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슬픔의 유예
―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엄마가 자유를 찾아 떠났다. 그러고 9주가 지나서야 이 글을 쓴다. 그날은 봄비에 여린 꽃송이들이 투두둑 떨어지던 날이었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3년 2개월 10일 만이었다. 마침 여동생과 함께 면회를 신청해 놓은 날이었다. 겨우 30분이 허락되는 면회였다.
폐렴균이 다시 엄마 몸을 점령했다. 얼음팩을 겨드랑이에 끼웠는데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뼈만 남은 엄마 몸은 혈관주사 꽂을 자리를 찾느라 헤맨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가쁜 호흡을 이어가는 엄마를 30분 만에 두고 나올 수는 없었다. 물 묻힌 면봉으로 입술을 적셔주었을 때 엄마는 고열에 허덕이면서도 입맛을 다셨다. 마치 단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금세 1시간 반이 훌쩍 지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여동생과 나는 집으로 가는 대신 병원 건너편 백화점 커피숍으로 갔다. 남동생 부부에게 오늘 면회하는 게 좋겠다고 전화했다. 남동생 부부가 갔을 땐 엄마 상태가 좀 더 나빠져 있었다고 한다. 커피숍에서 엄마를 좀 더 편안하게 모실 1인실이 있는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호스피스병동은 암 환자만 들어갈 수 있었고 엄마를 모실 만한 곳은 나오지 않았다. 주말이 낀 연휴라 상담조차 쉽지 않았다. 속은 타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커피숍에서 3시간을 미적거리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 이르렀는데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동생에게 저녁 먹고 가자며 다시 백화점 식당가로 발길을 돌렸다. 마감 시간이 다 돼 가는 시간에 음식을 주문해 상을 받았다. 두 숟갈째 뜨는데 올케의 전화가 왔다. 무슨 정신으로 병원까지 달려갔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병실 입장을 저지당한 채 얼마나 울고 있었을까. 의료진이 물러나자 병실로 뛰어들었다. 엄마는 아까보다 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내 숨을 떼어줄 수만 있다면, 내 명을 뚝 잘라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 급하게 흐르고 있었다.
남동생의 연락을 받은 외삼촌 내외와 사촌 동생이 달려왔고 운명의 신은 엄마를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엄마가 가쁜 숨을 내려놓았을 때 예전의 엄마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인자하고 평안이 깃든 엄마의 얼굴, 얼마 만에 보는 표정인지 순간 반가웠다. 이제 눈만 뜨면 되는데 엄마는 한번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귀에 대고 아무리 엄마를 불러도 얌전히 덮인 눈꺼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삼 남매는 엄마를 잃었다. 이제 다시는 엄마의 웃는 얼굴도, 정다운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시 수업을 듣고 이 과, 저 과 병원을 다닌다. 친구를 만나 하하 호호하는 모임만 없을 뿐 바쁜 일상을 산다.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고 밤이 되면 약을 먹고 꿈나라로 간다. 아쉽게도 엄마는 꿈에서도 나를 찾아올 기미가 없다.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이 거대한 슬픔을 받아들일 수 없다. 숙제를 미루던 습관처럼 슬픔을 유예하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잘랄루딘 루미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거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그 작은 심장 안에
이토록 큰 슬픔을 넣을 수 있습니까?”
신이 대답했다.
“보라, 너의 눈은 더 작은데도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으냐.”
지금 나는 과연 신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누구라도 그 의문에 답을 해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