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오히려 지혜로 남은 ‘퍼펙트 실패’는 무엇인가요?
<솔직함의 농도>
고등학교 입학 후 3월 말. 동아리 신입회원 모집이 한창이었습니다. 사진부 선배들은 말을 참 잘했고, 방송반 선배들은 예쁜 여학생을 찾는 눈치였고, RCY는 뭘 하는 곳인지 끝까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동아리 하나씩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에 휩쓸려 문예반이라면 도전해볼까 싶었습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지도가 기억나서였는데 딱히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자신이 없었을까요.
자신이 겪은 일을 한 편 써내라기에 어느 주말의 일을 생각해냈습니다. 8시를 가리킨 시계를 보고 월요일 아침인 줄 알고 허둥댔는데 알고 보니 일요일 저녁 8시였던 반전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름 성의를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불합격. 나중에 건너 건너 알게 된 사실은 ‘글에 진정성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잘 보이려고, 잘 쓴 것처럼 보이려고 잔뜩 꾸며낸 겉치장만 화려한 글이었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상심이 크지 않았습니다. 문예반에 미련도 없었습니다. 대학을 재밌게 마치고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방송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필력이 무기가 될 필요는 없는 분야라 창작의 고통이라 하기엔 글로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글 파일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때마저도 잊고 있던 그 기억을 무안하게 되살린 것은 서울 생활을 청산한 뒤였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남편의 고향으로 갔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곤 시댁 식구뿐인 곳이었습니다. 우연히 인근의 중학교에서 글쓰기 방과 후 수업 강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교생이 약 50명인 작은 학교였습니다. 그 중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까만 피부에 얼굴이 아주 작았는데 말도, 표정도 거의 없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수업에는 자기소개부터 꿈(진로), 사회적 약자, 환경오염, 로드 킬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간단하게 글쓰기를 했습니다. 늘 단답형에 가까운 글만 쓰던 그 아이가 어느 날 ‘주말에 있었던 일’을 꽤 길게 써와서 놀란 터였습니다. “그 동물을 자세히 보니 삵인 것 같은데 크기가 컸고 그랬습니다. 저는 일단 그 삵을 들고 도로 바깥쪽으로 나왔고 그 삵의 심장이 멈추고 피가 흐르고 저는 처음에 어떻게 할까 (하략)”
토요일 방과 후 수업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학교 오는 길에 로드 킬을 당한 동물을 마주했다고 했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수업에서 이야기했던 로드 킬이 떠올라 숨이 끊어진 동물을 길가에 묻어주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과연 내가 잘한 걸까? 라고 자문하며 답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차에 계속 치이게 둔다면 죽었지만 또 죽는 셈이 될 테니 자신이 묻어준 게 다행일 거라고 말입니다.
큰 도시에 살 때보다 시골 길에서 유난히 로드 킬을 많이 봅니다. 도로가 있지만 그 위로, 혹은 그 옆으로 또 다른 도로가 나는 것을 볼 때 분개합니다. 도심보다 시골이 훨씬 새로운 도로가 많이 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고속도로 1km를 깔 비용이면 작은 도서관 하나를 지을 수 있다는 한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이들에게 열변을 토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로드 킬을 안타깝게 생각해왔지만 나는 한 번도 동물을 묻어준 적은 없었습니다.
아이가 자전거를 멈추고 고민했을 순간이 떠올라서, 아이의 피 묻은 손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목이 메었습니다. 자신이 꽤 멋진 일을 했다는 무용담이 아니라 아팠을 삵에 공감하고, 자신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그 글은 나를 지금도 부끄럽게 합니다. 솔직한 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알리기 위해 글쓰기 수업에서 종종 일화를 밝힙니다. 나의 부끄러움까지 소상히 말입니다.
‘솔직함’이 미덕이 되도록 실천하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말과 행동도 그렇지만 나의 내밀함이 어쩔 수 없이 담기는 글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누구보다 나 하나만 속이는 일이 더 쉬웠기 때문일까요. 그럴 듯하게 보이고 싶은 욕심을 거둡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봅니다. 이제는 적어도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짧게 한 번, 기일게 한 버언 숨을 내쉬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