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공백과 학력(學力) 논쟁, 그리고 반성
'비대면 수업과 교육 격차, 6월 모의평가', 그 너머의 이야기
지난 7월 말, 6월 모의평가 성적 분석 결과로 보도자료를 냈던 적이 있다. 6월 모평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한창일 때 실시했던 첫 평가원 출제 모의고사였기에, 부족하지만 비대면 수업의 교육적 영향을 확인해 볼 기회였다. 국어, 수학, 영어영역 각각의 원점수 분포를 분석했고, 가설대로 고득점자와 저득점자가 함께 늘어나는 양극화 현상이 확인되었다. 나는 이에 '학력 중산층의 붕괴'라는 프레임을 달았다. 의원실에 들어와서 서툴게 처음 쓴 보도자료였지만, 시기 등이 절묘하여 감사하게도 주요 언론사에서 우리 보도자료를 상당히 많이 인용해주었다. 세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자료 관련 문의가 오는 것을 보면, 의정활동 초반 주목도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세 달여가 지난 지금, 나는 그 보도자료를 낸 걸 조금 후회하고 있다. 꾸준히 인용해주시는 건 감사했지만, 한편으로 내가 무리하게 만든 ‘학력 중산층’이라는 프레임이 언론을 통해 여론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된 것 같아 찝찝했다. 성적의 하락 현상에 학력의 붕괴라는 평가를 덧붙이며 ‘성적=학력’이라는 오개념이 고착화되어버렸고, 공교롭게도 이후의 코로나 사태 관련 교육 분야 기사에는 언제나 중위권의 성적하락 내용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프레임의 나비효과는 정부의 ‘기초학력 지원센터 운영’ 사업예산 신규편성으로 이어졌고, 기어코 2021년도 교육부 예산안 심의 중 국민의힘 의원에게 교과 성적 중심의 보수적 학력관 옹호 근거로까지 인용되고 말았다. 이건 분명 내가 바라던 방향이 아니다.
‘학력 중산층 붕괴’ 프레임이 초래한 ‘성적=학력’ 오개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로 코로나 사태 하에서의 급격한 성적 격차를 단편적으로만 해석하게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애초에 성적의 양극화 현상 자체는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단지 코로나 사태로 그 속도가 급격해진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성적이 하락했다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속도가 급격해진 원인이다. 이에 따라 이번의 현상도 ‘학습 수준’의 양극화로 해석하기보다 ‘학습 동기’의 양극화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대체로 고득점 학생들은 내면의 동인, 사교육, 부모의 압력 등 학습 동기를 유발할 학교 외의 요인이 풍부한 경우가 많다. 반면, 일명 ‘학력 중산층’으로 칭해지기도 한 이 학생들은 각자의 ‘학습 동기’ 형성에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학교와 그 학교에서의 교육적 소통 등이 상당히 큰 지분을 차지하던 학생들이다. 흥미 등의 부족으로 스스로 찾아서 학습할 정도의 적극성까지는 없더라도 교실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수업에 함께 참여하며 자연스러운 학습의 효과를 얻고 있던 학생들에게 그 교실, 선생님, 친구들이 부재하면서 학습력을 잃고 만 것이다. 학교의 보살핌과 교육적 격려가 필요했던 학생들이 물리적 학교의 부재로 학습의 동기를 크게 잃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성적의 하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 해결책 또한 단순히 부족한 지식의 집중적인 전달보다는 ‘교육적 소통’ 전반의 회복에 있어야 한다.
둘째로 더 나아가 학력(學力)의 정의를 교과 지식과 성적 중심의 인지적 영역으로만 한계지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부 언론과 보수 진영에서는 이번 현상과 관련하여 성적이 떨어졌기 때문에 기초학력이 저하되었다는 비판을 펼쳤다. 한마디로 해야 할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고 있기에 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는 학생 각각의 흥미·적성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교과 성적을 ‘모두가 잘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단정하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있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수능에서의 좋은 성적은 분명 바라는 바이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입시를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수능에서의 좋은 성적이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수 있다. ‘성적=학력’ 오개념은 국·영·수 중심의 교과 지식 학습 외의 다양한 자질을 개발하려는 학생들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하게 하고, 국·영·수 시험에 소질이 있는 학생에게만 정상성을 과도하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이다.
학력(學力)이란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하는 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학력을 갖추기 위해서 학교라는 공간이 존재한다. 학력 논쟁은 교육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학교의 정의가 달라지고, 교사의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 객관주의 교육관 하에서 학력은 교과 지식 중심의 인지적 영역에 한정되었고, 그에 따라 학교도 규율을 체득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만을 수행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탈근대 사회에서는 지식의 전달만으로 학교의 기능을 제한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고등사고력, 창의적문제해결력, 소통참여능력, 문화생태감수성 등 비인지적 영역까지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학력관인 ‘참학력’ 이론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학교와 교사의 역할도 재구성되었고, 혁신학교 등의 학교 모델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여러 현실적인 장벽은 학교와 학력을 사람과 미래를 기준으로 재정의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모든 논의를 무력화하여 구조적으로 학력을 좁게 정의할 수밖에 없게 하는 폭력적인 입시 중심교육은 가장 큰 문제다. 지금 우리는 그 마지막 장벽을 넘느냐 못 넘느냐의 기로 위에 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마지막이자 처음이 될 중대한 교육적 선택을 앞당겼다.
애초에 7월의 보도자료에는 비대면 수업의 교육적 한계를 지적하고, 학생들 각각에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학교의 공백을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단편적 프레임 자체만이 강화되며 논의와 진단 자체가 빈곤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지난주 <KBS 시사직격> 팀에서 관련 주제로 우리 의원님께 서면 인터뷰를 요청해왔고, 뒤늦게나마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충분히 내용을 담아 답변서를 전달하며 내면의 찝찝함을 수습했다. 사실 보도자료 하나는 매우 사소했을 수 있으나 나에게는 업무 하나하나에 더욱 신중해야겠다는 교훈을 주었다. 또한, 조만간 본격화될 학력 논쟁을 앞두고 만전을 기하는 계기도 된 것 같다.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