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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Sep 19. 2024

흘러 들어오는 소리에 단어를 맡겨

Editor's Music 플레이리스트 / Editor.Nyeong

분주히 돌아다니며 단어를 모은다. 분주한 마음에 떠다니는 단어들. 어떻게 문장이 될지는 나중일. 그리고는 다시 바쁘게 오늘의 할 일을 한다. 조금 침대 위에 쓰러져 있다 어렵게 몸을 일으킨다. 한 잔의 커피를 명상하듯 내려 책상 앞에 앉는다. 아직도 문장을 만드는 건 나중일. 시끄러운 마음을 대변하듯 에어팟을 끼고 노이즈캔슬링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는 한참, 오늘의 마음을 고른다. 계절을 고르는 날도, 슬픔이나 기쁨을 고르는 날도 아니면 다짐을 고르는 날도 있다. 모든 마음은 ‘템포’ 혹은 ‘가사’라는 또 다른 문장으로 바뀌어 차단된 소리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꽁꽁 닫아둔 마음을 열어보자, 쓰여지길 기다리는 단어들이 문장이 되어 노래와 함께 흘러 들어오도록. 그렇게 낚아챈 단어는 무엇이었나.           



thanks for coming.  찾아와 줘서 고마워

·youtube @thanksforcoming  ·insta @thanksforcoming._


마치 숨겨둔 속내를 기어코 찾아낸 것 같은 플레이리스트 제목. 비틀어진 문장들이 콕콕 박혀온다. 하루를 점치듯이 제목을 보고 플레이리스트를 고른다. ‘숲을 보라고 나무라는 게 이상했다’, ‘해내지 못했을 때 버텨내는 힘이 필요했다’, ‘마음만 먹어서인지 마음만 무겁다’ ‘내게 없는 것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같은 플리를 골랐다. 어떤 노래가 흐르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숨겨지지 못하고 눈에 띄게 드러난 진실만 남는다.     


②Ode Studio Seoul 

'Ode(오드)'는 그리스어로 누군가에게 부치는 서정시를 뜻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들어요.

·youtube @OdeStudioSeoul  ·insta @ode.studio.seoul


어떤 말보다 눈으로 보는 사진 한 장이 발길을 잡기도 한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다시 한번 볼까? 자꾸 사진이 눈에 밟히네. 어느 날은 꿈꾸기만 하는 이국적인 풍경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친구에게 보내는 폴라로이드 사진에 낙서 같은 글씨가 도착하기도 한다. 다르지만 같은 결을 유지하는 오드스튜디오서울은 “세 명의 크루가 직접 찍은 사진과 평소에 자주 듣는 노래, 좋아하는 아티스트 등을 모아 ‘한 땀 한 땀’ 만들고 있다.”* 3일 전에 업로드된, “변함없는 브릿팝의 낭만, 오아시스의 노래들”은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바래진 사진 같은,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들”을 고르고.

Playlist : 바래진 사진 같은,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들


③윤시월 

그 계절에 피는 꽃을 보고, 그 달에 들어야 하는 노래를 들으며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길 바라며.

·youtube @iamyouroctober  ·insta @iamyourseptember


여느 플리들과 다르게 올라오는 영상의 수만큼 번호가 쌓이지 않고 반대로 카운팅 된다. 그는 3년 전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쓴다. 소중한 친구 윤시월의 부탁으로 만들게 되었다고. 친구 시월은 윤시월이 고른 노래들을 가장 좋아했고, 병원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유튜브 플리를 만들어주길 부탁했다고 한다. 10개에서 100개를 계획했던 그 노래들은 이제 마지막 숫자 1만 남겨 두었다. 그는 줄어드는 숫자와 노래만 남긴 것은 아니었고, 댓글을 통해 ‘민수에게’ 쓰는 글과 책도 남겼다. “50. 우리 나중에 함께 살면 라일락 꽃을 심어놓자.”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 “밍기뉴-라일락 꽃”을 듣고 있자면 감히 마음이 아리다. 이런 마음을 품고 책상에 앉아 있자면 한참을 망설이게 된다. 

C0013


④정원사 

큰 정원의 주인, 정원에는 이런 팻말이 꽂혀 있다. ‘쉬어 가시오’

·youtube @ownerofbiggarden ·insta @ownerofbiggarden


이러면 안 되는데, ‘큰 정원의 주인’은 나만 되고 싶어서 마지막까지 소개를 망설였다. 3개의 플리면 충분하지 않을까 – 하지만 기어코 ‘정원사’를 적어내고 말았다. 친구는 유난히 힘든 날엔 산책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 산책이 끝난 뒤엔 제법 가뿐해진다고. 정원사의 플리가 그렇다. 잊고 있던 하루의 날씨, 계절의 감각을 깨운다. 5월의 언젠가에는 ‘정원 페스티벌’을 열었고 ‘빨강 장미 스테이지’와 ‘푸른 그늘 스테이지’, ‘나무 스테이지’를 준비해 두었다.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부는 요즘, 어김없이 ‘아쉬움 없이 계절 디졸브’로 정원의 초입에서 먼저 나가 가을을 맞이했다.     

바람 아래에서 마음을 쉬고 싶을 때 : 정원 페스티벌 Day2 - 푸른 그늘 스테이지

아끼고 아껴 혼자만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합니다. 플레이리스트인데 제목을 보고 노래모음을 고르는 것이 취향일까, 하는 고민을 하다 저의 쓰기 루틴 또는 영감이라는 핑계를 붙여봅니다. 덕분에 좋아하는 플리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껏 들었어요.


Local Editor Nyeong 녕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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