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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수파 Oct 30. 2019

납치범을 사랑한 소녀

<스톡홀름, 펜실베니아> 2015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남성에게 납치되어 수 년의 세월을 빼앗긴 여성이 등장하는 <룸><3096일><베를린 신드롬>은 피해자가 생존과 탈출에 성공한 뒤 어떻게 이전의 삶에 적응하고 상처를 극복해나가는지는 비추지 않는다. <룸>이나 <3096일>처럼 인격이 형성되는 유년시절에 오랜시간 납치된 상황된 피해자에게 그것은 무척 힘겨운 일일 텐데도 말이다. 그 점에서 <스톡홀름, 펜실베니아>는 반가운 작품이다. 무슨 내용인지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저 시얼샤 로넌의 필모깨기를 목적으로 선택한 영화였음에도, 딱 필자가 바라던 '사고 이후'를 다룬 영화였기 때문이다.


중년의 백인 독신 남성 '(제이슨 아이삭)'에게 4살 때 납치된 '레이아(시얼샤 로넌)'는 그의 지하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한 채 8년을 살았다. 그곳에서 벤은 레이아에게 부모와 선생님이었으며, 친구이자 연인이었고, 악마이면서 신이었다. 그래서 말솜씨가 좋은 벤에게 오랫동안 세뇌(가스라이팅)당한 레이아는 17살이 되어 부모의 곁에 돌아온 뒤에도 벤을 잊지 못한다. 심지어 벤을 욕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할 정도로 스톡홀름 증후군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어린 딸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엄마 '마시(신시아 닉슨)'가 벤과 레이아의 추억을 아무렇지 않게 공유할 수 있을리가 없다. 반대로 레이아는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만 이야기하는 마시가 부담스럽고 지겹기만 하니, 둘 사이의 거리는 스톡홀름과 펜실베니아만큼이나 멀 뿐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중반부터 행로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레이아가 부모가 준 이름 대신 벤이 준 이름을 택하고, 일기장을 벤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하며, 급기야 벤을 면회하러 가기까지 하자 마시는 딸을 또 잃을까 두려운 마음에 그만 레이아를 방에 가둬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장소와 간수만 바뀌었을 뿐, 레이아는 또다른 감옥에 갇혀있게 된 셈이다. 급기야 마시는 남편이자 레이아의 아빠인 '글렌(데이빗 워쇼스키)'을 서사 밖으로 내쫓고, 모든 타인을 거부한 채 집과 마음의 방문을 걸어잠근다. 그리곤 레이아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줄 것을 요구하지만... 평생 믿었던 벤에게 배신당한 소녀에게 이는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본인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타인에게 몹시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두 모녀는 몹시 닮아있다.


사실 레이아 만큼이나 깊은 상처와 슬픔에 짓눌려있다는 점에서 마시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진 않다. 무엇보다 마시의 감금, 글렌의 퇴출, 레이아의 거부는 가족이 사건을 극복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해결짓지 않고, 중간에 내던지고 도망가버리는 충격적인 선택을 내린다. 레이아가 벤과의 관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습도, 마시가 딸과 남편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영화가 갑자기 끝나버리는 것이다. 자동차에 태운 관객을 어딘지 모르겠는 허허벌판에 떨구고 떠나버리는 무책임한 가이드처럼 말이다. 좁은 방 안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소녀가 어떻게 저 넓은 미국땅을 홀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 것인지도 납득하기 어렵고, 레이아가 어떻게 벤에게서 탈출한 것인지 끝내 그리지 않는다는 점도 아쉽다. 결국 가족의 손을 잡고 진실을 마주해나가는 과정을 신중하고 묵직하게 그려냈던 <이야기><트러스트>와 달리, 사건만 있고 해결은 없는 찜찜하고 무책임한 영화다. 믿고 보는 시얼샤 로넌의 섬세한 연기와, 아이를 빼앗긴 엄마의 좌절을 기대 이상으로 잘 표현해낸 신시아 닉슨의 퍼포먼스만 아깝게 됐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 중에서
최악이었던게
당신과 평생을 함께 살았던 건지,
아니면 남은 생을 당신 없이 살아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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