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쓰의 완벽한 음주조건

나발나발, 나불나불

by 십일월


"하, 인생 진짜 재밌지 않냐?"



위의 말은 맥주 500cc를 마신 내가 적당히 취하면 하는 소리다. 재미라곤 옴팡지게 없던 날도 집에 돌아와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면 어찌나 즐거운지 아까 했던 말은 취소! 지금부터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재미있는 날이다! 또 시원한 맥주가 내 이를 시리게 하고, 목을 시리게 한 다음 내 뇌에 도달하는 순간, 그리고 목구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탄산을 '캬~' 내뱉는 순간! 술기운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아까는 아무 감흥 없이 들었던 음악이 감미로워지고, 뭐라도 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고, 알 수 없는 용기가 막 솟아난다.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소확행인가? 확실히 행복하다.



딱 이러고 잠들면 되는데, 그 선을 지키지 못하고 출처를 알 수 없던 용기가 캔맥주 하나를 더 까게 하는 순간... 그땐 내가 술을 먹는 게 아니라 술이 술을 먹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다음날 아찔함을 넘어, 의사 선생님에게 찾아가야 하나 생각이 날 정도의 고통스러운 숙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제목_없는_아트워크 19.png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그렇다. '자제력'은 내게 필요한 음주 조건 중 하나다. 물론 함께 먹는 사람이나 취향에 맞는 안주, 주황빛 조명, 무드 있는 음악이 완벽한 음주 환경을 만드는데 주요 요소로 뽑히지만 술을 좋아하는 알쓰(알코올 쓰레기)는 그다음 날까지 진정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술을 마시면서 자제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모순 아닌가?-



술을 진탕 먹고, 사지 분간이 불가능할 때에는 재미난 '해프닝'이라도 생기겠지만(과연 진짜 재밌는 것인지 진의는 파악할 수 없음) 누가 숙취로 깨지기 직전인 머리를 하나이고 일어나 변기를 부여잡고 토하고 자빠지는 걸 '해프닝'이라고 하겠나? 혼자만의 발악일 뿐이다.



행복 뒤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술이 건강에 좋지 않은 건 너무 자명한 사실이기에 차치하겠다) 우리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분 좋게 취해 다음날에 아무 탈 없이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면, 완벽한 음주 환경이 조성된 그 순간만큼은 고통 없이도 행복을 주는 묘약이 아닐까?라는 억지를 부리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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