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회화> 2월 16일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이 공동기획한 <수묵별미水墨別美:한중 근현대회화展>이 지난 11월 28일(목)부터 올해 2월 16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다. 근현대 한·중 미술계를 대표하고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작가까지 한중 작가 145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수묵채색화의 근대미술로의 전환과 한국화 개념이 정착하기까지 작가들은 때로는 외부의 시선 안과 밖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한편으로는 도시의 기억과 여성의 얼굴을 통해 한국화의 경계를 확장해가며 변화를 이끌어왔다.
이 전시는 작가들의 인식과 시대적 사유가 무르익어가며 한국화 개념과 구성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고, 재료와 소재,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도전을 '인식 너머 경계 넘기', '황홀한 도시와 공존하는 역사', '시대유감時代有感, 여성의 얼굴들'이라는 주제로 재구성하여 소개한다.
인식 너머 경계 넘기, 우리가 보는 풍경의 진면목
이진주의 블랙 페인팅 작업의 하나인 <볼 수 있는 21>을 통해 작가는 인간 경험과 사유의 한계를 직시하고, 인식 너머의 가능성을 '검은 어둠'으로 전환을 시도한다. 작품에서 '비워진 여백'의 세계는 이제 어둡게 채워진 '짙은 광명'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더 이상 여백은 여운과 조화의 공간이 아니라 새롭게 응시하고 마주해야 할 장소이다.
여백은 새롭게 채워지고 메시지는 부유하며 사라진다. 황창배는 그 틈을 '속도'와 '감정'으로 메운다. 사실적 형태를 배제하고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극대화한다. 나무와 바위를 지나는 여인의 모습에서 인간이 구성한 인위人爲와 경계는 사라지고 강렬한 '민화民畫적 구상'으로 채워졌다.
인식과 구상의 전환 가운데서도 수묵의 본질은 그대로다. 송수남은 대담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붓의 놀림>으로 한국화 고유의 정신과 서구의 추상적인 구성을 자유분방하게 담아낸다. 작가는 "종이와 먹이 우리의 전통이며 우리 삶의 모습"이며 "미래를 예견하는 우리의 역사의식이자 자존심"이라고 선언하며 수묵이 우리 정신을 가시화하는 요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황홀한 도시와 공존하는 역사
도시 건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도시민의 기억을 대변한다. 정재호가 선보인 <황홀의 건축-청계타워, 현대오락장, 종로빌딩, 용산병원>은 도시의 영화榮華와 쇠락의 정치·경제적 시간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부침을 겪어내며 살아가는 인간을 닮은 '재현된 건축'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추앙받았던 우리의 욕망 혹은 우울한 도시의 자화상으로 남겨져 있다.
풍요와 결핍을 내재한 도시는 공간을 포위하고 인간을 겁박한다. 물질의 수혜자이자 포획된 피해자인 도시민의 고단함을, 김선두 작가는 지하철 <2호선>에서 졸고 있는 청년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수묵과 채색의 어느 경계에서 채워진 '청회색의 여백'은 인간의 풍경이 결코 황홀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음을 드러낸다.
도시는 역사를 만들고, 공간은 문명을 담는다. 인간은 시간을 껴안아 과거와 현재를 이어간다. 신성神聖을 품은 도시와 문명을 캔버스에 담아 온 조풍류 작가의 <종묘 정전>은 작가 특유의 강렬하고 신적인 색과 빛으로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진경(眞景) 너머 진경(眞境)을 마주하게 한다.
시대유감時代有感, 여인의 얼굴들
시대는 저마다의 정신精神과 색色이 공존한다. <맥파-황맥>(1980)으로 '보리밭 작가'라는 별칭을 얻은 작가 이숙자가 같은 해 그린 <작업>은 이후 작가의 대표작 <이브의 보리밭>과는 전혀 다른 여성의 얼굴을 담아낸다. 모심기를 하고 있는 여농 세 사람을 표현한 이 작품은 '대지의 청록빛'을 우리네 여성들에 비춤으로써 한국적인 정서를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여인의 왜곡된 인체와 상반신 노출을 그린 장운상의 <9월>은 1956년 국전에서 무감사 입선한 작품이다. 가슴을 드러낸 채 취한 도발적인 자세와 여인의 시선은 시대를 뛰어넘는 이국적 감각을 보여준다. 동시대 박노수의 <선소운>이나 장우성의 <청년도>에서 여성인물들이 세련되면서도 전통적인 고전미를 보여줬다면, 장운상의 여인은 파격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이목을 끈다.
이유태가 본 시대와 여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가 직전에 그린 <女人-智·感·情>같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여성상과 대조적으로 <인물일대-탐구>에서는 실험실을 배경으로 근대적인 여성상을 담고 있다. <탐구>는 조선미전 입상을 위한 작가의 선택적 작업의 일부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실제로 광복 이후 작가는 더 이상 여인도를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여인도에 몇 번이고 눈길이 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