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간격으로 수와 강이 지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지나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받은 게 언제였던가. 수와 강은 핸드폰에 뜬 지나의 이름을 보곤 받을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몇 번 울리다 끝나려니 하던 지나의 전화는 계속 울렸다.
수와 강은 심호흡을 하고 수신을 눌렀다.
“엄마~ 오빠가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지금은 뇌사상태래요….”
수는 놀랐고 강은 절망했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 상대방이 듣고 있는 지 확인도 하지 않는 비명과 끝없는 질문이 겉돌다 전화는 끊어졌다
수는 심장이 벌렁거려 화장대 안에 있는 강심제를 한 알 입에 넣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창 라운딩중인 남편은 운동 중 걸려온 전화가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들이 뇌사에 빠졌다는 말을 전하자 둘 사이게 짧고도 깊은 고요가 흘렀다. 그리곤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들고 있던 골프채가 떨어지며 발에 부딪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힘없이 남편이 입고 갈 옷을 챙기며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들은 소식에 그간 그녀가 생각했던 해석이 곁들여 30분이 훅 지나가고 있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남편 전화가 걸려왔다. 스피커를 켜자 온갖 욕설이 터져 나왔다.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에 놀란 남편이 연거푸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안되어서 제대로 열을 받은 것 같았다.
수는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고는 바로 정신을 잃었다가 지금 일어났다고 둘러대며 울기 시작했다. 남편은 10분이면 도착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침대위로 있는 힘껏 던져버리곤 손목이 아픈지 연신 주물렀다.
강이 지나와 통화가 끝나며 떨어뜨렸던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이 한없이 떨려 다른 손으로 잡았다.
강은 10개월의 항암치료가 끝나는 오늘,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저녁 행 비행기로 산티아고를 가려고 항암을 시작하는 날, 예약을 해둔 여행이었다. 강이 지루한 항암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녀 스스로가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전화너머 여행사의 해약 고객에 대한 지루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위약금에 대한 설명이 한없이 계속되었다. 잃어버린 돈이 아까운 듯 강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아무 말도 없이. 연이어 알아들었냐는 상담원의 채근에 겨우 짧게 예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강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비행기티켓이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입술을 깨물었다. 받을 자격이 없는 무엇인가에 미련을 가졌던 자신을 벌이라도 하는 듯 더 세게 깨물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 시간을 견뎌내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도 가졌었다. 강은 스스로 가볍게 내린 선고에 비웃음을 보냈다.
3일만에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평소 건강했던 아들의 죽음은 빨랐고 선명했다.
수와 강은 장례식엘 가지 않았다. 수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여파로 심장이 너무 떨려 무서워서 집밖을 나갈 수 없다며 혼자 이별의 예를 치르겠노라고 했다.
벽에 걸린 가족 사진 속에서 아들이 웃고 있었다. 수는 황급히 사진을 내렸다. 수의 심장이 다시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명절, 아들 내외와 수의 부부는 금전문제로 심하게 다퉜다. 명절에만 만나던 만남도 이번이 끝일 거라는 선언을 하고 돌아갔던 아들이었다.
지난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주지 않는 아들의 인생은 늘 남편과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였다.
젊은 시절 여자문제로 꽤나 맘 고생을 시켰던 남편은 나이가 들자 자신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어주었다. 수의 화려한 언변은 남편과 아들 사이를 계속 멀어지게 했다.
강은 지나의 문자를 받았다. 장례식에 오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아는 지나는 그저 아들의 죽음을 알고는 있으라는 투의 글을 보냈다.
강은 옷을 차려 입었다. 마지막 항암을 끝내고 난 강의 얼굴은 여전히 생기가 없어 보였다.
지난 추석 강에게 택배가 왔었다. 이혼한 이후로 혼자 살다시피 한 강에게 명절이라고 선물을 보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몇 번이고 강의 이름을 확인한 다음에야 개봉을 했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택배박스 안에는 기초화장품과 립스틱이 들어있었다. ’건강하십시오’ 라는 묵직한 인사말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택배박스가 젖을 정도로 한 없이 울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었던 아들이었다. 엄마라는 말을 들어본 지가 오래지만 그녀는 변함없이 아들의 엄마이고 싶었다.
강은 항암에서 이기면 자신의 자궁에서 가장 처음 세상으로 보낸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안아주고 싶었다.
옷을 차려입은 강은 립스틱을 발랐다 아주 빨갛게. 선물로 들어온 립스틱은 강의 나이에 맞지 않는 선홍빛이 도는 붉은 색이었다. 어린 아들이 화장을 하는 강의 뒤에서 지켜보았던 그 때 바르던 색이었다. 아들과 자주 걷던 강가로 나갔다. 강은 강물이 넘쳐 자신을 덮치어주길 바라는 듯 계속 강 안쪽으로 걸어갔다.
지나는 수와 강이 오지 않은 장례식에서 정신을 놓은 아버지와 올케를 두고 허우적거렸다. 최초의 상주가 된 경험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강과 올 수 있어도 오지 않은 수와의 사이에서 내밀한 슬픔과 분노로 변하여 지나를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