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Essay 글을 쓰는 일 / Editor. Cholog
여름이 다 지나서야 콩국수에 눈을 떴다. 할아버지는 여름만 되면 꼭 줄을 서 콩국수를 사 왔는데 왜 계절마다 돌아오는 그것을 그렇게나 고집했었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콩국은 좋아하지만, 국수랑 섞인 것은 어딘가 별로였다. 과일은 좋지만, 과일사라다는 묘하게 싫은 것처럼. 이 요오상한 조합이 대화 주제가 될 때마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모르겠다며 큰소리를 떵떵 쳤었는데 말이야. 아, 나 콩국수 좋아하는 인간이었네.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는 몰랐고 이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쌓여간다. 장담하지 말아야겠다 싶으면서도 한 치 앞도 모르겠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네 박자 쿵짝이지 뭐.
마음이 온통 울퉁불퉁 자갈밭이야.
공부하다 툭 하고 뱉어진 말이 덜컥 박혀 입안을 맴돌았다. 마음이 울퉁불퉁.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야-.’라고 외치다 보니 흘러 흘러 대학원생이 되었다. 척척 석사를 꿈꾸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지. 입학 때부터 따라다녔던 동기들의 화두는 논문 작성 여부였다. 그때마다 ‘몰라, 나중에 생각해, 나중에-.’하고 넘기기 일쑤였는데 어느덧 책상 앞에 앉아 학위 청구 논문이라고 쓰인 파일을 휘적이는 내가 낯설기 그지없다. 무릇 대학원생이라면 논문은 쓰고 졸업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며 노트북을 붙잡고 엉엉 우는 날이 늘어간다. 프로포절이고 뭐고 일단 뭐라도 보고 뭐라도 써야지 않겠냐는 마음에 다시 앉아보지만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일 뿐이라서 또다시 내 마음은 울퉁불퉁 자갈밭. 문득 억울한 마음이 샘솟는다. 아니 내가 뭐 대단한 걸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해내고 싶을 뿐이라고요. 대단한 걸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내 마음만큼만 해내고 싶을 뿐이라고요.
그렇지만 참 웃긴 것은 모든 것에 100은 쏟아야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말하면서도 정말 그렇게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제대로 한 게 하나는 있니. 1인분의 몫조차 못하고 있으면서 최선 타령을 하는 것은 아니니. 스스로 되묻게 되는 밤이 늘어간다.
“딸 잘하고 싶어?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하는 거야. 생각은 커트 커트, 앞으로 전진 전진.”
하고 싶은 것에 할 수 없는 것들만 보이던 날. 퇴근하는 엄마를 보자마자 와락 걱정을 쏟아내던 나에게 현숙은 말했다. 두툼한 손가락을 접어 가위질하듯 생각을 커트 커트. 양 주먹을 꽉 쥐고 한보씩 걸으며 앞으로 전진 전진. 침대 주위를 맴돌며 움직이던 그 이상한 몸짓을 다시 떠올리자니 웃음이 한바탕 터져 나온다.
이상과 현실이라는 괴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은 하나도 안 멋지고 괴상한 어른 같다. 오늘 벌어야 관리비를 낸다는 마음으로, 오늘 해야 과제가 밀리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좀비처럼 눈뜨는 괴상한 어른. 잘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잘하고 싶다는 말밖에 못하겠는 난 여전히 잘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잘하고 싶은 걸 어쩌나. 근데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생각은 자르고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마음이 온통 자갈밭이라도, 네 박자 같은 인생사가 찾아오더라도 할 일은 해야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그냥 하는 거야. 생각은 커트 커트, 앞으로 전진 전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유독 많이 생각 나는 날도, 그냥 걸으며 주저리주저리 아무 얘기나 떠들고 싶은 날들도 있습니다. 빛 좋은 날에는 책 한 권 들고나가 여유 있게 뚝딱 읽고 싶은 날도 있고요. 이런 낭만을 떠들면서 낭만 없이 논리만 찾는 저는 좀 재미없는 인간이 된 기분이 들어요. 혹시 주위에 대학원생이 있다면 양팔을 들어 양껏 안아주세요. 그냥, 따뜻하잖아요.
Local Editor Cholog 초록 씀.
+Editor's Music+
*HYUKOH & Sunset Rollercoaster - You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