진은 presence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4개의 임상 도메인을 설정했습니다.

    1. 환자 경험(patient experience)

    2. 의사 경험(clinician experience)

    3. 인구집단의 건강(population health)

    4. 의료서비스의 이용 및 비용(health care utilization and cost)

이 연구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뉩니다.


1. 문헌 고찰

PubMed, EMBASE, PsycInfo에서 1997년부터 20년간 출판된 2만 건 이상의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과 관찰연구 논문을 분석했고, 최종적으로 73건의 논문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논문들은 환자와 의사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상기한 4개의 도메인 중 하나 이상이 개선되었음을 보고하는 논문이었습니다.


2. 의사들의 진료 현장 분석

병원의 관계자 및 동료들에게 대인관계 기술이 좋다는 평가를 받은 10명의 내과/가정의학과 의사를 뽑았습니다. 이후 환자들의 동의를 받아 진료 과정을 촬영하고, 진료가 끝나면 환자들은 다른 방으로 이동해 간단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3. 비의료인의 업무 현장 분석

대인관계 기술이 중요한 건 의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죠. CEO, 교사, 변호사, 경찰부터 요가 강사, 심리학과 교수에 이르기까지, 총 7개 직군에 종사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30명의 직장인을 선정해 그들의 핵심 대인관계 기술을 분석했습니다.


4. 근거 종합

위의 과정을 통해 얻어낸 31개의 항목을 5개 영역의 18가지 기술로 간략화했습니다.

5. 델파이 분석 14명(의사 8명, 병원 고위관계자 2명, 관련 분야 연구자 2명, 환자 대표 1명, 간병인/보호자 대표 1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에서 3회의 패널 토의를 거쳐 가장 중요한 5가지를 도출했습니다.


의사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일


1. Prepare With Intention  

첫째, (물리적으로) 환자에게 개인화된 준비를 할 것. 진료 전에 설문지를 나눠주거나, 지난번 내원시 기록해둔 차트를 다시 살피고 치료에 대한 환자의 반응을 관찰합니다.

둘째,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곧 올 환자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진료를 하기 전 손을 씻는다든가, 심호흡을 세 번 한다든가 하는 자신만의 '의식'을 가지는 것도 좋습니다. 이는 의사 본인의 스트레스, 불안 해소를 위해서도 좋습니다[5].

*진료 전에 환자의 지난 치료 내역과 차트를 확인하는 것을 "Precharting"이라고 하며, 미국의사협회에서도 이를 권고하고 있습니다[6].


2. Listen Intently and Completely  

적절한 제스처와 신체 사용으로 수용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앉거나, 기대거나, 열린 자세를 취하거나, 환자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이는 등의 행동이 그 예입니다. 특히 전자 차트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환자와 컴퓨터 화면을 함께 보는 경우 긍정적인 영향이 컸습니다.

대화를 방해하는 요인이 없도록 합니다. 특히 환자가 처음 자신의 주소증을 이야기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환자는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라는 점을 기억합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의사들은 보통 환자의 이야기가 시작된 지 11초 안에 환자의 말을 방해한다고 합니다[7].

환자와 눈을 맞추는 것은 인종, 국적, 문화권에 따라 선호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8].


3. Agree on What Matters Most  

"어떤 일로 오셨어요?" "어디가 가장 불편하세요?" 라는 질문이 좋은 예입니다. 다만,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환자의 우선순위를 실제 진료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도 오늘 치료받고 싶으신 부분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하는 식으로요.

진료가 끝난 뒤 "혹시 다른 불편한 곳 중 오늘 치료받고 싶으셨던 부분이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많이 하실 겁니다. 그 때 'Is there anything else...'가 아닌, 'Is there something else...'의 뉘앙스로 말하는 게 좋습니다.


4. Connect With the Patient's Story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환자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회문화적 배경은 어떤지 물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플 때 가장 불편한 것은 환자 본인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건강 문제에 신경을 쓰면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경과가 좋으면 함께 축하해주어야 합니다.

'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환자의 발로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라고 지도받은 의대생을 만났을 때, 그렇지 않은 의대생을 만났을 때보다 환자 만족도가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9].


5. Explore Emotional Cues  

목소리 톤, 표정, 몸짓의 변화에서 환자의 감정 변화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환자의 감정 상태를 묻는 질문, 예를 들면 "요즘 어떠세요?" "이렇게 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등의 질문을 합니다.

"힘드셨겠네요." "이 문제가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쳤겠네요." 등 환자의 감정에 공감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The Road Ahead

내용도 내용이지만 체계적 문헌 고찰, 현장 인터뷰, 델파이 기법 등 다채로운 방법을 사용해 연구 디자인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논문이었습니다. 한편 시청각 자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JAMA답게 팬시한 영상 초록(video abstract) 스타일의 저자 인터뷰를 함께 공개했습니다. 본 논문의 교신저자이자 스탠포드 의대의 교수인 Abraham Verghese, MD의 인터뷰 중 일부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물론 이러한 접근 방식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환자와 의사 간의 상호작용을 최대한 많이 이끌어내고, 관계의 분열을 막을 필요가 있습니다. 휘발성 짙은 관계, 키보드와 모니터만 보느라 정작 앞에 있는 환자는 보지 못하는 관계가 의미가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죠. 임상에서 환자를 만난다는 멋진 기회를 가진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가 이번 연구의 핵심이 된 질문입니다."


References

1. Melnick ER, Dyrbye LN, Sinsky CA, et al. The association between perceived electronic health record usability and professional burnout among US physicians [published online November 12, 2019]. Mayo Clin Proc. doi:10.1016/j.mayocp.2019.09.024

2. Ratanawongsa N, Barton JL, Lyles CR, et al. Association between clinician computer use and communication with patients in safety-net clinics. JAMA Intern Med. 2016;176(1):125-128. doi:10.1001/jamainternmed.2015.6186

3. Zulman DM, Haverfield MC, Shaw JG, et al. Practices to Foster Physician Presence and Connection With Patients in the Clinical Encounter. JAMA. 2020;323(1):70–81. doi:10.1001/jama.2019.19003

4. Brown-Johnson C, Schwartz R, Maitra A, et al. What is clinician presence? A qualitative interview study comparing physician and non-physician insights about practices of human connection. BMJ Open 2019;9:e030831. doi: 10.1136/bmjopen-2019-030831

5. Lomas T, Medina JC, Ivtzan I, Rupprecht S, Eiroa-Orosa FJ. A systematic review of the impact of mindfulness on the well-being of healthcare professionals. J Clin Psychol. 2018;74(3):319-355. doi:10.1002/jclp.22515

6. Sinsky CA. Pre-visit planning: save time and improve care. October 23, 2014. AMA Ed Hub website. https://edhub.ama-assn.org/steps-forward/module/2702514. Accessed December 3, 2019.

7. Singh Ospina N, Phillips KA, Rodriguez-Gutierrez R, et al. Eliciting the patient’s agenda—secondary analysis of recorded clinical encounters. J Gen Intern Med. 2019;34(1):36-40. doi:10.1007/s11606-018-4540-5

8. Lorié Á, Reinero DA, Phillips M, Zhang L, Riess H. Culture and nonverbal expressions of empathy in clinical settings: a systematic review. Patient Educ Couns. 2017;100(3):411-424. doi:10.1016/j.pec.2016.09.018

9. Blatt B, LeLacheur SF, Galinsky AD, Simmens SJ, Greenberg L. Does perspective-taking increase patient satisfaction in medical encounters? Acad Med. 2010;85(9):1445-1452. doi:10.1097/ACM.0b013e3181eae5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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