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디오 Aug 30. 2024

내가 겪은 직원들 2

나는 직원 채용을 할 때 나보다 어린 직원들을 뽑는다.

이것은 내가 나이 많은 직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선입견을 타파시켜 줄 직원이 분명 있겠지만 굳이 모험은 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나보다 나이 많은 직원을 한번 뽑은 일이 있다.

개원초에는 치과에 '실장'이 필요한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실장이라는 이름으로 나보다 나이 많은 직원을 한번 뽑았다.


실장이란?

(지금도 여전히 그 역할에 대해 미스터리 하지만 나름 정리해 보겠다.)

1. 전반적인 데스크 업무를 책임진다.

2. 진료실이 바쁠 때 진료실 업무를 돕는다.

3. 직원 교육 및 치과의 전반적인 업무를 분배, 관리한다.

4. 환자 진료비 상담하며 치료 동의율을 높인다.

5. 환자 리콜 및 컴플레인 응대한다.

6. 매출이 지속적으로 우상향 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기획하고 치과 블로그 등을 관리한다.

7. 기타 원장님이 원활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1번도 제대로 못하는 실장부터 1에서 7까지 모두 잘하는 실장까지 치과계에는 다양한 실장들이 존재한다.

지금은 내 치과에 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은 없다.


내 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장이었던 그녀는 나보다 1살이 많았다.

치과에서 일한 연차도 나보다 많았고 크고 작은 치과에서 실장을 맡은 경험이 다수 있었다.

이력서만 보면 완전 베테랑 실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치과에 들어와서 정말 일을 열심히 해주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초과 근무를 아주 싫어하는데 혼자 자발적으로 남아 치과 업무를 하고 퇴근을 했다.

또한 어떻게든 환자를 붙잡아 내 치과에서 치료받게 하려고 애썼다.

어서 나에게 본인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입사 후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그녀는 갑자기 아프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해봐도 아픈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그리곤 무슨 죽을병 걸린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열심히 일해주던 실장이 아프다니 안타깝고 그만둔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오늘 아파서 출근 못 한다고 당일 아침에 카톡을 보내고 오지 않았다.

아니 눈에 띄게 아파 보이는 곳도 없는데 당일에 이러니 어이가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예~ 아주 그냥 집에서 쭉~ 쉬시고 앞으로 출근하지 마세요~'하고 응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 사람이 베테랑이라는 사실이 불현듯 생각났다.

왜 이러지?


혹시 실업급여 때문인가..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실업급여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퇴사를 한다면 받을 수 없고,

직장에서 먼저 나가라고 한 경우(잘린 경우)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실업급여 = 시럽급여가 되어 문제가 많다.

즉, 직원이 실업급여를 노리고 일부러 태업을 하다가 못 참은 고용주가 나가라고 하면 옳다구나! 하고 쉬면서 받아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나는 한 달 만에 이러는 실장이 못 마땅하고 그 속내를 알 수 없어서 친절히 답했다.

"네 오늘 하루 쉬시고 내일 봐요 ^^(찡긋) "


카톡에 답하고 치과로 출근하니 다른 직원들이 실장님 어제 퇴근할 때 자기 짐 모두 싸갔다고 알려주었다.

후아...

다음날 치과로 돌아온 실장은 퇴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혹시 작전 실패하셨나?

그 속내가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사람이 갑자기 완전히 바뀌어서 놀랐던 경험이다.


왜 그만뒀는지 알 것 같지만,

항상 직원들은 그만둘 때 다른 이유를 갖다 붙이기 때문에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실장처럼 치과 경험이 많은 직원들은 간혹 원장에게 앙심을 품고 '깽판'치고 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 이 직원은 곱게 나갔다.


지금은 전체 직원이 진료실과 데스크를 포함한 모든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서 치과를 운영 중이다.


이전 09화 내가 겪은 직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