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Essay 글을 쓰는 일 / Editor. 궁화
조금은 상상력이 불어났다. 작고 소중한 내 영업장에 폭우와 함께 들어찬 흙탕물을 치우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어디선가 영감과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이 곰팡이와 함께 싹을 틔웠다. 전보다 넓어진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날에 즐거움이 엉겨 붙어있다. 써야만 하는 운명을 선고받고 이행하는 것 같지만 이 미묘한 평화가 싫지만은 않다. 마감에 쫓기듯 내 몫을 해내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내가 쓰는 글자가 사람들에게 잘 도착하는지조차 확신이 없지만, 그래도 한 사람쯤은 내 말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 이 기상이변 같은 마음에도 약간의 맑음이 들어서는 기분이랄까.
매일 같은 시간, 부은 눈에 뭐라도 찍어 발라 겨우 출근하면 제빵왕 김탁구가 된 듯 양손 권법으로 소금 빵을 만든다. 매시간 울리는 타이머에 말벌 아저씨처럼 달려가 반죽을 살피는 모습도 익숙해졌다. 손님이 오건 안 오건 한결같이 오픈 준비, 재고 주문, 청소, 기타 등등이 끝나면 아주 잠깐 숨 돌릴 틈이 난다. 그럼 그 순간 마무리 짓지 못한 원고를 부랴부랴 불러온다. 그 찰나에 뚝딱 글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진짜’ 쓰고 싶던 글이 한 문장씩 채워지는 원고를 쳐다보고만 있어도 두근두근한 느낌이 가슴께에 웃도는 걸 보니 가게를 복구하고 한 달 사이에 꽤나 흥미로운 루틴이 된 것이다.
글을 끄적이는 사람과 어떤 예술적인 뭉텅이의 집합으로 만들어낸 ‘궁화’는 언제나 늪에 빠져있다. 쓸데없이 자존심은 강해서 절대 손을 뻗어 구해달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동그란 치즈의 한 조각처럼 로컬에디터에 딱 맞아 들고 싶은 은근히 신경 쓰이게 하는 존재. 지난 글을 나열해 보면 비록 짧은 글이지만 매번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처럼 글을 쓰는 의미를 찾아 헤맨 느낌을 받는다. 사실 여전히 그렇다. 함부로 글을 쓰지 못하는 걸 실력 문제로 치부하고 싶지 않은 만큼 내 손에서 나온 글이 너무 소중해서 ‘잘’ 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써야만 하는’ 글을 찾는 인물로 궁화라는 페르소나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 오늘의 글로 이유를 찾으니 왜 그간 궁화가 늪에 빠져있었고, 굳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인물과 분리하고 싶었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모두의 쓰는 일들이 모여 만들어지고 있는 프로젝트 씀.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그들이 선택한 언어와 이야기가 반짝반짝 빛난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아주 솔직히 그들의 고독을 알면서도 부러운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분명한 건, 난 아직도 한 문장 쓰고 두 손을 그러모아 다음 문장을 내려달라 기도하며, 다시 또 타자 치는 형국이라는 것. 그래도 덕분에 지독한 결과론자가 과정을 즐기는 경험을 해보는 중이다. 다음 글이 기대됨과 동시에 또 다른 써야만 하는 글을 찾아 스스로를 늪에 가두겠지만, 어쩌면 흘러들어온 물이 댐을 만들기 위해서지 않았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질척거리는 외로움보다는 깨끗한 상상력이 담긴 강물에 몸을 담가 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담아본다. 언젠가 무럭무럭 불어난 영감의 바다 앞에서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방출할 수 있도록, 지금의 고독이 지치지 않게 돌봐주어야지. 그러니 지금의 궁화가 어디선가 받은 신의 계시를 수행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위대한 영웅 혹은 그를 돕는 조력자처럼 글을 찾아 방황해도 그 또한 내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때가 왔음을. 수많은 페르소나 중 유독 궁화를 몰아세운 것에 심심한 사과를 표하며, 이번만큼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쓰는 일을 해볼 수 있겠다.
언젠가 무럭무럭 불어난 영감의 바다 앞에 서서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방출할 수 있도록, 글을 찾는 여정을 떠난 페르소나.
Local Editor 궁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