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Essay, writer. 안희연 씀
· 웹매거진 <쓰는 일>은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씀을 경험하는 여성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모든 게 무력해서 흩어져버릴 것 같았을 때, '고작 시 한 편'이 버틸만한 힘이 되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 빨간 실오라기는 이곳까지 이어져 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어요. 초대장은 문장에 남겨 두었으니, 작은 문을 발견해 우리, 이곳에서 만나요.
조금 긴 여행을 다녀왔다. 여정 중 삼분의 이는 동행이 있었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했는데 동행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함께인 시간보다 혼자인 시간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그래서 내가 시를 쓰는 것일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일 수 있어서? 아무려나 그곳은 동행과 함께일 수도 있었으나 혼자가 된 순간을 위해 아끼고 아껴둔 곳이었다. 도시의 외곽, 완만한 숲길을 걸어올라 작은 절에 닿았다. 입구를 마주하는 순간 ‘아, 이곳에 오려고 내게 그토록 많은 날들이 필요했구나’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고 마음의 눈이 한없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은 ‘반환원(盤還園)’˚이라 이름 붙은 아늑한 일본식 정원이었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어서인지 입장 시 나눠준 팸플릿에는 한글로도 설명이 병기되어 있어 반가웠다. “이 정원을 조용히 대하고 있으면 어수선한 일상을 잊어버리고 서서히 마음이 안정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소반 반’ 자에 ‘돌아올 환’ 자를 쓰는 액자 정원의 중심엔 700년 된 잣나무가 놓여 있었다. 그 잣나무의 우람하고도 구불구불한 형상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입장료에 포함된 말차와 주전부리를 야금야금 삼키고 나니 마음의 갈증도 싹 가셨다.
그곳은 내가 꿈꾸는 ‘시’의 모든 것을 갖춘 공간이었다. 마음이 가난한 누군가가 언제든 쉬었다 갈 수 있는 곳. 목마른 이에게는 마실 것을 내어주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맨 이에게는 700년 된 잣나무를 보여주는 곳. 흔히 사람들은 시가 2차원의 종이 평면에 자리한 검은 글자라고 오해하지만 그 검은 글자는 광활한 세계, 즉 3차원, 4차원의 시공간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문’과 같다.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건 그 시가 열어 보이는 시공간 안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일이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그곳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의 손은, 당신이 그 시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이후에도 여전히 당신의 영혼을 쓰다듬고 있다.
반환원이 좋았던 이유에 대해서라면 백 가지도 더 말할 수 있지만, 가장 좋았던 건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일상적 흐름과는 다른 시간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무척 더디 흘렀고, 아예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반환원을 빠져나와 버스에 올라탄 순간부터 나는 일상의 감각을 빠르게 되찾았지만, 내가 그곳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주는 이상하리만치 신비한 위안은 은은하게 나를 휘감고 있었다. 다시 세상의 복판으로 돌아와 부대끼고 상처 입을 때마다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그곳의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랐고 그때마다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바라는 것도 그것이다. 내가 쓰는 문장이 작은 문이 되어 당신을 시의 반환원으로 초대할 수 있기를. 때론 당신이 나의 문장에 드러눕고, 나의 문장으로 얼굴을 씻고, 문장과 발맞춰 산책도 하면서 느긋하게 머물 수 있기를. 어느 문장을 지날 땐 손전등이 생긴 것처럼 발치가 환해지고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용기가 깨어날 수 있기를. 고작 시 한 편 쓰는 일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일까. 시 한 편에 천지만물 세상만사가 담기기를 바라는 마음, 무리한 열망인가.
그 말도 맞다. 문장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런 힘도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장이 힘을 지니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온 맘 온 마음으로 문장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납작한 문장을 일으켜 자기 삶과 연루시키려는 태도가.
시의 반환원을 향해가는 시간은 언제나 혼자다. 생활인으로서의 나는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오직 ‘쓰기’의 영역에서만큼은 오롯한 혼자가 될 수 있다. 혼자라는 고독과 책임을 견디는 일이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혼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자유가 있다. 그 자유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나의 중심, 나의 단전, 나의 가장 깨끗한 뼈를 들여다보게 한다.
쓰는 시간에는 철저한 혼자이지만 쓰고 난 뒤엔 결코 혼자이지 않다. 쓰고 난 뒤엔, 언제나 시가 당신에게로 가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결코 혼자일 수 없다. 시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만난다. 당신이 시의 반환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양을 본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당신의 발치를 비춘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라는 함께 속에서, 우리는 있다.
˚ 반환원(盤還園) : 일본 교토, 800년 역사의 불교사찰 '호세인'의 일본식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