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2020. 6. 30. 21:06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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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카톡을 날렸다.
출판사에 입사하고 첫회의 때 썼던 카피가 아주 우연하게도, 출판계의 LG라 불리는 민음사 유튜브에 나왔다. (별 대단한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본의 아니게(?) 출판업계 길목에서 나와 지금은 아무 관련 없는 일을 하는 내게 반갑고도 신기한 소식이었다. 모래알 같은 업적이 KBS 9시 뉴스에 나온 기분이랄까! (넘나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라...)
*이 글에는 취업 과정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여기 한 청년이 있다. (갑분 이야기 시작, 전형적인 번역투 문장으로 출판학교 선생님이 보시면 제일 싫어하시겠지.)
20대, 젊은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며 궁금한 것들이 생기면 몸소 부딪쳐 궁금증을 해결했지만, 경력이라고 부를만한 진득한 커리어를 쌓지는 못한 그는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부담을 넘어서 마침내 불편함을 느끼고, 생계의 책임이 '오롯이'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그래봤자 스스로의 몫), 128만원이라는 의미있는 거액을 주고 한겨레 출판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취업이라는 타 학원의 노골적인 목적과 방향 제시와는 달리 출판학교(라 부르지만 학원)는 책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감성, 소양과 평생을 출판계에 몸담았던 선생님의 소신과 열정을 가르쳤고, 청년의 머릿속에 '책 만드는 사람'이라는 온갖 뽕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우여곡절 끝에 아무 경력없는 신입(?)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실이 되어 출판사에 취업한다~
하지만 출근하고 이튿날, 그의 머리를 맴도는 생각은 '이걸 계속 다녀, 말어?'. (이 생각하기 불과 1시간 전, 선배한테 회사 5년 다닐거라고 함)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에게는 예상가능하게도 시련과 고난만이 계속 된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불과 3개월만에 나오게 되는데...
(그 후로 파주가 위치한 북서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은 뻥이다. 회사분들이랑 스터디해야해서 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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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척박한 연봉(이럴거면 내가 편의점 알바를 했지, 뭐하러 128만원을 내고 학원을 다녔을까.)과 근로 처우, 사람과의 대립으로 거의 떠밀려 나오다시피 나왔기 때문이다.
수영이 좋아서 바다에 나간 나는 태풍을 만나 바다에서 꽤 오랜 시간 표류하다 겨우 배에 올라타는데... 뱃사공이 다시 나를 바다로 떠민다. '에휴- 죽든지, 말든지'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채 눈을 감고 바다에 몸을 맡기고... 나는 운 좋게 해변으로 떠내려와 목숨을 건지고 다짐한다. '다시는 바다에 나가지 말아야지'라고.
책을 만드는 일은 분명 가치있다. 고로 본새나는 일이다. (돈보다 명예 타입)
일단 내가 책을 좋아하니 그게 가치 있는 것이고, 책은 누구나 인정하는 고전적인 학습 방법 중 하나이고.
또 지혜를 만드는 이들에게 돈을 벌어다준다는 게, 그게 가치 있는 일이다.
또 마음먹고 취업준비를 한 적은 난생 처음이였고, 그 마음을 먹은 게 나로서는 굉장히 대단한 일이었다.
이렇듯 작정하고, 돈과 시간과 마음을 들여(심지어 출퇴근 왕복 5시간. 남양주->파주) 취업했는데, 뭐 해보지도 못하고 꿈을 접은 건(아무리 자발적인 것이라 해도,.. 아니, 근데 이게 자발적인 건가..?)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문득문득 생각한다. 아니 생각이 난다, 든다.
'책을 덜 좋아한걸까? xx를 더 싫어한 걸까?'
그래도 수려한 언변의 소유자이자 마음 따뜻한 K,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와 감성을 지닌 A, 강한자에게 강하고 약한자의 세상을 바꾸려고 한 E, 묵묵히 기반을 다지는 존버정신의 Y, 다부진 미소와 엉뚱함의 JY, 모든 일 군말않는 성실한 소사 J, 나와 입사동기였던 청년 SB와 함께해서 참 즐거웠다. 진짜 이들 때문에 짧은 시간 머물고 간 곳이 참으로 가치있게 느껴졌고, 재미있었다. (이 글에서 가치라는 말 몇번 나오는지 세보세요 ^^ 이상주의자 INFP입니다)
끝으로 이 글을 제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수인 선배 한글에게 바칩니다.
제가 모자이크씨 입니다...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저는 이걸로 충분히 제 몫을 햇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