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위험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은 위험한 곳이다. 아주 위험하다.
특히 나같이 하루 대부분을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여행자에게는.
여기에 통장 잔고가 비어 가는 여행자라면?
먹다가 거덜 날 수도 있는 곳이다.
오늘은 모든 여행지 중 가장 식비에 돈을 많이 썼던 튀르키예 이스탄불여행에서 제일 맛있었던 음식들만 모아봤다.
튀르키예에 도착한 나는 호스텔에 짐을 풀어놓고 용수철처럼 밖으로 튕겨나갔다. 오늘의 최종 목적은 카이막이지만 일단 너무 더우니까 시원한 카페에 들어가 본토식 터키쉬 커피를 한잔 마셔줬다. 터키쉬 커피는 마치 견과물을 잘게 갈아놓은 것 같은 가루를 에스프레소와 섞은 그런 맛. 율무차 식감인데 맛은 아메리카노인 그런 커피. 그러고 나서 친구가 추천해 줬던 식당에서 5천 원짜리 치킨케밥을 먹어준다. 아아, 본토의 치킨케밥. 잘 구워져 겉이 살짝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다. 매콤하고 짭짤한 닭다리살을 한입 먹고 밥과 콘과 야채를 입에 넣어 같이 씹으면 그건 바로 환상.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계속 길을 떠나야 한다. 30분 정도 걷고 나면 카이막으로 유명한, 백종원 아저씨가 가서 유명해졌다던 카이막식당에 도착한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아저씨가 묻는다. 너 코리안이구나. 그러더니 뭘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갖다 준단다. '미스터백'이 먹었던 그 조합 그대로가 있다며.
카이막은 우유로 만든 부드러운 생크림과 요구르트의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맛이다. 카이막을 부드럽고 쫄깃한 바게트에 바른 뒤 꿀을 찍어 한입 베어 물으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카이막이 빵과 함께 녹아내린다. 아니, 나 씹지도 않았는데!? 생각하고 나면 이미 입에서 녹아있다. 그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카이막을 추가주문해서 또 다 먹어치우고, 내일 아침에 먹을 카이막까지 손에 들고 나오고 있었다.
카이막이 든 봉지를 달랑거리며 터키쉬딜라이트 가게 앞을 지난다. 사실 나는 터키쉬 딜라이트에게 큰 호감은 없다. 대학생 때 이태원에서 처음 먹어본 터키쉬 딜라이트는 차갑게 굳어있었고, 질겼고, 푸석했다. 그 이후 내게 그것은 색깔만 그럴듯하지 맛은 하나도 없는 제사상 젤리 같은 그런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가게 앞에 서있던 아저씨가 무료시식이니까 한 개만 먹어보란다. 가게에는 관광객으로 꽉 차있고, 주변 관광객들도 하나씩 집어먹고 있다. 나는 심드렁하게 아저씨가 건네는 터키쉬 딜라이트를 입에 넣었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터키쉬 딜라이트를 종류별로 들고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
본토의 터키쉬 딜라이트는 달랐다. 겉은 찹쌀떡처럼 쫀득하고 부드러웠고, 그 안은 땅콩잼과 각종 견과류를 부수어 놓은 듯 고소하고 달달했다. 게다가 디저트주제에 풍미까지 있다. 터키쉬 딜라이트, 진짜 다시 봤다. 오해하고 있었던 게 미안했다. 근데 그건 그거고 벌써 오늘치 경비를 다 써버렸다. 그것도 전부 음식에. 하지만 터키쉬 커피와 케밥, 카이막과 터키쉬딜라이트까지 이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튀르키예의 유명한 바클라바 맛집. 유명세에 비해 솔직히 바클라바는 너무 심하게 달았다. 패스츄리 식감인데 층 사이사이를 설탕으로 절인 것 같은 그런 맛. 한입 베어 물고 나면 너무너무 달아서 머리가 띵할 지경이다. 바클라바는 딱 한 개만 먹으면 적당했을 것 같다.
튀르키예에 머무르는 3일간 나는 실컷 지갑을 털어 살을 찌웠다. 딱 하나 못 먹어서 아쉬운 게 있다면, 여름에만 난다는 튀르키예의 무화과. 그걸 못 먹어서 튀르키예는 꼭 다시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가봐야 할 곳이 많아 어쩌지.
어쩌면 나, 몇 년 뒤 두 번째 세계여행을 떠나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