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힘듦과 극한 기쁨이 공존하는 육아
일도 육아도 다 해본 나는 늘 한 번씩 생각해 보는 주제이다. 일하는 게 더 힘들까 육아가 더 힘들까?
가장 비교가 되는 점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냐의 여부이다. 출근해서 일을 하면 인간다운 삶이 가능했다. 화장을 하고 멀끔히 옷을 갖춰 입고 출근을 한다. 일하다가 언제든 화장실에도 갈 수 있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업무를 처리했고 힘들면 몇 분 간 멍 때리기나 커피를 마실 짬을 낼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남는 시간 낮잠을 자기도 했다.
반면 육아는 인간답게 살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된다. 용변은 아기가 지켜보는 앞에서 해결해야 하며, 휴지를 죄다 풀어헤쳐놓으려는 아기를 제지하다가 제대로 변을 보지도 못한다. 밥을 먹을 때는 옷가지를 잡고 늘어지고 우는 아기를 피해 대충 빠르게 먹어야 한다. 아기의 낮잠과 밤잠으로 쉬는 시간이 생겨도 그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운 좋으면 세 시간 후, 재수 없으면 십분 뒤 휴식 종료이다. 오줌똥과의 전쟁은 또 어떻고. 나도 꽤 배운 여자인데 샤워기 물줄기 사이로 흘러내리는 똥가루들을 치우고 있으면 현타가 온다.
내가 발견한 차이점이 또 있다. 나의 경우 회사 다닐 때는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집에 와서 침대에 눕자마자 초저녁부터 잠들어 버리는 날이 많았다. 머리를 대자마자 잠드는 건 뇌가 과부하되었다는 증거라던데, 회사 일은 확실히 머리를 많이 쓰는 것이다. 그런데 육아는 정신보다는 체력이다. 퇴근을 하면 온몸이 쑤시고 피곤해도 바로 잠에 들진 않는다. 정신은 깨어서 뭐라도 하면서 자유시간을 즐기고 싶다.
육아를 하면서 내가 바보가 되었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꼈다. 회사를 다닐 때 상사가 뭘 원하는지 빠르게 캐치하던 눈치와 많은 업무처리로 단련된 감각, 분위기를 꿰뚫어 보던 통찰력… 그런 것들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질 때나 가능한 능력들이었다. 늘 나를 붙잡고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시한폭탄 같은 아이를 들쳐업고 달래고 어르다 보니 집중력은 온데간데없다. 챙겨야 할 것들을 자주 깜빡하고 방향 같은 기본적인 감각들에도 너무나 무뎌졌으며 인지 능력도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을 실감했을 때는 기가 막혔다. 그야말로 반 정신 나간 상태로 어찌저찌 살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육아는 힘들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근로시간은 24시간이며 근무환경은 똥냄새 오줌냄새로 가득 차있다. 근데, 희한한 특징이 있다. 회사 다닐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극한 기쁨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였나? 뭐… 월급 받았을 때, 성과급을 잘 받았을 때, 승진했을 때, 일이 잘 풀려서 상사에게 인정받았을 때, 월급 모아서 여행 다닐 때. 결론적으로 사람 스트레스, 업무 과부하와 출퇴근 전쟁에 찌든 피로 속에 소소한 성취감과 보람 그리고 동료애 정도. 그렇게 반복되는 권태로운 날들.
그런데 아기를 볼 때 느끼는 행복감은 회사 일을 할 때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수준이다. 누워서 꼬물거리는 것 밖에 못하던 아기가 기고 일어서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닐 때는 너무 신기하다. 내가 하는 것을 전부 다 따라 하고 싶어 하고 자기 나름대로 아주 심각하게 뭘 하는데 그 행동이 너무 미숙할 때는 배꼽이 빠지게 웃기다. 그냥 생긴 게 내 남편 혹은 나랑 너무 닮은 것만 봐도 경이롭다. 분명히 되돌아봐도 회사에서는 이 정도의 환희를 느껴본 적이 없다.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는 것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좁은 그래프라면, 육아는 감정의 폭이 끝과 끝을 찌르는 그래프 같은 느낌이랄까. 내 새끼가 너무너무 귀엽고 이뻐서, 엄마들은 오늘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못하는 육아를 버텨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