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lace 작은 수첩을 빼곡히 채울 영감공간
‘영감’. 혹부리 영감, 건넛마을 영감 말고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감정. 또는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을 말할 때의 영감. 나는 그 영감을 받기 위해 굳이 ‘영감 데이(day)’를 만들었다. 다시금 펜을 잡기로 한 이상, 글은 써야만 했으나 예전처럼 모든 것에 감동받고 작은 것 하나에 상상력을 불러오지 않게 된 지금, 굳이 굳이 영감을 받아야 하는 날을 만들 필요가 있던 것이다.
그럼 영감 데이에는 무엇을 하느냐. 아주 잠깐 고민하고 발길 닿는 곳으로 간다. 거창하게 정해 놓고 가면 그 공간의 강렬함에 내가 지워지거나 일하는 기분이랄까. 영감 데이만큼은 틀을 정하되, 내 상상력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계기랄 것을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은연중에 자주 가게 되는 공간, 힘들 때 생각나는 공간에서 대부분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였던 것 같다. 한때는 내가 예쁜 공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게 작은 의자 위였던,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바닷가 앞이었든 간에 말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땐, 무작정 혼자 기차 타는 것이 멋진 일이라 생각해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면 제일 가까운 시간대의 기차표를 끊고 대천 혹은 여수 등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점에서 큰 위안을 받으면, 작은 수첩 빼곡히 그 순간 느낀 감정을 적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몸에 밴 습관일 수 있겠다. 어느 공간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 분위기로 위로받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영감의 원천이었나 보다. 사실 편안해진다는 기준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일이라 내 공간이라 칭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마감일보다 무서운 게 더 있으랴. 이게 내 영감의 방법이라면 기꺼이 나누어야지.
� 슬로우 준_전라북도 익산시 하나로 1길 34
‘영감 데이’를 만들게 된 곳. 무작정 바다를 보러 갈 시간이 지 않게 되고 나서 만난 이 공간은 울창한 나무를 앞에 두고 눈보라와 강렬한 해를 버텨낸 날과 다정한 사장님의 기억으로 영원했으면 하는 공간이 되었다. 울고 싶은 날 가만히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볼 수 있어 위로가 되었던 곳.
� 사유의 공간_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임영로 194 1층 3호
우연히 방문한 곳에서 세월의 흐름이 간직되는 게 얼마나 귀하고 멋진 일인지 알게 된 곳. 물건에 담긴 시간에 애정을 듬뿍 주던 주인장의 모습이 강렬했던 여름의 기억.
� 서천 국민여가캠핑장_충남 서천군 마서면 장산로 856
굳이 만든 ‘영감 데이’인 만큼 굳이 몸을 써서 행복해지고자 방문한 곳. 프라이빗 한 공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남았다. 엄청 큰 뱀을 만나긴 했지만 그 뱀도 작은 수첩에 적어두었으니 어느 날 영감이 될 지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점에서 큰 위안을 받으면, 작은 수첩 빼곡히 그 순간 느낀 감정을 적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그때 깨달은 나의 영감일지도.
Local Editor 궁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