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그 어떤 마을보다 화려하고 특별했던.
발렌시아에서 출발한 작은 스틱형 렌터카는 쏟아지는 별빛을 뚫고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에 닿았다. 뜨문뜨문 놓인 노란 가로등이 정적을 지키는 깜깜한 골목길 한편,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친구 잭슨의 지인이 선뜻 내어준 별장이었다.
어둑하고 낡은 집이었지만 내부는 아늑했다. 초겨울의 쌀쌀함을 달래줄 도톰한 담요들이 소파 위에 넉넉히 놓여 있었고, 주방과 침실에도 정겨운 생활용품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늦은 밤 도착했지만 우리 다섯 명은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일곱 시간가량 좁은 차 안에 구겨져있던 몸을 소파에 편안하게 묻은 채, 우리는 따뜻한 머그잔을 한잔씩 손에 쥐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좁지만 온기가 가득한 집에서 우리는 Thanksgiving 휴일을 보내며 프랑스 남부를 여행했다. 잭슨 지인의 포도밭과 와이너리에서 와인 시음도 하고, 언덕 위 로크브륀 성(Château de Roquebrun)에 올라가 마을의 평화로운 전경을 한눈에 담기도 했다. 우연히 마주친 조랑말 목장에서 발길을 잠깐 멈췄던 순간도 예상치 못했던 beautiful surprise였다.
'Get out of the bubble' 여행을 마치고 발렌시아로 돌아가야 하는 날, 나는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왔다. 이 소중한 여행을 그림 한 조각으로 남기기 위해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골목에서 구도를 잡았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법한 좁은 돌길과 세월이 느껴지는 동글납작한 벽돌 건물들. 같은 유럽이라도 발렌시아와는 또 다른 질감의 풍경이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소박한 골목이겠지만, 우리 다섯 명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사해 준 고마운 골목이었다.
학교생활이라는 쳇바퀴에서 잠시 이탈했던 3일간의 로드트립. 발렌시아에서 지낸 1년 중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떤 시간보다도 또렷한 추억으로 남았다. 오리엔테이션 때 새긴 "Get out of the Berklee bubble"이라는 강력한 조언을 실천한 셈이다. 나를 쳇바퀴에서 끌어내준 친구들에게 고마웠고, 여행 이후 더 친해진 우리는 발렌시아 일상 속에서 함께 성장했다. 지금은 미국, 유럽, 캐나다에 흩어져 음악인으로서 각자의 삶을 연주하고 있는 보고 싶은 친구들. 이 그림을 보고 그때의 여행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면서도 그리움으로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