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반짝이던 밤하늘

by 연주신쥬디

발렌시아에서 지내는 동안 'Get out of the bubble'이라는 미션이 마음에 맴돌았다. 어느덧 11월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캠퍼스라는 좁은 쳇바퀴를 돌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은 당일치기로, 혹은 며칠씩 수업을 빠져가며 이비자(Ibiza)나 포르투갈, 모로코로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다. 친구들은 여행을 잘만 하고 오는데, 나는 일평생 수업에 빠지는 건 중죄라고 여기고 살던 사람이라 학기 중에 여행을 떠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11월 말, Thanksgiving 연휴가 있었다. 캠퍼스는 스페인에 있었지만 우리 학교는 미국 본교의 일정을 따르기 때문에 며칠간의 자유가 주어졌다. 연휴를 며칠 앞두고 친구들이 프랑스 남부 로드트립을 제안했다. 연휴 동안 아무 계획 없던 내게 이런 기회가!?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여정에 동참하기로 했다!


잭슨, 구스타보, 데비, 샬롯, 나까지 다섯 명. 우리는 학교 앞 까르푸에서 장을 한가득 봐서 렌트한 작은 수동형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생나제르 드 라다레즈(Saint Nazaire de Ladarez)였다. 발렌시아에서 차로 7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만만치 않은 거리였는데 그 작은 마을이 목적지인 이유는 잭슨의 친구가 운영하는 Vinyard가 있고, 그 친구의 작은 별장에서 우리가 묵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차 안에 다섯 명이 낑겨서 가느라 몸은 고됐지만, 차 안에서는 수다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열심히 북쪽으로 이동하던 중, 어느덧 해가 지고 커다란 보름달이 떴다. 거리는 어두워졌고, 창밖으로는 반 고흐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뾰족한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스쳐 지나갔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을 넘을 때쯤이었을까? 건물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벌판 도로를 달리며 창밖을 보니, 세상에, 이건 은하수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무수한 별들이 밤하늘을 빼곡히 수놓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목적지에 rush 할 이유도 없겠다, 이런 밤하늘을 또 언제 볼까 싶어 그대로 다 같이 차도 옆 잔디밭에 누웠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특별한 단어 없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한동안 바라봤다.


'Get out of the bubble'

학교 밖을 나오니까 이런 특별한 순간도 있구나. 스페인인지 프랑스인지조차 모호한 어느 벌판에 누워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마주하다니.


셀 수 없는 별들을 사진이든 그림이든, 어떤 매체로든 남기고 싶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당시 아이폰으로는 턱도 없었고, 검은 펜 한 자루로 손바닥만 한 스케치북에 담을만한 그런 경이로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밤의 기억만큼은 스케치북에 어떻게든 새겨두고 싶었다. 결국 아쉬운 대로 차창 너머로 봤던 커다란 보름달과 뾰족한 나무들의 실루엣을 색연필로 그렸다. 비록 이 그림에는 별이 하나도 그려져 있지 않지만,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을 선사한 유럽의 밤 기록이다.


잔디밭에 누워 무수한 별을 보던 그 순간을 곡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끝내 곡은 쓰지 않았다. 곡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경외심이 창작의 욕심보다 앞섰던 것 같다. 언젠가 마음이 차오르는 날이 오면 이 기억을 다시 꺼내어 반짝반짝한 곡을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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