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발렌시아에서 첫 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보스턴이나 시카고처럼 함박눈이 오고 칼바람이 몰아치는 추위는 아니었지만, 지중해의 도시 발렌시아에도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러 본가로 떠났다. 하지만 고작 2주 남짓한 방학을 위해 시카고 집에 다녀오자니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서 나는 일단 발렌시아에 남는 쪽을 택했다.
방학을 며칠 앞둔 날, 유럽 대표 저가항공인 라이언에어(Ryanair) 웹사이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딱히 가고 싶은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내 예산 안에서 훌쩍 떠날 수 있는 도시들을 추려 나갔다.
그중 내 이목을 끈 건 독일 퀠른행 티켓, 단돈 19유로!
그렇게 나의 겨울 여행은 쾰른에서 시작됐다. 혼자 크루즈도 타고, 낯선 발렌시아에 살러 올 만큼 혼자만의 시간에는 익숙했지만, 이렇게 '여행'만을 목적으로 혼자 길을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19유로짜리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쾰른. 미리 예약해 둔 작은 에어비엔비 단칸방에 캐리어를 풀었다. 싱글 침대 하나만으로도 비좁은 숙소에 혼자 있으니 비로소 '혼자만의 여행'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쾰른은 아담하고도 포근한 도시였다. 웅장한 쾰른 대성당은 물론, 활기찬 크리스마스 마켓과 야외 아이스링크장이 있는 공원까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예쁜 도시였다. 혼자 다니는 게 싫지도 않았다. 그때는 인스타그램도 잘 안 하던 시절이라 그 누구와의 소통도 없이 이어폰과 핸드폰 카메라만으로 매 순간을 즐겼다.
가방에 여행 스케치북을 늘 가지고 다니며 그릴만한 풍경을 물색하던 중, 꼭 그리고 싶은 장면 앞에 섰다. 그로스 성 마르틴 성당과 그 앞에 나란히 늘어선 전통가옥들이었다. 육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과, 그와 대비되는 아기자기한 집들의 조화가 재미있었다. 뾰족한 지붕을 맞댄 파스텔 톤의 가옥들은 갈색 성당 덕분에 더욱 선명하고 귀엽게 빛났다. 12월 23일, 귀가 얼얼해지는 겨울 공기 속에서 나는 장갑 낀 손으로 펜을 쥐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이제 됐다' 싶을 때쯤, 해가 서서히 시작했다. 이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 여행 스케치북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독일, 그 차갑고도 따뜻했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