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엄마 시계가 내게로 왔다
― 다시 돌아가는 시계
지난겨울 엄마의 시계가 내게로 왔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그리 빨리 떠날 줄 몰랐기에 집으로 모셔올 요량이었다. 이미 아버지가 입주 간병인과 함께 친정집에 계시는 상황이었기에 결정하기가 수월했다. 환자용 침대와 간병인 침대를 넣기 위해선 친정집 안방을 완전히 비워야 했다. 올케와 함께 짐 정리를 하러 친정에 간 날이었다. 장롱에선 자녀들이 선물한 옷과 내의, 가방이 태그가 붙은 그대로 쏟아져나왔다. 문갑 안쪽엔 내가 선물한 시계와 목걸이, 반지가 케이스에 담긴 채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시계는 내가 27, 28년 전쯤 여행길에 사서 엄마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반지와 목걸이도 30년 가까이 됐지만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았고 시계만 광택이 좀 빠진 상태였다. 엄마가 아끼고 소중하게 다뤘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멈춰 선 시계가 다시 내게로 왔다.
스마트폰이 시계와 지갑을 대체하는 시대가 됐지만, 스마트와는 거리가 먼 나는 여전히 시계와 지갑의 물성을 좋아한다. 특히 외출하기 전 착용하는 순간 나와 한 몸이 된 시계는 귀가할 때까지 나와 함께한다. 스마트폰은 때때로 가방 안에 있기도 하지만 시계는 내가 호흡하는 공간에서 자주 나와 눈을 마주친다. 뭐든 나와 인연 닿은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탓에 그동안 나와 함께했던 시계 몇 개는 여전히 케이스에 담겨 화장대 서랍 안에 있다. 이사할 때마다 버리려고 보면 외양이 너무 멀쩡하기도 하고, 시계에 얽힌 추억들이 눈에 밟혀 결국엔 도로 넣어 두게 된다.
30년 가까이 시간을 칼같이 맞춰야 하는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왔다. 마감 시간, 회의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시계가 필요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외출할 때면 꼭 시계부터 찬다. 시간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시간을 내 계획에 맞게 나눠 쓰면서 시간을 관장하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봉급생활자들은 ‘시간의 노예’라고 자조하기도 하지만, 나는 시간에 맞춰 일하는 삶이 좋았다. 그래서 시계는 장신구에 관심없는 내가 유일하게 욕심을 내는 물건이기도 했다.
지난겨울, 엄마를 집에 모셔오려고 할 즈음 영하 20도의 혹한이 이어졌다. 집으로 모셔오는 걸 며칠 미룬 사이 폐렴이 엄마를 덮쳤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엄마는 생의 끄트머리에서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집으로 모셔올 수는 없는 상태가 됐다. 폐렴을 이겨낸 지 4개월여 만에 엄마는 떠났지만, 엄마의 시계는 내게 남았다. 엄마를 숨 쉬게 할 수는 없지만, 엄마 시계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엄마와 30년 가까이 함께한 시계의 초침이 돌아간다면 엄마의 맥박을, 체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잠깐 스쳤다. 시계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것으로 엄마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다가오는 가을이 조금은 덜 쓸쓸할 것 같기도 했다.
조그만 배터리 하나 갈아 끼웠을 뿐인데 3년 넘게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엄마 시계가 깨어났다. 초침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원을 그리며 분침과 시침까지 움직이게 한다. 어쩌면 시계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웅크린 채 게으름 부리는 내 마음까지 째깍거리게 할 수도 있겠다. 다시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린다. 그조차도 엄마가 보내는 따스한 입김 덕분이라는 걸 알겠다.