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친환경 출판: 책 <암병동 졸업생> 출판에 친환경을 선택하다.
암 투병 기간에는 많은 환우들이 책을 읽는다. 항암 기간에는 우리가 새 책 냄새라고 기억하는 화학 잉크와 알코올 냄새에 오심을 느끼거나 구토를 하는 환우들을 종종 보았다. 강한 항암제로 손끝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책을 붙잡는 환우들을 보면서 친환경 인쇄를 결심하게 되었다.
책 <암병동 졸업생>은 친환경 인쇄를 통해 출판된다. FSC 인증 제지, 식물성 콩기름 잉크, 무알코올 인쇄, 친환경 파우더 등을 사용하는 것이다. FSC 인증 제지에는 내 선택과 현재 항암 중인 환자분들과의 선택이 엇갈렸다. 내가 생각했던 제지는 내가 희미하게 느낀 어떤 종이의 향을 현재 치료 기간 중인 환자분들은 정확하게 체크했다. 그래서 최종적인 선택은 3명의 암 환우분들로부터 냄새와 감촉에 대해 피드백을 얻어 선택하게 되었다.
친환경 제지 중에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이 '그린라이트'이다. 그린라이트는 재생원료 20%를 섞어서 만든 것을 큰 특징으로, 특수 기법을 통해서 가벼우면서도 두껍게 만든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나머지 80% 원료에 대해서 출처와 관리가 모호했다. 더해서 신문지 같은 특유의 향에 환우분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몇 차례의 테스터 후에 선택한 것은 내지는 'FSC 인증을 받은 미색 백상지'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냄새와 촉감을 통과하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친환경 제지는 정말 다양하다. 100% 재생지로 만든 재생지도 다양하고, 사탕수수로 만든 종이, 커피 컵을 재생하여 만든 종이, 코코아 껍질을 재생해서 만든 종이, 섬유 부산물로 만든 종이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친환경 제지들이 많았다. 용도에 따라 적합한 걸 선택하면 참 좋지만, 문제는 비싸다는 것이다.
'친환경 종이'를 둘러보기 좋은 사이트
IN THE PAPER by DOOSUNG PAPER : https://www.inthepaper.co.kr
SAMWON PAPER : https://www.samwonpaper.com/
<암병동 졸업생>의 표지는 센토 CENTO로 제작된다. 이탈리아어로 ‘100’을 의미하는 센토는 100% FSC 재생 펄프로 생산된 친환경 제품이다. 재생용지 특유의 표면 티끌이 적어 원하는 이미지 구현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센토 전체로 인쇄를 하고 싶었지만 28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마음에 쏙 드는 재생지로 하려니 구매할 수 없는 책의 가격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표지만큼은 가장 좋고 마음에 드는 제지를 선택하게 되었다.
책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하는 코팅이나 화학 파우더 등의 가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잉크가 일부 묻어나거나 종이가 뜯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표지의 특성을 반영하여 여러 가지의 표지 시안 중에 최종 시안이 선택되었다. (물론 최종 후보 2개 중에서 현재 선택된 시안이 80% 정도 압도적인 선호도가 있기도 했다.) 센토에 표지를 적용해 보니 오히려 잉크 묻어남이나 벗겨짐, 종이가 허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디자인처럼 보였다.
가지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위와 같다. 왼쪽에는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쓸린 자국이 보인다. 그러나 큰 티는 나지 않는다. 오른쪽 책은 실수로 테이블에 물을 쏟아 책이 물을 흡수하고 마른 것이다. 식물성 콩기름 인쇄에 무코팅 종이이다 보니 잉크가 조금 빠졌는데, 그 자국이 파도의 물거품 같기도 하고, 옅은 커튼이나 은하수 같다.
나는 이러한 내 책의 모습을 보면서 책이 점점 더 나와, 그리고 암병동 졸업생과 닮아가는 것 같아서 좋았다. 외부의 환경에 취학하고 연약하지만 그 안에 자신 만의 이야기가 단단하게 담겨 있는 모습에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책 습관에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책의 매력을 책 <암병동 졸업생>으로 만나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