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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성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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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입니다 Aug 22. 2023

자기 연민, 쓰러져 있던 나를 일으켜준 힘

꿈을 좇다 지쳐 쓰러져있던 나를 일으킨 힘



이루지 못한 꿈들과 꺾인 마음, 자기연민 명상을 만나다.


2번의 워킹홀리데이, 영주권, 연애, 지속가능한 농부로서의 삶. 그 모든 것들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취를 얻지 못해 아쉬움, 상실감, 고통, 더는 무엇을 어떻게 도전해야 할지 모르는 쓰라림과 괴로움이 있었다. 그게 나보다, 내 그릇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보다 더더욱 커져서는 마음이 온통 쑥대밭이 되고, 이리저리 날카롭게 일어서서는 멍이 든 양 조금만 건드려도 아픔이 일어나 쩔쩔맸다.

그러다 나의 모습에 손을 내어 이끌어준 소중한 손길들이 있었고, 덕분에 자기 연민명상을 만나 내 안 깊은 곳에 새겨져 있던 아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상처 입는다. 입기도 하고 나를 피해자, 남을 가해자로 두어 펄펄 난리법석을 일으키기 기도 한다. 마음이 쉽게 예민해지고 낮아져 다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들에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금방이라도 사나워질 듯 우락부락해진다. 고까워진 마음은 내가 스스로의 감정들, 감정들이 몰고 온 수많은 생각들에 휩싸여 그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정도로 마음과 몸이 무거워진다. 솜뭉치처럼.


그럴 때 필요한 건 나를 향한 무조건적 지지와 사랑, 그리고 연민이라는 걸 최근 배웠다. 덕분에 내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다. '그래 그때는 그게 나의 최선이었지... 나의 지혜와 그릇이 그때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최선.' 이렇게 스스로에 위로의 마음을 보내는 것. 오랜 시도와 도전들로 쉽지 않은 마음이 들었을 때 '많이 망해봐야 잘하게 된다'는 말처럼 계속 망해왔던, 실패해 왔던 내 모습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거구나'라고 인정해 주자 시들어있던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 그 길만이 내가 나를 살리고, 진정으로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선택과 길을 찾아가 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도와준다.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일


두려움에 빠진 마음, 스스로 잘 해내지 못할 거라 믿는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게 쉽지 않다. '학습된 무기력'. 수많은 실패는 한 개인을 스스로 무능하다 믿거나, 매사에 안된다고 믿거나 불가능할 거라고, 해보기도 전에 더 이상 어떠한 실패로부터 다시 상처받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게 된다. 스스로를 아픔에서 지키려는 마음은 족쇄가 되어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온몸과 마음으로 도전을 꺼리게 된다. 내심 더 나은 미래를 바라면서도 다가올 실패에는 두려워 어떤 선택도 못하게 되니 삶이 더는 나아지지 못한다. 내면의 비판자와 검열자로부터 더는 도전하기 두렵다며 꺼리게 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짓눌려있던 마음, 그 마음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게 바로 이 자기 연민명상이었다. 이제는 그 무엇도 할 자신이 없어졌던 내게, 답이 필요했던 내게, 다시 살아내자고, 나의 꿈을 다시 만들어가자고. 그동안 그 누구도 나의 이런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에도 쌓아 올려나가던 게 다 꺾여 내려앉은 것 같아도, '그래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 더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비참하고 비통한 심정이 들 수 있겠지',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되려 자연스러운 걸 거야. 인간이라면 그 수많은 노력 끝에 이런 답답함과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라며 인간이라서 느끼게 되는 보편적 감정임을 인정하게 됐다. 스스로 가만히 내 가슴을 쓰다듬어 줄 수 있게 됐다. 


지치고 무너져있던 감정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도돌이표처럼 곱씹어 아프거나 분노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다. 그 과정은 아프며 불편하고 눈물 나는 과정이기도 했으나, 토닥토닥 '그래 네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얼마나 괴로웠겠니'라며 알아주고 토닥여줄 때 치유가 시작됐다. 가슴 안에 꽉 차 있던 아픔이 눈물을 타고 쏟아져 나왔다. 마치 고름처럼 내 안을 불편하게 만들던 무언가가 다 녹아 나오는 듯했다. 감사하고, 진실로 행복해졌다.


몸과 마음의 아픔과 불편을 알아차리고 위로를 보내자 치유가 시작된다.


'알아차림'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알 수 없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다만 이 알아차림을 내 몸 위의 여러 감각들에 마주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 

좋은 곳에 있던 여러 감정, 문득문득 떠오르게 되는 가슴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때 떠오르는 몸의 감각들을 느끼고 알아차릴 때, 특히 이 감정이 단어로 어떤 감정인지 '고통', '슬픔', '우울', '증오', '한' 등으로 언어화해낼 수 있을 때 이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이 감정들은 토닥임에 녹듯이 사라져 나갔다.

몸에 감각으로 떠오르는 이 불편한 부위에 손을 얹고 토닥여줄 때, 눈물이 나고, 응어리진 무언가가 쑤욱 소화되듯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여러 차례 만나고 나니, 마음이 다시 꿈을 꾸고, 책을 찾고, 몸을 일으켜 운동을 하고, 더 큰 풍요를 찾고, 세상에 도움이 될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살리니, 남을 살리는 일, 그 선한 무언가를 세상에 뿌리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차올랐다. 상처 입고 멍울져 있어 고름에 새살을 차오르지 못하게 했던 곳이 다시 예쁘게 새살이 돋는 것 같다.


사회와 세상으로부터 열심히 뛰는 법은 배웠던 것 같다. 반대로 넘어졌을 때 나를 다시 일으키는 법, 몸과 마음이 모두 망신창이가 됐을 때 그런 나를 토닥이는 법, 다시 일어나는 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은 수십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툭툭 먼지를 털고 나아가게 만드는 그 힘을 가르쳐줬다.


아직은 나 자신을 더 지켜봐야 할 거다. 그토록 찾고 있던 마음의 자유,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온갖 서러움과 멸시, 아픔, 힘든 순간을 만났을 때에도 나 자신을 놓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최선을 다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토닥임.


아픔에 지쳐 쓰러져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매섭고 가시 돋친 채찍으로 등줄기를 내려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나를 100% 수용하고 마치 오롯이 나에게 사랑만을 보내는 어떤 존재에게 사랑을 받듯 나 자신에게 사랑과 위로, 지지와 허용의 말을 모두 보내주는 일이었다.

이미 우리는 각자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존재니까. 각자가 갖고 있는 지혜대로, 노력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으니까. 알고 있는 최고의 지혜로, 배운 것들로, 온몸과 마음으로 일으켜 애를 쓰고 있으니까.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토닥임이고, 위로이며, 쓰러져 있던 마음을 오롯이 허용해 주는 일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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