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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석 Aug 28. 2022

남과 나,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차

<드라이브 마이 카> 와 <오늘 밤 남의 차를 몹니다> 그 사이

유명 잡지사의 자동차 전문 에디터였던 이재현 씨는 퇴사 후 대리 운전 기사가 됩니다. 이 책은 그가 서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대리 운전 주행 기록이며, 동시에 차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남'과'나' 사이, 허물어지고 전복되는 어떤 경계들에 관한 유려하고 생생한 서사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런 복잡 미묘한 순간들 앞에서 그는, 덮이고 그 위로 또 다시 덧발려지는 유화처럼 어디선가 조용히 묻히고 덮혀가도 모를 이 도시 곳곳의 어떤 풍경들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며,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만, 실은 그게 모두 지극히 그럴 수 있을 법한 일들임을 깨달았을 때 작가가 발휘했던 기지와 대응이, 그리고 그가 내놓는 답변들이, 저로선 이 책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매일 밤 남의 차를 모는 그의 모습에서 저는 문뜩 <드라이브 마이 카> 를 떠올렸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좋은 소설이자, 무엇보다도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줄거리를 일일이 나열 할 순 없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3시간의 긴 러닝타임 내내 가후쿠가 어쩔 수 없이 미사키에게 운적석을 내주었던 것처럼 삶에서는 종종 '내 자리' 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것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야 할 때도, 그걸 누군가에게로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 물러남으로서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들여다 볼 수도 있게 되었다'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건 사실 무척 중요한 과정입니다. 대부분의 중요한 일들이 늘 그렇듯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 먹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이렇게 삶에서 벌어진 일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와 <오늘 밤 남의 차를 몹니다> 는 그런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유려하게 기어를 변속해 차선을 바꾸는 숙달된 드라이버처럼 두 작품에서는 모두 남과 나 그리고 그 사이에 차를 두고, 그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과 어쩌면 애써 외면 해왔던 것들을 목격하고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며 마침내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어쩌면 이제 차라는 개념을, 더 이상 단순한 '모빌리티' 정도로만 치부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국내의 다양한 자동차 브랜드들과 모빌리티 관련 플랫폼들은 '차'를 소유할 수 있는, 이동 가능한 가장 협소한 각 개인의 ‘공간'정도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서 비롯되는(될) 다양한 내러티브, 콘텐츠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마케팅도 벌써 몇 년 사이 무척 활발해졌습니다. 이런 표현이 우스꽝스럽지만 그런 면에서, 하루끼씨는 이미 참 새삼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들을 전달해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짧은 단편 작품을 각색해, 침착하고도 치밀한 영화로 풀어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제겐 이재현씨의 <오늘 밤 남의 차를 몹니다> 도 그만큼 인상적이었고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22년도 판 <K-드라이브 마이 카> 아니, <드라이브 유어 카> 라고 생각합니다. 그 덕에 '남의 차를 운전한다는 것', 그리고 '특수한 조건으로 대리 운전 서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차 안, 주행하는 동안 벌어지는 사건과 이어지는 대화' 라는 세 요소만으로도, 묵직한 유화처럼 켜켜히 덮여만 가는 아이러니하고도 유쾌한 서울의 어느 만취한 오후를 슬며시 들춰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자매품 같은 글입니다. 저는 멀쩡한 차를 냅두고 종종 택시를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택시를 타면 당황스러운 순간도 꽤 되지만, 그럼에도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택시가 지니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의 경험을 담은 짧은 에피소드를 SNS에 업로드 한 적이 있었는데, 약간의 수정을 더해보았습니다. 어딘가 끼워팔기 같지만 아무튼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의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K- 택시만의 엄청난 편리함에 이끌려 아주 종종 이용하곤 한다. K-택시는 어떤 면에서 이걸 교통수단 이상의 것으로 변환시켜주는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사님들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실내 인테리어라던가, 고정으로 틀어두시는 몇몇 채널의 라디오들 같은 것들이 한 몫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빠질 수 없는 게 있는데, 내 기준에선 그게 기사님들의 삶이 거진 고스란히 베여 있는 입담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이것도 기사님들의 성격과 태도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상황이 연출된다.퍽 난감할 때도 많다.여하튼,) 나는 K-택시를 타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듣는다.


기사님 자녀분들의 안위부터 시작해서, 최근 국제 정세까지 장르도 무척 다양하다. 미슐랭 가이드만큼 뻔하지 않은 곳곳의 맛 집도 많이 알고 계시고(실제로 엄청난 성공률을 자랑한다), 하루키만큼이나 팝이나 재즈에 빠삭하신 분들도 상당하다. 비록 악시오스나 가디언즈 같은 뉴미디어만큼 정갈하며 객관적이진 못하더라도, (애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거야 말로 정감있고 생동감 있는 현장 날 것의 모습 그 자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실 어제는 택시를 탈 일이 있었는데, 탑승한 내가 좀 근심 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나 보다. “학생이예요?” 나는 “예.” 하고 대답했다. “우리 아들도 학생이예요. 00대 다녀요.” 하시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나는 방전된 밧데리만큼 피곤했고 그래서 도저히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색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은 완전히 예상을 빗나갔다.


“나도 학생이예요. 00 문화센터에서 철학 수업 하나 듣는데 참... 공부 하는 거, 거참 쉽지 않아요. 나도 잘 알아요. 아들한테 미안할 정도야.” 침묵이 조금 흘렀다. 잠시 뒤 신호 대기 중에 기사님은 본인 휴대폰에서 한 장의 메모를 찾아 보여주셨다.


<2021.04.24.토. “삶은 복잡한게 아닙니다. 대체로 풍요롭죠. 배우려고 한다면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 두 번 접고 들어가면 몸도 마음도 조금은 너그러워질 껍니다. 중요한 건 그것 뿐이예요. 이를테면 즐기는 것도, 그걸 담아 낼 마음의 그릇이 가장 중요하게 되는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 그거 내가 수업에서 발표한 건데, 적어 놨어. 읽어봐요.”


그래서 읽고 기사님이랑 더 이야기 나누다 어쩌다 보니 번호까지 나눈 사이가 되었다.


고농도로 농축된 서울의 단면을 진하고 구수하게 느끼고 싶은 분, 혹은 한 개인을 통해 서울의 생동감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K-택시를 추천드립니다.( 단, 객관성과 편리성 그리고 비용은 부가요소이며, 동시에 비례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오늘도 택시 탈 예정입니다' 라는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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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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