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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수파 Oct 30. 2019

신카이 마코토가 바라본 오늘날의 일본

<날씨의 아이> 2019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날씨의 아이>는 초반에 등장하는 책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영화다.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뉴욕을 떠돌며 사회의 비정함을 겪던 남자주인공이 한 소녀를 만난 뒤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성장기다. 그래서 <날씨의 아이>의 남주인공 '호다카'는 집과 섬을 떠나 도쿄라는 낯선 도시에서 "도쿄는 무섭다"며 떨다, 사람들에게 햇빛을 가져다주는 여주인공 '히나'를 만나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귀환한다. 고로 책을 이미 접한 관객이라면 영화의 전개를 예측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 또 있다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직전작인 <너의 이름은.>일 것이다. 적지 않은 예산과 시간, 인력이 투자되는 작업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날씨의 아이>는 <너의 이름은.>이 대히트한 요소들을 빠뜨리지 않고 활용한다. '견우와 직녀'를 연상케하는 러브스토리, 영혼에 이어 날씨를 바꾼다는 판타지적인 설정, 술과 빨간 실에서 반지와 수갑으로 바뀐 '무스비(인연)', 도쿄라는 대도시와 하늘이라는 대자연의 대조적인 풍경, 클라이맥스를 극대화하는 음악의 활용까지. 비록 이번엔 남주인공이 시골에서 왔고 여주인공이 도시에서 산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남주인공은 생활력이 강하고 여주인공은 무녀로서 신기한 능력을 갖고있다는 점도 여전하다. 그렇게 이 영화는 <너의 이름은.>을 아직 잊지 못한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려 한다. (급기야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들과 흡사하게 생긴 인물들이 각각 의뢰인 할머니의 손주, 호카다가 목걸이를 구입한 가게 직원으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날씨의 아이>가 <너의 이름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현재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중한 이들을 잃게 만든 대참사의 트라우마를 다뤘던 <너의 이름은.>처럼, <날씨의 아이>에서도 '맑은 날씨'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엔 갖은 자연재해의 공포에 시달리는 일본인의 심경이 담겨있다.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지진인 줄 알고 놀라는 호카다, 물에 잠겨 생활에 불편을 겪는 도쿄 시민들의 모습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날씨의 아이>엔 <너의 이름은.>엔 없었던 것이 추가되어있는데, 바로 가정의 붕괴를 겪는 현대인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가정들은 하나같이 붕괴되어 있다. 이유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지만 호카다는 기를 써서 집을 나오려 하고, '스가'는 아내가 죽고 딸의 양육권까지 장모에게 빼앗긴 상태이며, 히나는 엄마의 죽음 이후 혼자서 동생을 돌보고 있는 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대체가정'을 형성하지만(그래서 스가-나츠미-호카다, 호다카-히나-나기는 흡사 아빠-엄마-아이처럼 보인다), 이 모두 아동복지사나 경찰이라는 '공권력' 즉 세상으로부터 허락되지 못하고 또다시 붕괴된다. 그렇게 지하에서 혼자 잠을 자는 스가와 1인 캡슐방에서 밥을 먹는 호다카처럼 도쿄는 파편화된 개인들로 가득 찬 도시가 된다.



극중 호다카는 금발의 성인 남성에게서 두번이나 폭행을 당하고, 스가에겐 첫만남에 밥을 사주고 취직해서 한달에 겨우 3천엔을 받으며 일할 정도로 착취당한다. 그러나 이는 스가가 나쁜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스가는 가난한 잡지사 사장이며, 딸의 양육권을 얻어내기 위해 고군분투중이기 때문이다. '나츠미' 역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전전하고, 차 대신 스쿠터만 있어 호다카를 중간까지만 데려다줄 수 있는 취준생 처지다. 그러니까 어른들을 비정하게 만든 건 사회와 구조인 것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수록 우선순위는 잘 바뀌지 않는다"던 말처럼 필요하다면 모두를 내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딸이 있는 스가의 모습은, 히나와 함께 있기 위해서라면 세상 전체를 버릴 수 있는 호다카의 미래이기도 하다.


결국 쫄쫄 굶은 호다카에게 햄버거를 주는 건, '맑음 소녀'라는 사업으로 돈을 벌게 해주는 건 오히려 그와 비슷한 처지와 나이를 가진 히나다. 동생을 엄마 대신 책임져온 탓에 자신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도 호다카보다 누나인 척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해주기 위해 애쓰는 히나. 그리하여 계속해서 이어지는 흐린 날, 즉 절망적인 상황에서 히나는 자신의 몸과 삶을 희생하는 자기파괴적 길을 택한다면, 호다ㅏ는 어른들과 세상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그러나 영화는 둘로 하여금 총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내려오게 한 뒤 손을 맞잡게 한다. 그리곤 그들에게 "도쿄는 원래부터 바다였고, 세상은 원래부터 미쳐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없이 내리는 비와 물에 잠긴 도쿄라는, 애니메이션 결말치고는 어둡고 우울한 배경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그러니까 신카이 마코토는 영화를 제작하는 3년 동안 더욱 악화된 일본(과 세계)의 경제상황을 애써 부인하지도, 달콤한 거짓말을 속삭이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말한다. 날씨가 언제 다시 맑아진다는 보장도, 세상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힘을 잃어버린 후에도 기도하는 히나처럼 간절한 바램과, 그 어떤 풍파에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히나와 호카다의 사랑이라고. 그 두가지가 있다면, 어쩌면 기적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의 또다른 전작인 <언어의 정원><초속 5센티미터>과 비교했을 땐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지만, 아쉽게도 <너의 이름은.>과 비교했을 땐 그렇지 않다. <너의 이름은.>의 요소를 너무 많이 재탕하고 있기 때문에 <너의 이름은.>이 안겼던 충격 만큼의 새로움은 전하지 못한다. 날씨라는 컨셉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각적 경험을 안기는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영상미를 십분 발휘한 건 좋은 선택이었지만, <너의 이름은.>을 본 관객은 아마 그 이상의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이름은.>의 향수 버프는 아마도 다음 작품부턴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자신조차 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산을 의도치않게 쌓아버린 느낌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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