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딸아이들이 어릴 때 읽어준 동화책중에 어느 가정의 모습을 묘사한 책이 한 권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어느 부부가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고요히 정면을 향해 석고상처럼 응시하고 앉아있었고 그 거실은 먼지하나 없을 정도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었고 고요했다. 무미건조하고 고요한 어느 날 작은 아기새 한 마리가 포르르 거실 창으로 날아들었다. 작은 아기 새는 거실 이곳저곳에 부딪히고 다쳐 날 수 없게 되었다. 애처로운 그 새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부부의 하루하루는 분주해지고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새가 조금씩 날 수 있게되면서 거실은 엉망진창이 되고 작고 여린 새로 인해 부부는 늘 바쁘고 지쳐갔다. 아내의 머리는 헝클어지고 남편은 옷이 단정치 못하게 되었다. 어느새 그 작은 새는 부부의 정성으로 다친 날개가 다 치유되고 의젓한 어른 새가 되었다. 그리고 햇살 따스한 어느 날 그 새는 부부에게 이별을 고하고 날아 들어왔던 창문으로 다시 날아서 넓은 세상으로 포르르 날아서 숲속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집 거실에는 다시 적막함이 찾아왔고 부부는 소파에 그저 앞만 응시하고 있는 동화책의 첫 장면처럼 석고상같이 앉아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동화책은 끝이 났다.
딸아이 어린 시절 그 동화책을 보면서 유독 마음이 아련해지면서 나의 미래에도 이런 날이 올 것이란 것을 예상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그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내가 쓸쓸할 때 유독 그 책의 장면이 머릿속에 맴맴 돌곤 한다.
어른이 되면 자녀도 부모에게서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해야 하지만 어른 역시 자녀들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 나는 내 아이들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을 하긴 했지만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 동화책의 한 장면처럼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흡사 영혼 없는 석고상 같다.
그래서 예전 섬지방 작은 방에 살 때 불쑥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침입한 여러 벌레들까지 그리워질 지경이다. 섬지방 작은 빌라에는 내가 초대하지 않아도 몰래 침입한 많은 생명들이 예고 없이 불쑥 이곳저곳에서 나와서 가끔 나를 깨물기도 하고, 내가 자고 있는 캐노피 모기장을 타고 눈앞에서 거꾸로 올라가는 묘기를 보이기도 하는 등 깜짝깜짝 놀라게 해 주어 심심한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 집은 고작해야 여덟 평 정도의 작은 집으로 돌아서면 물건이고 한 발 움직이면 벽이 가로막고 창문을 열면 언덕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풀들이 색깔을 바꾸며 꽃도 피고 지고 새들도 날아와서 시끄러이 놀다 가곤 했다.
그런데 이 아파트는 내가 초대하지 않으면 도통 생명체들이 드나드는 일이 드물다. 창밖에 새들도 날아왔다가 앉아보지도 못하고 포르르 그냥 지나쳐 날아가버리고 밖에 있는 거미들조차도 창밖유리에 겨우 거미줄 치고 있다 갈 뿐이다. 그래서 그런 단조로운 생활에 내 마음을 줄 수 있는 생명이 있는 것들을 집안에 들이기 시작했다.
흡사 집에 날아온 작은 아기새만큼 손은 가지 않지만 내 사랑과 정성이 필요한 것들을 집안에 여기저기 사서 모았다. 화장실에 생기를 불어넣으려고 고사리를 주문해서 세면대 선반 위에 두 개 얹어놓았고, 거실에는 당근마켓에서 수족관을 구피 여덟 마리를 포함해서 사서 놓았다. 그리고 베란다에는 작은 화분들이 하루하루 늘어나고 있다. 하나는 다육이를 소중히 여겨 다육하우스를 가지고 있고 그 다육이를 팔아 판매소득도 올리고 있는 지인인 서유샘이 주신 다육이, 내 그림전시회에 직장 동료가 축하선물로 가져온 이파리 무성한 밴자민 나무 한 그루, 그리고 글쓰기 동아리에 사총튼님이 주신 붉은 꽃이 피는 제라늄 하나, 그리고 내가 쿠팡에서 산 겨울에 붉은 꽃이 피는 게발선인장, 그리고 거실에 초록색을 보고 싶어서 스킨답서스를 두었다. 쭉 나열하고 보니 꽤 많은 것 같으나 그리 많지는 않다.
아무튼 이러한 생명 있는 것들을 관리하기 위해 아침 세수를 할 때면 물로 내 얼굴을 씻고 고사리에게 한 모금을 물을 준다. 그리고 거실에 나와서는 수족관의 물순환기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살펴보고 구피들에게 스푼으로 사료를 떠서 조금 넣어주고 화분을 슬쩍 돌아본다.
오늘 아침은 문득 내가 며칠을 집을 비우면 이 생명들이 잘 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것들은 자연에 있는 그래도 두면 스스로 잘 살 것을 인간들의 손길이 닿아 이렇게 원치 않는 장소에서 감옥살이 신세로 물고기들은 어항에 갇혀서 살고 풀과 나무들은 화분에 갇혀서 볼모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주인이 어디라도 가게 되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참으로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자신들의 행복과 정신적인 만족을 위해 다른 생명에 함부로 손을 대서 이리 괴롭힌다.
예전 어떤 독립영화에서 인간을 동물들이 먹잇감으로 하여 자르고 분해하여 판매를 하는 것을 다룬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인간과 동물들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그것을 보고 끔찍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말을 못해 본인의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는 동식물들이 말을 못한다고 하여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중 인간이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없는 것! 인간은 말이 없고 힘이 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함부로 베고 죽이고 먹고 놀잇감으로 한다. 나 역시 그러고 있다. 나의 정신적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소중한 생명을 돈으로 주고 사서 내 집안 곳곳에 볼모로 잡아두고 함부로 대하고 있다.
내가 다른 생명들을 그렇게 볼모로 잡아두고 함부로 다루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인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럴 힘은 있는가 보다. 이왕 볼모로 잡아둔 만큼 내 품에 있을 때만큼은 잘 돌봐주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무미건조한 네모난 아파트 사각 상자 안에 스스로 갇힌 한 인간에 초록의 싱그러움을 선물해 주는 식물들과 나처럼 네모난 공간 어항 속의 붉은 빛깔을 띈 구피들에게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