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주저앉아 본 사람은 그 한계선에 다가섰을 때의 두려움이 큰 것 같다. 사람들은 이겨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데 자신이 없다. 불안감이 나를 좀 먹을 때마다 할 수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봐도 껍데기처럼 느껴지고 부질없게 느껴지기만 한다.
나를 낮추고 깎아내어 마음속의 바닥에 다가가 보기도 했다. 깊은 곳에 가서 나를 올려다보면 내가 몰랐던 나의 좋은 면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결국 그곳에서도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없었고 빛이 없는 어둠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다시 올라가 숨을 내쉬어보면 그곳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가득해 매캐한 냄새가 가득해 숨을 쉴 수가 없다. 그 어디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혹은 이름도 없는 곳에서 갈피를 잃은 채 서 있는 기분이다. 가야 할 이정표도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 개척할 용기도 없어서 마음이 답답하다. 나는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또다시 답이 없는 물음이 나를 집어삼킨다. 물음은 끝없는 꼬리표처럼 길게 늘어서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아 문뜩 지금의 나를 표현할 만한 단어가 떠오른다. 나는 지금 표류기일지도 모른다. 언제고 끝날지 알 수 없는 표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