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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Sep 29. 2024

작은 집이 생겼다.

Special Essay, writer. 임진아 씀

<THE WORK OF WRITING>

· 웹매거진 <쓰는 일>은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씀을 경험하는 여성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몰두하게 될 때 드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잊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땐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당장의 큰집이 필요하느냐고, 아니면 앞에 놓인 커피 한잔과 그만큼의 여백이 필요하느냐고. 으리으리한 집을 꿈꾸기보다 나를 지킬 작은집을 희망하며 차곡차곡 만들어가기를, 그 여정을 응원하며-.




 2022년에 출간했던 에세이집 ‘읽는 생활’의 첫 페이지에 적힌 한 줄 문장을 종종 떠올린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책을 보며 쉽니다.” 한 장 차이로 멀건 표정과 평온한 표정이 오고 가는 책 캐릭터 그림이 다정한 곁을 내어주고 있다. 목차에 다다르기 전에 만나는 한 페이지의 종이는 프롤로그 없는 책의 프롤로그이자, 표현하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현 삶에 끼어둔 가름끈이기도 하다. 

 ‘읽는 생활’을 쓴 이후로 나는 내 생활에 작가일 때와 독자일 때를 뚜렷하게 나누지 않는 ‘쓰는 독자’의 상태를 더욱이 희망하게 되었다. 읽고, 쓰고, 그리는 일은 내 생활 속에서 어디까지 번질지 모르는 수채화풍의 그림으로 아무렇게나 뒤엉키고 있었고, 계속 그려지고 있는 이 그림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의 미래를 그릴 때면 그간의 불안이 멋대로 색을 쓰며 뒤따르지만, 희망하는 생활을 그릴 때면 나의 아무런 마음들이 색을 내기 시작했고 그 풍경을 보는 건 오로지 내 두 눈뿐이었다. 누군가를 신경 쓸 필요 없이 나와 단둘이 잘 지내고자 하는 마음만이 내는 빛. 그 희망의 그림은 단출한 살림살이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잠시 눈을 두고 싶은 볼거리를 스스로 챙기며 무사히 내일로 저물 줄 아는 이의 하루를 닮았다. 내게 좋은 일을 미루지 않고, 당장 피로한 일 또한 미루지 않는 이의 하루였다. 그리고 쓰는 일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지만, 우선 나와 잘 지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책을 만들면서도 책을 보며 쉬고 싶은 마음은, 서점을 운영하면서도 생활에 단골 서점을 없애지 않는 마음이고, 커피 내리는 일을 하면서도 쉬는 날이면 다른 카페를 찾는 마음이다. 과정에 그저 녹아들며, 무구하게 좋아하기를 멈추지 않고자 하는 마음.


 하지만 결과물을 세상에 보이게끔 하는 순간, 평가와 비교는 불가피하다. 비슷해 보이는 것들과 대충 묶어 순위를 견주기는 얼마나 쉽고, 오랜 시간 엮은 이야기가 잊히는 건 또 얼마나 빠른지. 펼치지 않아도 째려볼 수 있는 게 바로 책이다. 누군가 애써 드러낸 이야기 앞에 ‘일기’와 ‘나무’를 들먹거리며 달갑지 않은 쩨쩨한 후기를 전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나를 표현하긴 어렵지만, 애써 표현한 걸 깔보기는 쉬운 세상이라서. 무언가를 선보이는 이에게는 대단한 하루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같다. 쓰디쓴 후기도 후기니까 받아들이라는 듯이. 만약 그런 선물이 있다면, 선보이는 이가 자기 자신에게 선사한 하루일 것이다. 쓰고 그리는 순간, 나의 친숙한 하루에 전에 없던 새로움이 더해지니까.

 어렴풋한 분위기를 그림으로 나타내 보고,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두루 정리하며 글로 쓰는 동안에는 내내 나와 나의 생을 마주하느라 갖고 있던 용기를 다 쓴다. 그래서일까, 세상에 내보인 이후에는 나를 지킬 기운이 부족하기만 하다. 며칠 슬피 울어 지칠 대로 지친 사람을 전신거울 앞에 억지로 데려다가 네 꼴 좀 보라고 하는 친구는 삶에 필요 없듯이 상처를 주기 위한 후기 또한 그렇다. 그런 한마디들은 다음의 쓰기 앞에서도 무쓸모하다. 그걸 알기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번번이 선보이는 모든 것들에 자잘한 반응을 기대하면 필요 이상의 타인을 상상하게 된다. 결국 다음부터는 나를 쓰는 게 아닌 허깨비를 위해 쓰게 된다.

 내겐 작은 집이 생겼다. 그리거나 쓰는 일을 시작하고 싶은 이에게도 그들만의 작은 집이 깃들기를 바라게 되었다. 너무 많은 사람의 시선을 피할 작은 집을 그리라고, 그 정도의 망상력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창작하며 머물 작은 집을 그리자. 책상에 앉았을 때 내게 보여줄 작은 집을. 오래도록 힘이 되었던 한마디들을 단단히 모아 목재로 사용하고, 내일로 향할 나만의 심지를 장판으로 널찍하게 깔고, 기댈 수 있는 의자를 두고, 나를 궁금해하는 마음을 담아 넓은 책상을 둔다. 먼 미래가 아닌 오늘이라는 생활 안에서 작게 해내기만을 목표 삼을 수 있는 작은 집을 그려 그 안에 나를 앉혀야 한다. 나를 지키며, 나를 내일로 보내며, 남보다 나를 궁금해하기를 멈추지 않도록.

 그리고 쓰는 일을 하는 나의 최종 목적은 여전히 ‘책 되게 하기’이기 때문에 작은 집 한쪽에는 책을 잔뜩 꽂아둔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책을 보며 쉽니다.”라는 한 줄은 공간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지만, 그 안에 앉아 있는 순간 내게 불어오게끔.

 어느덧 내가 희망하는 생활의 그림은 망상 속 작은 집과 매일의 집이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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