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의 블랙홀 다합
이집트 카이로에서 다합으로 떠나는 날.
이집트 동쪽에 있는 다합까지는 버스를 타고 장장 10시간을 넘게 이동해야 했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도 안 걸리지만 10만 원이 넘었고, 버스를 타면 12,000원이었다. 이동할 방법엔 방법만 있으면 되지 질까지는 따질 여유는 없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버스를 택했다.
버스에서는 이집트 아버지와 튀르키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친구를 만났다. 내 손을 꼭 잡고 버스 좌석도 알려주고 이런저런 수다까지 떨던 귀여운 친구는 내게 수면제를 먹고 잠들면 편할 거라며 수면제까지 나눠줬다. 가는 내내 버스 에어컨은 너무 추웠고, 나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허리의 뻐근함까지 견디며 12시간을 갔다.
그렇게 아침 7시에 도착한 다합의 거리는 한산했다.
처음으로 홍해바다를 봤다는 즐거움도 잠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심난해하고 있었다.
문제는 숙소였다.
원래도 준비성이 거의 없는 데다가 배낭여행을 하면서 ’ 만약 내일 마음이 바뀌어서 가기로 한 곳에 안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 하는 생각에 숙소는 거의 이동하면서 예약하고는 했다. 지금까진 별 문제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내가 버스에서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가 취소되었고, 그다음 예약한 숙소는 아직 응답이 없었다. 만약 응답이 오더라도 체크인 시간은 1시였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휴양지니까 당연히 24시간 카페가 있을 거고, 도착해서 그런 데서 쉬면 된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게 문제였다.
예상과는 다르게 거리의 카페들은 거의 닫혀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배낭을 메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카페를 청소하고 있던 한 카페 주인이 아직 영업 전이지만 들어오라고 맞이해 주었다. 그 카페에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바닷물에 몸을 담근 다음, 여기저기 찢어진 낡은 천 소파에 배낭을 던져놓고 누워 내리 3시간 정도를 잤다. 오전 10시가 넘어갈 즈음 잠에서 깨어보니 길고양이 한 마리가 옆에 와서 함께 자다가 깬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락없는 노숙인꼴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아무 데서나 자고 있는 히피들을 보면 왜 저렇게 아무 데서나 퍼질러 자고 있을까, 의아해했는데 내가 바로 그 히피가 되어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주인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는 많이 피곤했니, 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보내왔다. 이따금씩 길을 지나는 손님들 또한 누가 뭘 하거나 말거나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무심히 지나쳐 갔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배낭은 여전히 그 자리에 뒹굴고 있었고, 낡은 소파와 길고양이에게서는 텁텁한 냄새가 났다. 몸은 어쩐지 아까부터 간질간질거렸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더없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나 이렇게 살고 싶었구나, 이런 걸 느끼기 위해 태어났구나 하는 순간들.
그건 비싼 밥을 먹는다던지, 좋은 호텔에 가 여왕처럼 대접받는 사치스러운 순간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밤을 지새워 버스를 탄 피곤한 몸으로 해변의 카페에 들어가 다 찢어진 낡은 소파에 누워 널브러져 노숙을 하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길고양이와 함께 깨는 이런 순간들.
이토록 자유롭다니.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니.
이렇게 살고 싶다.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
다 찢어진 소파에서 노숙을 하더라도 좋으니 평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렇게 되뇌던 나는 그럼에도 언젠간 다시 일을 하고 돈을 저축하며 사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런 순간을 맛보았기에 앞으로도 살아갈 이유는 너무나도 충분해져 버렸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런 노숙이라면 언제든 그것을 기꺼이 즐기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그것은 자유였다. 내가 그렇게도 그리던 자유.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다합이 가진 힘이었다. 전 세계의 방랑자들을 끌어모으고 뒹굴거리며 잠들게 하는 그런 힘이 다합에는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튀르키예행 비행기표를 찢고 수심 12미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