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마음 기특한 마음 애틋한 마음
우리 아빠는 회사를 다니실 때도 명예퇴직을 하신 후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섰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계속해서 할 일을 찾아나가는 것이 아빠의 습관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직장인이 된 후에도 아빠는 새벽에 나가기 전 내가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나간다는 것이었다. 잠에 취해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떤 날은 머리카락을 쓸어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마에 손을 짚어보고 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몰래 뽀뽀를 하고 나가기도 했다.
다 큰 딸내미한테 무슨 일이람. 그때는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고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자니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일 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난 나의 딸내미는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나에게 지옥을 맛 보여준다. 먹을 것을 주면 스스로 먹겠답시고 온 바닥에 다 짓이기고 다니고, 옷을 안 입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기저귀를 갈자고 하면 여기저기 도망 다니고, 꼭 위험해 보이는 것을 손에 들고 놀다가 나에게 뺏기면 짜증을 내면서 운다. 나는 그녀가 눈을 뜨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다.
그런데 밤이 되어 세상모르게 떨어져 잘 때는 천사가 따로 없다. 오동통한 볼에 뽀뽀를 하면 아주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손으로 볼을 한번 쓸고 또 잠에 드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애가 혼자 놀 든 말든 누워서 잤던 것도 미안하고,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도 오늘 더 웃어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 본인은 나름대로 쑥쑥 크느라고 짜증도 내고 자기주장도 해본 것일 텐데, 엄마는 너를 잘 키우고 싶어서 원하는 대로 다 해주기보다는 혼내고 훈육부터 하려고 한 것도 아직 어린 너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머리칼도 쓸어주고 이마에도 볼에도 뽀뽀해 보고 아직은 작디작은 손바닥 발바닥도 만지작만지작 해본다. 그렇게 엄마가 된 나의 밤은 깊어간다. 우리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