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무책임함과 마주하고, 나의 길을 걸어가다"
나는 죽음 안에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매일같이 죽고 싶었다. 삶이 고통스러웠다. 매일이 우울한 날이었다. 끝없는 절망에 빠졌었다. 살아 있었지만, 삶보다 죽음에 가까웠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죽음을 너무 오래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태어남에 동의한 적이 없다.’
그러던 나는, 내 존재를 자각했다. 지금의 나는 거짓말처럼,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불행히도, ‘과거’는 ‘현재’를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 삶이 살만하다’라고 느끼는 지금이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고통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내가 지나온 고통의 경험이 그들에게 무엇이든 도움이 되길 바라지만, 꼰대가 되긴 싫다.
전부터 삶을 맹목적으로 긍정하거나, 힘든 상황을 무작정 견디라는 말, 성공 서사를 강요하는 말을 혐오했다. 고통을 지나온 사람이 자기 경험을 기준으로,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몇 번이고 지켜봤다. 청년 세대의 삶의 조건을 만든 기성세대의 무책임한 위로 “아프니깐 청춘이다”, 자신의 극복을 일반화하는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지 않는다”, 낙관을 강요하는 “범사에 감사하라”와 같은 말들에 숨이 막혔다. 특히 가장 싫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이 모든 건 신의 뜻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을 ‘신의 섭리’로 정당화하며, 그것이 인생의 필수적 과정이자 거대한 질서의 일부라는 말.
그런 류의 말들을, 여전히 싫어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혐오하던 말 하나를,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모든 건 신의 뜻이다.”라는 말이다. 사실, 나는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만약 신이 있다면, 무능력하거나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그리고 이런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통은 나를 만드는 데 필연적이었다. 그렇다면, 고통은 정말로 필연적인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고통을 모두에게 당연한 것처럼 강요하거나, 고통받는 이들에게 훈계하는 태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고통을 지나온 많은 사람이, 자신의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 듯 보인다*.* 당연하다는 듯 고통을 지우는 언어를 내뱉는다. 나는 신의 말을 따르거나, 그 말에 기대어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신을 훈계하겠다.
“너는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가장 약한 이들의 절망 앞에서는 침묵했는가?”
“고통을 ‘의미’로 덮으려 하지 마라. 이유 있는 상처도 아프다.”
“이게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은 잔인한 존재이다.”
고통은 절대로 가볍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 또한, 그곳을 지나왔기에 고통에 무뎌지고, 공감 대신에 훈육하려 들게 될까 두렵다. 고통 속에 빠져 있을 때, 온몸 가득히 느끼는 절망과 그 절망을 이겨낸 자가 휘두르는 폭력 사이에 내가 있다. 거기에 나의 길이 있다.
이 고통은 상처만이 아닌 새살도 주었다. 고통은 나의 자아를 확장해 같은 조건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나만의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만큼 내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에는 사회 전반의 개인주의 성향이 한몫한다. 삶의 의미는 타인과의 관계, 건네는 인사, 환대, 고마움, 인정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난 계기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나의 절대적인 문제이자, 인류가 여태 답을 찾지 못해서 문제인 것조차 외면해온 문제의 답을 찾아낸 것이다. 그 해결의 실마리는, 사람들 또한 그 문제에 고통받고 있으며 해결하고자 하는 집단적인 열망에서 찾았다. 오랜 시간의 성찰과 사회적 열망,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퍼즐이 맞춰지고 나니, 그냥 지나쳤던 여러 사회 현상들이 변화를 위한 징후임을 느꼈다. 또한,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주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앎은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평생 노동을 거부하던 나는 그것에 세상을 곱한 만큼 고통을 겪었다. 이 말은 노동이 본질인 세상에서 모든 것을 적으로 돌렸다는 의미다. 노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세계 전체에 대한 전쟁 선포로 받아들여진다. 가족, 친구, 인간관계, 제도,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나는 세상과 나 사이에 무수한 단절과 충돌을 감당해야 했다.
나의 고통은, 니트(NEET)의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함께 고민하는 단체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고통은 그 경험과 무관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남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당사자들을 만나 함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다큐멘터리와 인터뷰집을 만들고 그 외에도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난 희생자에서 실천가가 되었다. 실천가라는 말이 나를 온전히 표현해주지는 않기에, 언젠가는 나에게 더 맞는 말을 만나리라 생각한다.
나의 모친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녀는 따듯한 마음으로 타인을 도우며 살아가고, 당당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녀와 대화하곤 했는데 이 말만큼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네가 바뀌어야 해.”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나를 지지해주기를 바랐던 사람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인생의 선배였지만, 내가 살려고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선배가 될 수 없었다.
나의 삶은 비적응의 뜻을 정의하는 동사이다. 난 세상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국 세상에 나를 맞추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약물에도, 위로에도, 상담에도 기대지 않았던 나의 병은 치료되었다.
진정한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