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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ul 01. 2022

육아. 아이의 식단 쪽지


우리 가족은 밥상머리 토크를 즐긴다.

식탁 위에 올라온 반찬을 보고도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 있었던 사소한 일들도 아낌없이 나누곤 한다.

누군가 먼저 그날 있었던 일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면 아이들은 앞다퉈 그날의 사건, 사고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아이들과 밥상머리에 앉으면 습관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오늘 학교에서, 선교원에서 점심으론 뭘 먹었니?”

여섯 살짜리 작은 아이는 주 메뉴보다는 후식 위주로 그날의 식단을 이야기했고, 국에 초록색이 있어서 먹지 않았다거나 미역이 있어서 밥하고 깍두기만 먹었다는 둥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이제 삼 학년이 된 첫째 아이는 학교에서 먹은 음식이 뭔지 자꾸만 까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기억에 남을만한 메뉴가 있었다면 아이는 내가 묻지 않아도 먼저 그날의 메뉴를 이야기해주었고, 그래서 오늘은 너무 좋은 날이었다는 말까지 덧붙이곤 했다.



최근의 일이다. 저녁상을 차리고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뜨며 아이에게 질문했다.

“오늘 학교에서 급식 뭐 먹었어? 맛있는 거 먹었어?”


“음, 기억이 안 나요.”


“아 그랬구나. 별로 맛있는 게 없었나 보네.”


“엄마 이제 그 질문은 그만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음식을 먹고 나면 그 음식이 소화가 되면서 뭘 먹었는지를 다 까먹게 되는 특징이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물어보시면 하나도 기억이 안나거든요.”


“아, 그런 거였구나. 미안, 엄마가 잘 몰랐어. 이제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할게.”


“대신 제가 점심메뉴가 생각나는 날은 먼저 이야기해 드릴게요.”

가볍게 습관처럼 묻곤 했던 그 질문이 아이에겐 스트레스로 다가갔던 모양이다. 엄마의 말의 무게, 질문의 무게가 아이에게는 늘 가볍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아이의 눈빛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식단을 묻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다음 날 오후, 영어 수업이 끝난 아이를 태권도 학원으로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아이는 차에 타서 한참을 영어학원 친구들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호주머니에서 작은 쪽지를 한 장 꺼냈다. 아이는 쪽지를 건네며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가 건넨 쪽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오늘 2022년 6월 29일 점심메뉴.

타코야끼, 모밀, 깍두기, 블루베리,




아이는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엄마에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엄마에게 정확하게 대답을 하면서 엄마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아이의 마음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스쳤다.

내가 느낀 감동을 아이에게 눈빛으로 전했다. 그리고 너무너무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이제는 메뉴를 적어 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해 주었다. 이삭이가 잘 먹고 지낸다는 것을 엄마는 확실히 알고 있고, 사실은 학교 알림장 앱으로 보면 점심 메뉴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는 단지 이삭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식단을 물어봤던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부모는 아이의 온 우주이다. 부모의 말 한마디로 아이의 마음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부모의 인정과 수용이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밥상머리 토크를 시작으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아이가 얼마나 부모를 기쁘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까지 기억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의 식단 쪽지 덕분에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인정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이가 지금의 우주를 충분히 사랑하고 누릴 수 있도록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는 엄마가 되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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