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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Sep 29. 2022

클래식을 듣는 이유

운전을 하고 출근하던 시절,

20분 남짓한 출근길의 시작은 라디오 주파수를 FM 93.1에 맞춰 틀고 시동을 거는 것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운전하는 차 안은 고혹적인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허리를 단정히 세운 자세와 핸들을 잡은 손의 실루엣은 더없이 우아했고, 전방을 주시하는 눈길은 오드리 헵번의 그것 같았다. 그런 고급진 느낌이 주는 설렘이 너무나 좋았다.


이 설렘의 시작은 고2 여름의 음악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21일이었고, 나는 하필 21번이었다.

지목되어 가창을 해야 하는 곡은 부르기 어렵다고 소문난 "그리운 금강산"이었다.

성악 발성 가창을 뽐내본 적이 없으니 당연 그 누구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21일의 21번으로서 피아노 곁에 서서 음악책 속 악보를 노려보며 반주를 기다렸다.


"따라라따라라라~ 누구의~~~ 주제러어언가~~~"


절묘하게 잘 맞춰 들어간 노래의 도입부에서부터 돋기 시작한 자신감으로 곡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긴장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유연하게 노래했고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길게 뽑아낸 고음도 완벽했으며, 마지막 소절의 진입 또한 적절했다.

노래를 끝낸 후 돌아온 제정신에 슬쩍 눈치를 보고 있자니 반 학우들은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뻘쭘한 마음에 자리로 돌아가려 발을 떼는데,


"얘!"


"네??"


"너 몇 번이랬지?"


"21번인데요."


나는 교무수첩에 무언가 적고 계시는 선생님께 목례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날 무렵,


"21번! 선생님 방으로 와."


갑작스러운 호출의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한껏 위축된 마음으로 선생님이 계시는 작은 방의 문을 노크했다.


"10월에 교내 음악회가 있어. 합창단을 구성해 발표할 건데 너 하자."


교내에서 노래 좀 부른다고 소문난 학우들을 모아 합창단을 결성했단 얘기는 들었었다.


"파트는 알토가 좋을 거 같은데."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멍하니 있는 있는데


"싫어?"


"아니요, 할게요."


"수업 끝나면 음악실로."


그렇게 합류된 합창단에서 매일 연습을 했고, 가을의 어느 날 언니 한복에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어설픈 복장의 나는 합창단원으로 첫 공연을 했다. 쑥스러워서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유일하게 꽃  한 송이 받지 못한 단원이었지만 스스로를 기특하게 생각한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후 선생님은 특유의 쏘아붙이는 말투로 장난을 거시며 아는 척을 해 주셨고, 선생님의 영향으로 난 가곡이란 장르에 관심을 키웠다.

조금씩 성악을 전공하고 싶은 꿈이 커졌지만 다자녀 집안의 둘째 딸로서 가능하지 않은 일임을 너무 잘 알기에 아무도 몰래 키워온 꿈을 아무도 몰래 포기했다.


선생님은 이후에도 새로운 곡을 배울 때마다 무심하게 "21번!"을 호명하셨고, 나는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했다. 음악실에서 노래하는 그때, 나는 꽤 즐거웠던 거 같다.



잘한다!
너 음악실기 점수 어떻게 할 거야!



목감기가 잔뜩 들어 가창 실기시험을 망친 적이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서였나,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음악 선생님은 앙칼지게 혼내셨고 민망해진 나는 어설프게 웃었더랬다.


"그래서, 감기는 다 나은 거야?"


"네."


"학생부실로 따라와!"


선생님 뒤를 따라 학생부실로 들어섰다.


"여기서 노래 불러봐. 잘 부르면 만점 줄게."


이 무슨... 학생부 선생님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고 난 어쩔 줄 몰라졌다


"싫어?"


"아니요. 할게요."


마른침을 삼켜 목구멍을 다스린 후 눈을 감고 "오 솔레미오(O Sole Mio)"를 완창 했다.

눈을 뜨자 만족스러운 미소의 음악 선생님과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는 한문 선생님이 보였다.


그날의 "오 솔레미오(O Sole Mio)"로 나는 가창 시험 만점과 더불어 총각 한문 선생님으로부터 "마리아 칼라스"라는 과분한 별명을 얻었다.


학창 시절 음악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기회와 기억은 자존감이 바닥을 향해 헤매는 순간마다 조금이나마 자존감을 반등시켜주는 소중한 무엇이다.


나도 가치 있는 구석이 하나쯤은 있는 존재라는 명확한 증거라서 안심이 든다.




나는 여전히 혼자 운전대를 잡을 때면 클래식 FM을 튼다.


그 순간, 나는 마리아 칼라스가 된다.

음악 선생님의 은근한 편애를 받고, 총각 한문 선생님의 구애를 받던 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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